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두뇌 서바이벌 톺아보기

악역 없는 '데블스 플랜', 누가 판을 흔들 것인가

너의길을가라 2023. 10. 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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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에 홀렸나 싶은 순간이 있다. 플레이어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나'를 만나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그것이 두뇌 서바이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 제목을 지었다." (정종연)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족보는 tvN '더 지니어스'로부터 시작된다. 그 역사를 연 사람이 바로 정종연 PD이다. 그 이후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있었다. tvN '소사이어티 게임'(도 정종연 PD가 연출했다), 웹예능 '머니 게임', SBS '검은 양 게임', 가장 최근에 방송됐던 tvN '더 타임 호텔', 웨이브 오리지널 '피의 게임' 시리즈도 결국 '더 지니어스'의 후예이자 변형이다.

10년 전 두뇌 서바이벌의 첫 페이지를 열고, tvN '대탈출' 시리즈, TVING '여고추리반' 시리즈 등 추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정종연 PD가 두뇌 서바이벌로 다시 돌아왔다. 제목은 '데블스 플랜', 그러니까 악마의 계획이다. 그는 9월 18일 열렸던 제작발표회에서 "다른 프로그램을 하면서 반성했던 것들을 모아서 만"들었다면서 "개선되고 재밌는 포인트가 있"다고 밝혔다.

'데블스 플랜'은 '변호사, 의사, 과학 유튜버, 프로 게이머, 배우 등 다양한 직업군의 12인의 플레이어가 7일간 합숙하며 최고의 브레인을 가리는 두뇌 서바이벌 게임 예능'이다. 방송인 하석진, 바둑 기사 조연우, 아나운서 이혜성, 배우 이시원, 변호사 서동주, 의사 서유민, 방송인 박경림, 비연예인 김동재, 프로게이머 기욤, 과학 유튜버 궤도, 크리에이터 곽준빈(곽튜브), 세븐틴 승관이 출연했다.

출연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시쳇말로 '약하다'는 인상을 준다.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 알려져 익숙하긴 하지만, 서바이벌 예능에서는 낯선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종연 PD는 "경쟁 서바이벌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섭외했다고 밝혔다. "경험이 누적된 사람보다는 경쟁 게임을 처음 맞닥뜨려서 성장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출연자를 원했던 것이다.

정종연 PD의 말을 빌리자면, "플레이어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나'를 만나게 되"면서 "마치 귀신에 홀렸나 싶은 순간"을 포착하는 게 '데블스 플랜'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섭외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플레이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홍진호나 장동민처럼 판을 휘어잡는 센 캐릭터가 없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4회까지 공개된 '데블스 플랜'은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마피아 게임'을 연상케 하는 '바이러스 게임'을 비롯해 전체적인 게임의 난이도는 평탄한 수준이었다. 일정한 정치질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혈투가 난무했던 '피의 게임2'의 살벌함에 비하면 밋밋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더 타임 호텔'에 가까운 분위기였는데, 그에 비하면 게임의 긴장감이나 예능적 재미가 떨어졌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긴장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데블스 플랜'에서 탈락자는 게임 머니인 '피스'가 0이 되면 발생한다. 다른 장치 없이 자동 탈락이다. 기존의 두뇌 서바이벌이 ’데스 매치‘를 통해 탈락자를 가려냈던 것과 차별화된 지점이다. 따라서 궤도의 주장처럼, 플레이어들이 잘 협력한다면 탈락자가 없게 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서바이벌의 세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리 없다.

예상대로 첫 탈락자가 일찍부터 발생했다. 바로 기욤이었다. 첫 메인 매치에서 한국어가 미숙한 척 연기를 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던 기욤은 '규칙 레이스'에서 다수 연합의 희생자가 됐다. '바이러스 게임'에서 승리를 거머쥐어 피스를 다수 확보했던 그였기에 이른 탈락은 의외로 다가왔다. 만약 '데스 매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개인 능력이 뛰어난 기욤이 기사회생할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이렇듯 다수 연합에 의해 탈락자가 손쉽게 정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데스 매치라는 장치 없는 '데블스 게임'은 어딘가 심심한 구석이 있다. '피의 게임2'만 해도 우승자 이진형은 다수 연합에 끼지 못해 매번 탈락 후보가 됐지만, 뛰어난 두뇌 능력으로 데스 매치에서 승리하며 결국 우승까지 차지하지 않았던가. '데블스 게임'에서는 이와 같은 반전은 기대하기 힘들어 보였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악역’을 맡을 플레이어가 없다는 것이다. 두뇌 서바이벌의 매력 중 하나는 판을 흔드는 플레이어의 활약일 텐데, ‘데블스 플랜’에는 (아직까지는) 선한 이미지의 플레이어들만 가득해서 갈등 양상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상금을 얻기 위해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플레이어도 보이지 않는다. 최대 상금이 5억 원인데도 절박함이 없으니 의아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뇌 서바이벌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은 뜨겁다. 29일 넷플릭스 글로벌 TV쇼 9위에 랭크됐고,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는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밖에도 캐나다, 이탈리아, 일본, 브라질, 등 전 세계 40개국 TOP 10을 꿰찼다. 한국에서도 '도적'에 이어 2위에 진입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OTT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좀더 강렬한 맛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아쉬울지 모르지만, '데블스 플랜'은 두뇌 서바이벌이 갖춰야 할 기본기를 탄탄히 갖추기 있기에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 첫 탈락자가 발생한 만큼 앞으로 플레이어들의 감정도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정종연 PD가 언급했듯, 출연자들의 '귀신에 홀렸나 싶은 순간'이 얼마나 쫄깃하게 그려질기 기대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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