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박정희 재평가? 밝은 면만 보려하는 박정희 옹호론의 한계

너의길을가라 2013. 10. 2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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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 관해 논하기에 앞서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박정희는 악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 '악마적 속성'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를 '악마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다. 반대로 박정희를 우상화 · 신격화하려는 태도도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한 비판에 호통으로 대응하거나 눈물로 호소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고 괴기스러운 일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1. 경제 발전을 위해 독재는 어쩔 수 없었다. 

2. 독재를 한 것은 잘못이지만, 경제를 발전시킨 것은 인정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독재 =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독재가 나쁜 것이라는 것까지는 동의하는 것 같다. 물론 첫 번째 부류에는 독재를 긍정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런 놀라운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논의에서 배제하도록 하자.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할 수 있는 최대치는 '독재 = 나쁜 것' 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독재 = 좋은 것'이라는 그로테스크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면, 첫 번째 부류에서 남는 것은 독재는 필수불가결하다는 사람들이다. 과연 당시의 상황에서 독재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나?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에겐 한 가지 관문이 남아 있다. 



일제시대는 욕하면서 군부독재는 괜찮다고?


필자는 위의 글에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독재는 어쩔 수 없었다 혹은 먹고 살게 해줬으니까 독재 정도는 눈 감아주자는 주장에 질문을 던졌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일제 강점기도 긍정할 수 있는가? 뉴라이트의 주장처럼 한반도의 근대화를 가져왔던(?) 일제의 식민 통치를 옹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모두 뉴라이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과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짐작한다. 또, 대부분 뉴라이트처럼 '엘리트'도 아닌, 삶이 고달픈 '서민'들 아닌가? 


군부독재를 먹고 살게 해줬다는 이유만으로 긍정한다면, 우리는 논리필연적으로 일제의 식민통치도 환영해야만 한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밥을 먹여준다고 때리는 아버지를 찬양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리는 이쯤에서 다시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독재 = 나쁜 것'이라는 합의 말이다. 


물론 박정희가 독재를 한 목적 혹은 동기는 일제의 것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일제는 수탈을 위해서 그러했지만, 박정희는 잘 살게 해주려고 그랬던 것 아니냐는 항변 말이다. 박정희가 독재를 한 목적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물론 박정희는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 목적이 박근혜가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인 "100% 대한민국"를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일제 강점기에도 부자들은 여전히 잘 살았고, 가난한 이들은 굶주렸다. 일제도 조선을 멸망시킬 생각은 없었다. 식민지 조선은 일제를 위해 꼭 필요했고, 더 잘 수탈하기 위해선 경제 발전을 시켜야 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제 보다 양심적인 두 번째 부류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박정희의 독재가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경제를 발전시킨 공에 방점을 두는 사람들 말이다. 공과 과를 나누어 생각하는 자신을 나름대로 '객관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박정희 시대의 경제 신화를 집중적으로 해부한 책들이 시중이 많이 나와있다. 유종일의 『박정희의 맨얼굴』이나 조희연의 『개발독재시대』, 김재홍의 『박정희 유전자』등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 그 모든 부분을 다 짚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몇 가지 경제적 상황들과 수치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다른 글에서 충분히 소개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 이맹희 씨의 증언은 박정희 시대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자료다. 


"박 대통령이 한국 근대화의 공로자라고 하는 말을 내가 부정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언젠가는 청와대 내의 야당이라고 불리던 육영수 여사가 어느 부정 사건을 듣고는 '이렇게 부정을 하는데도 예전에 비하면 살기가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들리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썩을 대로 썩어 있었으니 그 당시 그런 경제체제 하에서 우리가 수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도 불가사의한 일로 여겨진다."


