사회를 듣는 귀

장기미제 사건을 공개수배한 경찰, <시그널>과 <무한도전>이 만든 선순환

너의길을가라 2016. 2. 2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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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은 예능일 뿐이다' 혹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라는 말에 담긴 '선의(善意)'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건 명백히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건 예능과 드라마에 대한 '무시'다. '좋은' 예능과 '좋은' 드라마는 단순히 '소비'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양상을 만들어내고, 끝내 사회적인 선순환을 이뤄낸다.



탄탄한 짜임새와 출연 배우들의 열연으로 매회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N 드라마 <시그널>은 시청자에게 '재미'를 선물하는 단계(만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지만)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줬다. 장기미제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시그널>은 실제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치부(恥部)들에서 모티브를 따 드라마 속에 담아냈다.


1970~80년대 부유층 만을 대상으로 했던 대도 사건, <살인의 추억>의 주제이기도 했던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 성수대교 붕괴 사고,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등 대한민국 사회를 들썩였던 혹은 부끄럽게 만들었던 사건들이 김은희 작가의 뛰어난 각색(脚色)을 통해 적나라하게 적시(摘示)됐다. 또, 여전히 논란이 되는 이슈이기도 한 공소시효 문제도 빼놓지 않고 다뤄졌다. 



자연스럽게 위에서 언급됐던 사건들은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됐고, 이는 곧 장기 미제로 남아 있는 각종 사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스포츠경향>은 '시그널'이 다뤄줬으면 좋을 미제사건 '톱11'와 같은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숙제'를 열거하기도 했다. 가령, 1962년 조두형군 유괴 사건, 1991년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1998년 김훈 중위 사망 사건 등이 그러하다. 만약 <시그널>이 시즌제로 제작된다면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그널>은 미제사건을 들추는 것을 마뜩지 않아하는 경찰(수뇌부)의 분위기를 잘 보여줬다. "미제사건을 들추는 건 경찰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대사가 그러하다. 물론 미제로 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경찰의 수사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다시 '수사'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논리적인 흐름은 경찰이 미제사건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까닭을 잘 설명해준다.



한편, 지난 25일 부산경찰 미제사건전담팀은 공식 페이스북에 "(부산) 강서경찰서 바닷가에 떠밀려 온 마대자루.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된 여성의 사체. 여러분의 좋아요로, 공유로 친구 태그로 14년 만에 미제사건이 해결될 수 있다. 여러분이 부산경찰의 시그널이 돼 달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관련 사진 13장을 공개했다.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반응은 더욱 파격적이다.


2002년 A씨(당시 22세)의 실종 사건 개요와 용의자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게시물은 무려 3만 9천 건의 '좋아요'를 받았고, 약 1,600여 건의 공유가 이뤄졌다. '경찰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는 부산경찰 미제사건전담팀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왜 그런 걸까? 먼저, '좋은' 드라마 <시그널>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시그널>은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경찰들의 뜨거운 열정을 그려냈고, 시청자들은 여기에 감동을 받았다. 그 연결고리가 부산경찰의 열정에도 고스란히 이어진 셈이다.



그리고 '좋은' 예능 MBC <무한도전>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12월 26일 방송됐던 <무한도전> '공개수배' 편은 센세이션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실제 (부산) 경찰들이 투입돼 <무한도전> 멤버들과 추격전을 벌였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추격'의 단서를 시민들의 SNS 제보를 통해 제공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극찬을 받았다. 이는 'SNS를 통한 시민제보 활성화'에 기여했다. 사회적 변화에 일조한 것이다.


이번에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미제사건전담팀이 '부산경찰' 소속이라는 점은 <무한도전>이라고 하는 예능과의 콜라보의 성공이 일정한 영향을 줬음을 짐작케 한다. 이것은 곧 시민들에 대한 믿음이고, 자부심이기도 하다. 수사를 위해서는 '단서'가 필요하다. 그 단서를 모으는 데 있어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협력의 대상이자 파트너로 바라봐야 한다.



지영환 장기미제수사팀장은 "우리에게 '시그널'은 바로 시민들의 제보다. 작다고 생각되는 단서가 사건의 실마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 경찰의 수사력이 미진했던 사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선의 많은 경찰들이 "미치도록 잡고 싶었"을 심정으로 범인을 추적했지만, 과학수사 등 수사기법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적 한계 탓에 결국 물러서야 했던 사건이 많을 것이다.


과학 수사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하고, SNS를 통한 쌍방향 소통이 원활한 시대적 특성은 전 국민을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던 수많은 장기미제사건을 다시 한번 검토하기에 적절하지 않은가? 더 이상 경찰은 이를 쉬쉬할 이유가 없다. 아니, 설령 경찰의 과거에 부끄러운 부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감출 필요가 없다. 오히려 더 진솔하게 '반성'과 함께 '공개'를 해야 한다.


<시그널>이라고 하는 '좋은' 드라마와 <무한도전>이라고 하는 '좋은' 예능이 만들어낸 사회적인 선순환이 경찰의 진솔한 자기고백과 맞물린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것이 분명하다. 그걸 지금 부산경찰 미제사건전담팀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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