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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에서도 빛난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의 존재감

너의길을가라 2022. 12.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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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명쾌하다. 어떤 질문이든 간에 똑부러진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어렵고, 무겁고, 딱딱하다. 학창시절 이후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았는데, 어느 날 물리를 다룬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떨림과 울림(2018)’이라는 책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언어처럼 느껴졌는데, 점점 재미있고 흥ㅃ미로워졌다. 심지어 따뜻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때문이다.

김상욱 교수는 물리학을 쉽게 설명한다. 그럼에도 물리학은 여전히 난해하지만, 마침내 얼마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의욕이 생기게 만든다. 시와 소설 등 문학 작품을 즐겨 읽고, 미술에 조예가 깊은 덕분일까. 그의 물리학은 풍성하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다. 또, 물리를 설명하는 그의 눈빛은 진지하고, 그의 언어는 성실하다. 시선을 집중시키고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무엇보다 김상욱 교수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그에게 물리를 배웠다면 어땠을까. 김상욱 교수가 tvN <알쓸인잡>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심’했다. 그에게 계속 물리학을, 물리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알쓸신잡>, <알쓸범잡>, <알쓸인잡> 시리즈에 모두 출연한 터줏대감, 김상욱 교수는 ‘인간’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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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지구에 우연히 나타난 생명은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 생명을 향한 그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있다" (찰스 다윈, <종이 기원>)


2일 방송된 <알쓸인잡>의 주제는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인간‘이었다. 김상욱 교수가 선택한 인간은 ‘찰스 다윈’이었다. 지금에야 ‘진화론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당시만 해도 굉장히 위험한 생각을 가진 인물로 여겨졌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믿음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진화론을 주창하며 창조론의 모순을 지적했으니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컸을까.

다윈은 진화론을 정립했음에도 자신의 이론을 정리한 <종의 기원>을 발간하기까지 20년을 기다렸다. 신앙적 믿음이 절대적인 시대에 성경을 부정하는 진화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후 다윈은 연구를 거듭하며 진화의 수많은 증거를 확보했다. 인간이 비둘기나 개의 교배를 통해 품종개량한 것처럼 “자연이 그러지 못한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려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19세기 말, 진화론은 열광적 지지를 받게 된다. 문제는 ’자연 선택‘이라는 다윈의 의도와 달리 양육강식을 정당화하는 선전 도구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유전자에 우열이 존재한다는 나치의 ’우생학‘,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식민지를 합리화하는 논리로 악용됐다.

이를 우려했던 다윈은 <종의 기원> 초판본에 '진화(Evolution)’라고 쓰지 않고, ‘수정을 통한 나아짐(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썼다. 그 이유는 진화라는 표현 속에 내포되어 있는 ‘더 좋아지는’이라는 뉘앙스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상욱 교수는 그의 노력에도 진화론의 의미가 왜곡된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내 사랑 당신, 정말 사랑해. 당신이 얼마나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는 알지만, 그렇다고 단지 당신이 좋아해서 적는 말은 아니고, 그렇게 적으면 내 몸 안 구석구석까지 훈훈해지는 기분이 들어.“ (리처드 파인만)

16일 방송된 <알쓸신잡> 3회의 주제는 ’우리가 사랑하는 인간‘이었는데, 김상욱 교수는 ’물리학자가 사랑한 물리학자‘로 불리는 리처드 파인만을 언급했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리처드 파인만은 ’지구 멸망의 순간에 단 한가지 (지식)만 후대에 물려줄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세상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답을 남겼을 정도로 찐 물리학자였다.

뼛속까지 물리학자였던 파인만은 괴짜 과학자이기도 했다. 독특한 캐릭터였던 그는 정의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논쟁하는 것 자체를 시간낭비로 여겼다. “자연과학은 자연에 대한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고 누가 하든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 반면, “국어는 인간의 약속에 불과하다.”며 암기과목을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국 출신인 파인만에게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교양’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품위를 중시하는 유럽 위주의 물리학계로부터 별종 취급을 받았다. 정작 파인만은 교양은 인간의 약속에 불과하다며 반감을 드러냈지만 말이다. 하지만 파인만은 물리학에 있어서는 최고의 역량을 발휘했고, 20대의 나이에 아인슈타인 등 세계적인 석학들에게 인정받는 물리학자가 됐다.


김상욱이 파인만에게 감동을 받은 까닭은 그가 누구보다 ’훌륭한 교육자‘였기 때문이다. 브라질로 여행을 떠났다가 브라질에 푹 빠진 그는 안식년에 브라질 칼텍 대학교로부터 제안을 받게 됐다. 그곳에서 물리학 강의를 하게 된 파인만은 영어가 서툰 학생들을 배려해 포르투갈어를 공부해 강의하는 열정을 보였다. 파인만이 얼마나 교육에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점점 더 파인만이라는 인물에 빠져들고 있을 때 김상욱 교수는 결정타를 꺼냈다. 그는 괴짜, 냉혈한 같은 이미지의 파인만에게도 의외로 순정적인 면에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파인만의 첫사랑 알린 그린바움은 결핵을 앓았다. 지금에야 치료법이 있는 병이지만, 당시만 해도 결핵에 걸리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었다. 파인만은 가족들의 반대에도 알린 그린바움과 단둘이 결혼식을 올렸다.

결국 알린 그린바움은 세상을 떠났고, 파인만은 아내와 사별한 후 ’카사노바‘로 변신해 방탕한 사생활과 여자관계로 많은 스캔들을 일으켰다. 또, 자신의 자서전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에서 이성을 꼬시는 방법을 어떤 식으로 실생활에 적용했는지 적기도 했다. 정서경 작가는 파인만의 행적에 대해 첫사랑 ’알린 그린바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썼던 것이라 추측했다.


김상욱 교수는 파인만의 사후에 그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썼던 편지가 발견됐다며 편지의 한 구절을 낭독했다. 곁에 없는 아내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 있는 파인만의 편지는, 김상욱 교수의 진심이 더해져 더욱 감동적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물리학자도 사랑할 때는 (아내가) 세상에 없는 줄 알면서도 이런 편지를 쓰네요.”라며 감탄했다. 코끝이 찡해졌다.

파인만은 나이가 들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리학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인간은 저마다 불완전한 존재들이고, 그렇기에 유일무이하고 특별하다. 불완전한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완전할 수 없어도 온전해질 수 있다. 파인만도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고백했던 게 아닐까.

이처럼 김상욱 교수는 언제나 진지한 눈빛과 태도로, 우리에게 깊이 사유할 만한 이야기를 던진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따뜻한 온기를 담고 있는 이야기가 부드러운 말투에 실려 전해질 때 우리는 귀를 쫑긋 기울이게 된다. 매사 진지해서 더 귀엽기만 한, 파인만을 닮은 듯 냉철함 속에서도 인간미가 느껴지는 김상욱 교수의 존재감은 <알쓸인잡>에서도 어김없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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