이것이 박정희 시대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당시의 대한민국은 내부적으로 썩을 대로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1969년부터 한국 경제는 심각한 불황 국면에 접어든다.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이 달러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인데, 이로써 차관의 원리금 압박이 가중되고, 신규 차관 도입이 어려워졌다. 외채 총액은 69년 19억 달러, 70년에는 30억 달러까지 치솟는다. 69년 5월 9일, 정부는 차관업체 89개 등 정부기업의 45%가 부실 기업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경제성장률은 둔화(1969년 13.8%, 1970년 7.6%, 1971년 8.8%, 1972년 5.7%)됐고, 노동자들에겐 가난과 궁핍만이 남게 됐다. 노동쟁의가 급증하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다. 




소위 '박정희 시대'의 경제 상황이 이토록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옹호론자들이 내세우는 것은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인프라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러한 인프라가 대한민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그림자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그야말로 군사작전처럼 이뤄졌는데, 그만큼 엄청난 동원이 이뤄졌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싼 건설비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공사를 마쳤지만, 건설중 사망자가 77명이 나왔고, 1990년 말까지 보수비로 약 1,527억 원이나 비용이 들었다. 


일부 박정희 옹호론자들은 경부고속도로를 언급하면서 김대중 등의 야권은 반대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제시한다. 당시 세계은행의 자매기구인 국제개발협회는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남북종단봐는 횡단도로가 더 시급하다"면서 차관 지원에 미온적이었다. 김대중 등의 야권이 고속도로 자체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김대중은 서울-부산간에는 철도망과 국도 · 지방도가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서울-강릉간 고속도로를 먼저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를 밀어붙였고, 그 선택이 지역간 불균형을 심화시킨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포항제철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보자. 박정희는 1968년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기필코 제철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철소를 건설할 돈이 없었다. 박정희의 선택은 일본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었고, 일본 총 1억2천3백70만 달러를 지원한다. 일본을 설득하기 위해 동경으로 날아간 경제부총리 김학렬이 비공식자리에서 "포항종합제철소의 건설은 일본 청강업계의 사업계획의 일환으로 생각해달라"고 아양(?)을 떨었다고 한다. 


포항제철 건설은 한-미-일 관계의 구조적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의 무상원조가 끊어진 상화에서 한국이 기댈 곳은 일본밖에 없었다. 상당히 불쌍한 처지였던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1970년 일본의 야쓰기는 한일경제협력위원회 2차 총회에서 일본 간사이 경제권과 한국 남해안공업지대를 긴밀하게 결합시키고 노동집약적 · 공해 사업을 한국에 옮긴다는 구상을 제시했고, 이에 따라 한국의 중화학공업화 추진이 가능했는 것이다. 



양심적인 박정희 옹호론자들은 박정희를 평가하려면 공과 과를 따로 봐야 한다는 비교적 합리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면서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등의 사례를 들며, 이러한 인프라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들마저 경부고속도로의 명암, 포항제철의 명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애석한 일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가져온 대한민국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는 '경제'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속도로 건설이 가져온 부동산 투기와 농촌 사회의 변화 등도 면밀히 따져봐야만 한다. 또, 포항제철의 성공 뒤에 일본의 노림수가 있었던 것도 확인해야 한다. 


박정희의 경제 신화는 69년 이후의 경제 지표를 놓고 봐도 '허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박정희 옹호론자들은 이를 외부적인 요인으로 돌리며,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인프라'를 자랑하는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러한 인프라에도 명암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77명의 사상자를 비롯해서 수많은 노동자와 동원된 군인이 있었다. 포항제철을 짓는 과정에는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가며 일을 했겠는가? 경부고속도를 밤낮 가리지 않으면 달렸던 이들도, 포항제철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쳐가며 조국을 위해 일했던 주체는 '박정희'가 아니라 '노동자'들이며, '우리'들이었다.


우리는 어째서 '우리'가 이룩한 성과들을 '박정희' 개인에게 돌리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일까? 박정희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가난에서 허덕이고 있을까? 그 정도로 우리 자신들을 폄하하는 것이 즐거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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