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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불의 섬', 직업의 명예를 건 멋있는 여성들의 서바이벌

너의길을가라 2023. 6. 13.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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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아무래도 직업을, 명예 하나 걸고 나온 사람들이다 보니까 우리 깃발 달린 거는 절대 내려놓지 말자. 그거 내려놓고 깃발이 파묻히는 모습은 죽기보다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소방 팀, 정민선)


직업의 명예를 건 여성들의 자존심 대결, 그 뜨겁고도 치열한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달 30일과 이달 6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사이렌: 불의 섬(이하 '사이렌')'이 전·후반부를 각각 공개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외에서 화제가 됐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 100'에 열광했던 시청자라면 몸과 몸이 부딪치는 생존 서바이벌 '사이렌: 불의 섬'에 흥미를 느낄 듯하다.

물론 '피지컬: 100'과 '사이렌'은 여러 차이점이 있다. 우선, 전자가 고대 그리스 올림픽을 연상시키는 실내 스포츠에 가까웠다면, 후자는 3만 평의 섬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한 기지전을 펼친다는 점에서 실제 전투에 가깝다. 무려 300대가 넘는 카메라가 동원된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이는 '사이렌'에는 여성만 출연한다는 점일 것이다.

'피지컬: 100'은 성별 구별 없이 공평한 대결을 펼쳤다고 천명했지만, 성별에 따른 근력 차이를 무시한 채 모든 참가자를 한꺼번에 경쟁시켰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피지컬: 100'을 시청하면서 럭비선수 장성민을 지목해 강인함을 보여줬던 씨름선수 박민지나 리더로서 카리스마를 과시했던 레슬링 선수 장은실 같은 여성들의 활약이 '고팠던' 이들이라면 '사이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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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들은 '형사님, 형사님' 하는데 저한테는 '아가씨‘' 아가씨가 아니고 형사입니다."
"아,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여성들도 있다.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도 있다."


‘사이렌’이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6개의 팀이 저마다의 직업군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24명의 여성들은 경찰, 소방, 경호, 군인, 운동, 스턴트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서바이벌에 참가했다. 흥미로운 건 참가자들의 직업이 그 집단의 구성이 ‘남초’이다보니, 일반적으로 남성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사이렌’은 우리의 선입견을 과감히 깨버린다.

해양 경찰 참가자는 남경에게는 형사님이라고 하면서 여경에게는 아가씨라고 부르는 세태를 꼬집고, 소방관 참가자는 “믿을 수 있는 소방관이다. 이렇게 믿을 수 있게끔 코피 터지게 열심히 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운다. “위험해서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다는 스턴트 배우 참가자의 열정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군인 참가자는 1등을 못한다면 여기서 죽을 거라며 각오를 다진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 못지 않게 직업적 역량도 돋보였다. ‘사이렌’은 ‘기지전’으로 탈락팀을 결정한다. 각 팀은 전화 지령에 따라 수비 깃발을 기지에 숨기게 되고, 불시에 사이렌이 울리면 전투복 착용 후 공격 깃발을 챙겨 기지전을 시작한다. 각 팀 기지에 숨겨진 수비 깃발을 제거하면 승리하는 방식이다. 이때 팀마다 자신들의 직업적 특성이 녹아든다. 또, 그들이 역량도 발휘된다.

경찰팀 : 김혜리·이슬·서정하·김해영
소방팀 : 김현아·정민선·김지혜·임현지
경호팀 : 이수련·황수현·이은진·이지현
군인팀 : 김봄은·강은미·이현선·김나은
운동선수팀 : 김희정·김성연·김민선·김은별
스턴트팀 : 김경애·이서영·조혜경·하슬기


치안을 지키는 경찰,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 위험으로부터 요인을 보호하는 경호, 국토를 수호하는 군인, 국가를 대표하는 운동, 완벽한 액션을 담당하는 스턴트. 이 6가지 직업의 핵심 가치가 서바이벌에서 발현될 때 시청자들은 가슴이 뛰고 설렐 수밖에 없다. 가령, 살려야 하는 직업인 소방팀과 죽여야 하는 군인팀이 맞붙을 때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한다.

그런가 하면 국토를 방위해야 하는 군인팀과 행동력이 뛰어난 스턴트팀은 공격시에 다른 결을 보인다. 잠복에 능한 경찰팀은 숨어서 지형지물과 동선을 파악하고, 화재 진압을 위해 건물에 진입해야 하는 소방팀은 과감하게 창문을 깨고 상대편의 기지로 파고든다. 운동팀은 국가대표로서의 남다른 사명감을 발휘하고, 경호팀은 위기에 빠진 연합을 보호하지 못해 마음 아파한다.

이런 흥미로운 포인트들이 발견될 때마다 저들의 직업정신에 감탄하고, 저들의 자부심에 공감하게 된다. 또, 해당 직업에 대해 형성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부당한 선입견과 편견을 개탄하게 된다. 분명 '사이렌'에서 맹활약한 24명 출연자들의 진정성은 "아,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여성들도 있다.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인정과 존중을 이끌어낼 것이다.

'사이렌'은 직업군별로 경쟁을 펼친다는 점에서 시즌제로 이어나가기에 좋은 틀을 가지고 있다. 가장 먼저 탈락한 팀의 명예회복이라든지, 연합을 구성해서 단합된 힘을 보여준 팀 간의 우정, 최후까지 승부를 펼쳤던 라이벌 팀끼리의 대결 구도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여지가 많다. 물론 새로운 직업군을 추가해 새로운 판을 짜는 것도 가능한 선택지이다.

다만, '기지전'이라는 서바이벌은 지나치게 단순했고, 한 팀씩 탈락할 때마다 공간 사용이 협소해졌으며 전략과 전술도 단조로워졌다. 또, 과도하게 피지컬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아쉽다. 경찰, 소방, 군인, 경호 등의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한 부분이겠으나, 좀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시도가 없어 서운했다.

분명 '사이렌'은 스토리텔링이나 재미에 있어 아쉬운 점이 있다. 유명인이 없고, 인물에 몰입할 여지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남성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고, 여성이 폄하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직종에서 그들의 직업정신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서바이벌 경쟁을 펼치는 와중에도 몸에 배어 있는 직업적 역량이 자연스레 발현되는 것을 볼 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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