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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알쓸인잡’, 돋보인 천문학자 심채경

너의길을가라 2022. 12. 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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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많이 했어요. 일단 사랑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야 했고, 우리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가,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사실인가? 실제로 무엇을 사랑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너무 많은 고민을 쓸데없이 많이 했는데,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니까.” (심채경 교수)


단단한 사람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책으로 알게 된 그가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이하 <알쓸인잡>)에 출연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랑(?)을 하고 다녔을까. <알쓸인잡> 출연진의 성비(5:1)에 아쉬움을 제기할 때도 심채경이라는 이름에 안도했었다.

심채경의 활약은 ‘역시’였다. <알쓸인잡> 첫 회는 ‘영화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인간’을 주제로 수다가 진행됐는데, 진행자 RM(김남준)은 첫 주자로 ”베일에 싸여 있“는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를 지목했다. 경력직 김영하 작가, 김상욱 교수 그리고 같은 신입이어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알려진 이호 교수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심채경 박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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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채경 박사가 영화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인간은 누구였을까. 그는 화성에 헬리콥터를 띄우는 실험에 성공한 NASA 과학자 미미 아웅을 소개했다. 미안마계 미국인인 미미 아웅은 NASA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우주탐사 연구원이자 화성 헬리콥터팀의 리더이다. 심채경 박사는 낯선 이름인 미미 아웅 앞에 굳이 ‘아시아 출신‘이라든지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았다.

화성에서 헬리콥터를 띄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얼마나 큰 업적일까. 심채경 박사는 화성은 대기가 1%에 불과해서 물체를 띄우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인류의 첫 비행기 발명과 맞먹는 획기적인 업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미 아웅과 헬리콥터팀이 거둔 성공으로 인해 인류는 화성에서 지형의 제약을 받지 않고 빠르고 폭넓은 조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미미 아웅이 성공만 했던 건 아니었다. 그가 헬리콥터팀을 맡은 6년의 시간 속에 수많은 실패가 있었으리라. 심채경은 "NASA는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실패한 사람을 자르는 식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며, 그 이유는 “실패한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패를 소중한 경험으로 여기고 믿고 기다려주는 포용적 문화의 중요성을 상기했다.

“다른 사람한테 숨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더 중요한 포인트는 자기 자신도 속이지 말아야 해요. ‘실수가 시작된 시점에 잘못했나?’ 생각이 들더라도 그 실수를 끝까지 완벽하게 완수해야 해요. 실수가 진행될 때 숨기거나 그만 두는 게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전 과정을 기록을 해야만 이 실수가 반복되지 않거나, 또는 이 실수가 실수가 아닐 수 있는데 섣불리 판단한 것일 수 있거든요.” (김상욱 교수)

김상욱 교수는 "365일중 364일을 실패하고 단 하루를 성공하는게 과학"이라고 덧붙였다. 또, “우리가 실수나 실패에 관대할 필요가 있는데 실수나 실패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관건은 ‘좋은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실수란 (자기 자신에게도) 숨기지 않아야 하며, 실수라는 걸 알아챘을 때에도 멈추지 않고 ‘제대로’ 실패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수(와 실패)를 제대로 기록함으로써 반면교사로 삼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미 아웅이 6년의 시도 끝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 이전에 수많은 실패를 ’제대로‘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심채경 박사가 그의 롤모델이라는 미미 아웅을 소개하며 전한 첫 번째 이야기는 다채로운 수다로 이어졌고, <알쓸인잡> 첫 회의 분위기를 따스하게 만들었다.

9일 방송된 <알쓸인잡> 2회는 ’우리가 사랑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로 수다꽃을 피웠다. 심채경 박사는 <낭만적 온애와 그 후의 일상>,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를 쓴 ’알랭 드 보통‘을 언급하며, 그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연애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그 순간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심채경이 알랭 드 보통을 인용한 까닭은 그가 사랑하는 인간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였다. 심채경이 사랑한 인간은 다른 아닌 ’심채경‘ 그 자신이었다. 다소 의외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곧 납득됐다. 그는 “자기를 잘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밝히며, 자기를 잘 사랑하는 것은 곧 “자신의 모든 면을 잘 받아들이고 있고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심채경은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혹은 천문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너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조언해 준다고 말했다. 20대의 전부를 대학원에서 보낼 용기가 있냐는 뜻이다. 그렇다면 심채경은 천문학자라는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그는 공부하고 연구하는 삶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매일 행복하다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장항준 감독은 심채경 박사에게서 ‘자기애’가 느껴진다고 화답했다. 심채경 박사에게 자기애는 어떤 의미일까. 그건 자기 자신을 잘 사랑하는 것, 내가 잘못하고 부족한 점도 있지만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을 뜻했다. 만약 부족한 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의 예쁜 모습만 사랑하면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과 같을 거라며 그런 나의 모습까지 사랑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처음부터 심채경 박사에게 자기애가 가득했던 건 아니었다. 그에게도 주눅든 순간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망원경을 처음 본 그는 다양한 천문 관련 지식을 갖고 있는 학우들 사이에서 위축됐다. 혼자만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고, 순간순간 자신의 쓰임이 필요한 곳을 찾았다며 경험담을 꺼내놓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알쓸인잡>은 그 주제를 ‘인간’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철학적인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를 안고 있다. 어쩌면 제한적인 대화로 국한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심채경 박사는 조곤조곤 힘있는 이야기를 건네며, 시청자들에게 깊이 있는 울림을 전했다. 가치판단의 무게 주심을 내 안에 둘 것, 나를 바라볼 때 좀더 관대해져도 괜찮다는 그의 진심어린 조언은 차가운 겨울 바람에도 온기를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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