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논리를 들먹이는 건 적들만이 아니며, 우리가 찬성하는 주장의 근거 역시 함량 미달일 때가 있다.' 따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줄리언 바지니는 책의 첫 장에서부터 독자들을 바짝 긴장시킨다.
줄리언 바지니의 『가짜 논리』는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논증의 오류 77가지를 소개한 책이다. 줄리언 바지니는 언론을 통해 실제로 공개됐던 정치인이나 언론 매체, 혹은 그 외의 유명인들의 발언들을 소개하며, 그들이 범하고 있는 논리의 오류를 지적한다.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해지기도 하는 그런 책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그 불편을 인정하고, 오류의 함정에서 벗어나도록 끊임없이 나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숙제를 남긴다.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마지막 챕터인 77번째 꼭지(내 말의 빈틈을 찾아라)를 통해, 우리의 숙제의 부담감을 덜어준다.
자만심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경계할 것. 절대로 자신의 논리는 합리적이라고 과신하지 말 것. 자신의 추론에서도 늘 빈틈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두 번째는, 명석함과 아둔함, 좋은 논증과 허술한 논중을 나누는 경계선이 선명할 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개인적으로 『가짜 논리』를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던 챕터들을 소개한다. 너무 많나?
2. 민주주의는 다수결주의가 아니다. - 민주주의의 오류 -
4. 우유는 송아지가 먹어야지 - 발생적 오류 -
5. 살인은 했지만, 살인자는 아니다. - 정의의 축소 -
9.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 내가 안 하더라도 누군가는 할 것 -
13. 믿는 대로 들리는 법 - 확증 편향 -
20. 과거 만들기 - 사후 합리화 -
25. 양자택일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 잘못된 이분법 -
26. 뒤돌아 볼 때는 누구나 현자 - 예언은 선경지명이 아니다 -
27. 편한 대로 해석하기 - 동기의 억측 -
31. 그 사람들이야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 오류의 면역성 -
37. 행운의 로또 오리 - 인과의 오류 -
42. 승자가 있다고 반드시 패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 합리 제로가 아닌 제로섬 -
48. 흔해빠진 권위들 - 가짜 권위 -
51. 의미 없는 승리 - 허수아비 공격을 오류 -
52. 거짓과 진실의 교집합 - 절반의 진실 -
55. 대답이 결정된 질문 던지기 - 복합의문문의 오류 -
70. 전부 다 나쁘지 않으면 전부 다 좋은 것 - 부분적인 옹호 ≠ 지지
72. '만약에'란 없다 -가설 사절 -
74. 과도한 걱정이 위험을 부른다 - 공포 장사 -
미사여구가 합리적인 논증을 대체할 수는 없으므로, 이성의 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오류의 가능성을 늘 경계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에게서 찾아냈을 때 비판을 아끼지 않는 설득의 꼼수를 자신도 과다하게 사용하지는 않는지 주의해야 한다.
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 근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 오류를 지적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근거에 대한 비판을 주장에 대한 비난으로 여기고, 심지어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올바른 주장을 하기 위해선 단지 목소리의 볼륨만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어림도 없다. 우리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그 주장과 근거의 논리적 오류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얼굴을 붉힐 일이 아니라 오히려 반겨야 할 일이다. 그런 과정을 거쳤을 때, 우리의 주장은 (당연하게도) 보다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줄리언 바지니가 던지는 무겁고도 통렬한 질문을, 나와 여러분에게 다시 돌려드리고자 한다.
마치 면역 반응처럼 "그 사람들이야 그렇게 말하겠지"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에 배치되는 시각을 일축한 일은 없는가? 여기서 우리가 따져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나의 가장 확고한 신념을 바꿔놓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그걸 가능하게 해줄 증거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자신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마저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생각이 경직됐을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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