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상관 지시 거부, 내부고발자 보호? 국정원·국방부의 웃픈 셀프개혁

너의길을가라 2014. 2. 2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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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A는 외출을 하기 전에 고양이에게 신신당부했다. "생선 잘 지키고 있어, 알았지?" 고양이는 믿음직스럽게 대답한다. "야옹~!" A는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밖을 나선다. 과연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A는 생선을 찾을 수 있을까? 이쯤되면 A는 그냥 '바보'인 거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 어떻게 된다는 것쯤은 옛날 말로는 '삼척동자'도 알고, 요즘 말로는 '초딩'도 안다. 그런데도 자꾸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기려고 한다면, 그의 지능을 의심해보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의심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 <한겨레>에서 발췌 - 


박근헤 정부는 얄궂게도 '셀프 개혁'을 강조한다. 지난 2013년 7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원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하라"며 셀프 개혁을 주문했다. 생선을 손수 맡겨주는 주인의 배려(?)에 고양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낼름(!) 챙긴 채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약 5개월 뒤, 국정원은 '셀프 개혁안'을 들고 당당히 돌아왔다. 물론 그건 '개혁'이 아니라 사실상 '심리전단'을 합법화하는 것이었다. 


'셀프 개혁안'에는 정부 기관을 제외한 국회 · 정당 · 언론사의 연락관(IO) 상시 출입 제도 폐지, 전 직원에 대한 정치개입 금지 서약 제도화, 퇴직한 직원의 정당 활동 3년 금지, 업무 관련 법률적 검토를 선행할 준법통제처 설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회 예산 통제 상설화나 대공수사권 폐지 등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었다. 정치 개입 금지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아니라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부차적인 방안들만 모아놓은 것이다. 



- <연합뉴스>에서 발췌 - 


국정원개혁 첫 메스..'정치개입 방지' 다중장치 <연합뉴스>

'댓글 환부' 못 도려낸 국정원 개혁안 <오마이뉴스>


그렇다고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긴 것과 생선을 넙죽 받아든 고양이의 행태만을 꼬집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지난 2013년 12월 31일,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특별위원회(이름도 참 길다)'는 사실상 국정원의 '셀프 개혁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론 아래의 개혁 법안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할 만하다. 예산심사 강화 등이 포함된 것은 가시적인 성과다.


국회 정보위원회 전임(상설)상임위화 및 국정원 예산심사 강화 등 국회 통제권 강화 

국정원 직원 '정치개입 지시 거부권' 부여 및 '내부고발자' 보호 강화 

국정원 · 군 · 경찰·일반 공무원 정치관여죄 형량 강화 및 공소기간 연장


하지만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국정원의 정치 · 선거개입 행위를 근절하는 데는 나아가지 못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임모임의 반주민 변호사는 "사이버심리전은 현행법으로 금지돼 있고 내부직원의 지시 거부권 행사 등도 판례 등으로 보장돼 있다. 대공수사권 폐지 및 국내정보수집 이관 등 국정원의 기능 변화가 있어야 정치·선거개입 행위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야당이 이해되지 않는다, 특검도 연계하지 않고 특위를 합의하더니 개혁안 내용도 부실하다. 사이버심리전단은 법적인 근거도 없는데 그것을 인정해줬으니 무슨 개혁안이라고 할 수 있겠나"면서 야당의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도대체 민주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국정원 폐지' 주장까지 제기됐던 것을 잊었단 말인가? 이토록 무기력하게 국정원의 '셀프 개혁안'을 받아들인 것이 의아하기만 하다.



- <YTN>에서 발췌 -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사례가 '국정원' 말고 또 있다. 바로 '군 사이버사령부'다. 박 대통령은 전방위적인 정치 · 선거 개입을 자행했던 군 사이버사령부에 대해서도 '셀프 개혁'을 지시했다. 이쯤되면 '셀프 신봉론자'가 아닌가 싶다.


군 정치관여 대책 발표.."상관 지시 거부가능" <YTN>

개혁한다더니..군, 사이버심리전 포기 안해 <한겨레>


""국민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도록 (사이버심리전을) 하겠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과연 국방부는 국정원과 달리 그럴듯한 개혁안을 들고 왔을까? 물론 그럴리가 없다.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국방부 역시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군 형법상 정치관여죄 처벌조항을 징역 2년 이하에서 5년 이하로 변경

공소시효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

상관이 정치관여 지시를 할 경우,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 · 신고 가능

군인·군무원, 정당가입이나 정치단체 결성 금지 및 선거운동과 관련된 각종 단체나 동우회의 가입도 금지


하지만 가장 논란이 됐던 '정치 개입'과 관련해서는 지금까지의 다양한(?) 활동들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군 통수권자 옹호, 정부 정책 홍보는 물론이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과 SNS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개혁안'이 맞긴 맞는 걸까? 도대체 무엇을 '개혁'한 것일까? 이에 대해 민주당의 진성준 의원은 "이번 정치 개입 방지 방안을 보면 사이버사 내부에 심의기구를 두고 모니터링을 하는 등 셀프 감시 제도에 불과하다. 과연 국방부가 정치적 중립을 준수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고 비판했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흥미로운 점은 국정원과 국방부가 모두 '개혁안'이라고 제시한 내용 중에 '상관 지시 거부 가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경우 국정원 직원 '정치개입 지시 거부권' 부여 및 '내부고발자' 보호 강화 이라고 규정됐고, 국방부의 경우에는 '상관이 정치관여 지시를 할 경우,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 · 신고 가능'이라고 되어 있다. 


국정원이나 국방부와 같은 지극히 폐쇄적인 집단 내에서 상관의 지시를 거부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또, 그와 같이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집단에서 '내부 고발자'가 나온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 설령 나온다고 한들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쉽게 와닿지 않는다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축소수사 외압 의혹을 고발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처지가 어떻게 됐는지 상기해보면 좋을 것이다. 권 전 과장의 증언은 쪽수에 밀려 법정에서 외면당하고 말았고, 그의 처지는 가히 풍전등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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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몰라도, 국정원과 국방부는 경찰보다 훨씬 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집단일 것이다. 그 곳에서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심지어 신고한다? 그 신고는 누가 받게 되는 것인가? 마치 군복무 중에 '소원 수리'를 쓰는 패기 넘치는 '짓'으로 인해, (간접적인) 필적 감정에 이어 신상이 털리고, 부대에는 싸늘을 넘어 한기가 흐를 뿐 아니라 동료들로부터는 따가운 눈빛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떠오르지 않는가? 


"생선 잘 지키고 있어, 알았지?"

"야옹~!"


대통령은 국정원과 국방부에 '셀프 개혁'을 지시했다. 그리고 문제의 두 기관은 '셀프 개혁안'을 갖다바쳤다. 어쩌면 대통령은 흡족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들은 어떠한가? 이 개혁안이 두 기관을 혁신적으로 바꿀 정도의 개혁안일까? 앞으로 국가기관의 정치 개입 및 선거 개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이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안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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