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를 듣는 귀

불온서적? 학생인권조례의 폐해? 질서와 통제를 원하는 사람들

 

사례1. 2008년 7월, 저 유명한 '군내 불온서적' 사건이 발생했다. 국방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특정한 책은 '불온(不穩)하니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줄 모르는' 대한민국 군인들은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2년에 걸친 법적 공방 끝에 헌법재판소는 결국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軍 불온서적 반입·소지 금지, 합헌" <뉴시스> 2010년 10월 28일)

 

사례2.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저 엄청난 싸움.. 학생인권조례는 교권 추락과 교실 붕괴를 가져 온다? 교사와 학생 간의 대립적 구도를 만든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줄 모르는' 대한민국 학생들은 '인권'을 말하지 말고 잠자코 있어라? 교사들의 '몽둥이(체벌)'에 간섭하지 말라?

 

사례3. "저는 이 소장(이덕일)대한 비판을 결심하면서 맨 마지막에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사도세자의 고백』이 과연 중·고등학생, 대학생에게 읽힐 만한 책인가? 이 책이 여기저기에 추천서로 올라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교 교수 정병설의 글의 일부다. 뭔가 이상하다. '중·고등학생, 대학생에게 읽힐 만한 책인가?' 다시 말하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줄 모르는'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은 그 책을 읽으면 안 된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위의 사례들은 제각기 다른 사안들이지만,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지점이 있다. 다르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맥락 속에 놓여 있다는 이야기다. 바로 '통제'다. 그것을 가(加)하는 편에 서서 말하면 '질서'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질서를 유지시키고 싶고, 통제를 가하는 쪽은 당연히 사회의 기득권 층이다. 보수적인 집단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지금 이대로', 다시 말해서 현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변화'를 무서워한다. 출렁이는 파도를 두려워한다.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 <시사INLive>에서 발췌 -

 

 

'군내 불온서적 지정', '학생인권조례 반대', '정설(?)을 뒤집는 학설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은 결국 한마디로 정리된다. '두려움'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질서'를 유지시키고 싶은 사람들 혹은 '통제'를 가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어떤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고 있는 것일까? 동등한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1 :1의 관계, 평등한 관계로 인식하고 있을까? 짐작했겠지만, 당연히 아니다. 그저 '통제를 받아야 할 대상'쯤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얼핏 보면 상당히 그럴 듯한 말로 속삭이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읽으라고 한 것만 읽어야 돼. 우리가 읽지 말라고 하는 건 읽으면 큰일나.", "그냥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괜히 나서지 마. 지시에 따르고, 명령에 복종해." 그들에 따르면, 중·고등학생, 대학생, 군인 등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안내하는 길만 따라가야 한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들은 '통제의 대상'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능력을 발견하고 깨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생이 됐든, 군인이 됐든 간에 이들은 하나의 인격체이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독립적인 인격체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학생들은 자신의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고, 군인들은 자신들이 읽을 책을 선택할 수 있다. 있어야 하고, 있는 것이 정상이다.

 

 

 

- <한국일보>에서 발췌 -

 

학생들이 '인권'을 말하는 것이 교실 붕괴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학생들의 인권을 이제서야 말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학생인권조례 시행 후 첫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학생인권조례, 체벌 억제 효과 있다" <한국일보>, 2013년 10월 1일)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지역의 학생들일수록 학교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설문에 참여한 학생 중 76.2%는 '학생을 존중해주면 학생도 교사를 존중한다'고 응답했다. 학생인권 보장이 교실붕괴를 가져온다는 일부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교사들이 바라는 것이 '존중'일까? 교사들은 '존중'받고 싶어 할까? 모든 교사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 건 그냥 '말 잘 듣는' 학생이 아닐까? '윽박지름'과 '위압'을 통해 교실의 아이들을 깔끔하게 통제할 수 있었던 그 권능을 바라는 건 아닐까?

 

학교가 이럴진대, 군대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정신전력을 보전하기 위해 불온도서 소지 등을 금지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상당히 보수적인 것이다. '정신전력의 보전'이라는 표현이 참 그로테스크하다. 결국 통제를 위해 '생각'을 버리고, '좀비'가 되라는 말이니까..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이덕일 교수를 '싫어'하는 정병설 교수도 마찬가지다. 혹은 역사학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기득권 층도 마찬가지다. 이 글에서 이덕일 교수와 정병설 교수의 논쟁(도 아니지만)을 풀어놓을 생각은 없다. 그들의 학설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을 생각도 없다. 정병설 교수의 '중·고등학생, 대학생에게 읽힐 만한 책인가?' 라고 묻는 사고방식. 그 통제와 억압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의 기사들을 클릭해서 살펴보길 바란다. 이덕일씨 책 ‘사도세자의 고백’ 싸고 논쟁가열… 李씨, 정병설 교수에 반박글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주한 연구위원의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출간 )

 

금서를 지정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선을 긋는 행위들.. '이건 보면 안돼', '너흰 너무 어려', 너희들은 아직 미성숙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하면 안돼', '통제에 따라야지',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이 지루하고 깝깝한 말들.. 또, 그런 행위와 말을 하는 사람들.. 곰곰이 돌이켜보자.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또, 좀 불편하겠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