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미국의 문정왕후 어보 반환과 일본의 부석사 불상 땡깡

너의길을가라 2013. 9. 2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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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본 기자들에게 양자회담 자리에서의 발언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그 발언 내용은)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서산 부석사 불상 건은 사법당국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판단이 내려지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 다만 도난, 약탈 등의 문화재에 대해서는 국제 규약 등이 있다. 우리 정부는 규범에 따라 원칙, 합리, 이성적으로 행동하겠다고 답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8일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 기자회견에서 서산 부석사 불상 반환 논란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유 장관의 이러한 발언을 둘러싸고 언론을 비롯한 누리꾼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창에는 유 장관을 질타하는 댓글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고, 다음 아고라에서는 부석사 불상 일본 반환 vs 돌려주지 말아야 라는 타이틀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유진룡 장관 "불상 日반환" 발언 공식 부인 <머니투데이>


'무례한 일본' VS '어설픈 한국'..부석사 불상 논란 왜 ? <아시아경제>




- <머니투데이>에서 발췌, 시모무라 일본 과학문부상(왼쪽)과 유진룡 문체부 장관(오른쪽) -


유 장관은 이에 대해 "문화재에 관한 국제규약의 원칙을 밝힌 것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필자도 유 장관의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에서 한 발언이 일종의 '접대성 멘트' 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시모무라 하꾸분 일본 문부상 및 일본 언론이 이를 '반환 취지'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시모무라 하꾸분 일본 문부상은 "(유진룡 장관이) 서산 부석사 불상을 일본에 반환할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말했고,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써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오버스럽긴 하지만 일본 측에서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국 LA박물관, 문정왕후 어보 반환 결정 <연합뉴스>



- <연합뉴스>에서 발췌 - 


이쯤에서 지난 19일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박물관(LACMA)가 문정왕후 어보를 반환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프레드 골드시틴 LACMA 수석 부관장은 LACMA를 반문한 안민석 국회의원 및 문화재 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 등에게 "어보가 종묘에서 불법적으로 반출된 사실이 분명하므로 한국에 반환하겠다"고 밝혔다. 또, LACMA는 로스앤젤레스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어보는 종묘에서 불법 반출된 것이라는 사실이 객관적인 증거와 우리 자체 조사를 통해 밝혀졌으므로 한국에 반환하기로 했다"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LACMA는 2000년 경매 시장에서 문정왕후의 어부를 구입해 소장해왔다. 


LACMA의 이러한 반환 결정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이러한 이례적인 결정에는 안민석 의원과 혜문 스님 등의 노력이 매우 컸다. 이들은 어보가 도난당한 문화재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LACMA에 지속적으로 전달하면서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결국 우리 문화재를 되찾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전쟁 때 미군 병사가 훔쳐간 47개의 어보 중 42개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지만 말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석사 불상은 문정왕후 어보의 경우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케이스이다. 우선, 문정왕후 어보의 경우엔 국회의원 등이 나서서 도난된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 등을 제출하면서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했던 것인 반면, 부석사 불상은 지난해 10월 한국 절도범들에 의해 도난당해 국내에 반입된 것이다. 일본 측에서는 '도난' 당한 불상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또, 일본 측은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 당시 부석사가 문을 닫는 과정에서 불상이 쓰시마로 옮겨졌기 때문에 반환해달라"고 주장했다. 부석사는 "고려 말기인 14세기말 왜구가 불상을 약탈했다"며 법원에 이전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대전지방법원은 "일본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소장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일방적으로 반환해서는 안 된다"며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다. 



- <SBS>에서 발췌 -


판결 이후 약간의 소강상태가 이어졌고, 이번 '한일' 양자 회담을 통해 다시 '부석사 불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발언 내용만 놓고 보면, 유 장관은 억울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유 장관의 코멘트를 '접대성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일본 측에서는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우리 측은 너무 준비가 미흡했다는 비판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이 아베 정권 이후 첫 공식 석상에서 '부석사 불상' 문제를 꺼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뻔한 일이다. 


유 장관은 몽유도원도 등 약 8만 점에 달하는 약탈문화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고, 일본은 자신들이 약탈해간 수많은 문화재에 대해선 일언반구하지도 않은 채 부석사 불상에 대해서만 열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보통 낯짝으로는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부석사 불상의 경우에는 일본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소장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은 문화재가 아니던가? 


분명, 미국 LACMA의 문정왕후 어보 반환과 부석사 불상은 다른 케이스다. 문정왕후 어보에 관해선 불법 반출됐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이 됐지만, 부석사 불상의 경우엔 그렇지 못하다. 부석사 측와 일본 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심정적으로는 부석사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명확한 증거가 없는 실정이다. 이 문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역사학자 등이 참여해서 '불법 반출'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가 이렇게 풀리길 희망한다. 우선, 대한민국은 절도범이 훔친 부석사 불상을 일본 측에 반환한다. 어찌 되었든 '훔친' 것은 잘못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묵과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일단 반환받은 일본은 대한민국에 자신들이 과거에 불법 반출한 부석사 불상을 다시 반환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약탈해간 약 8만 점에 달하는 문화재도 반환한다. 이것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상적인' 정도이지만. 


현실적인 전개? 아무래도 '객관적 증명'을 놓고, 길고 긴 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물론 부석사 불상을 일본 측에 반환하는 것은 불가하다. 법원의 판결처럼 '일본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소장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일본 측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 한 '일반적인 반환'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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