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여행기

[버락킴의 구라시키 여행기] 1. 당신이 구라시키에 가야 하는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9. 5. 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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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시키."

"뭐? 구라시키?"


최근 몇 년동안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더니, 요즘엔 만나는 사람마다 '이번엔 어디로 여행을 가냐'는 질문이 인사처럼 따라붙는다. 어김없는 안부 인사에 정직하게(?) 대답을 했더니, 다들 장난치는 거 아니냐는 얼굴로 쳐다보는 게 아닌가. 무심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원체 '묘한' 이름 때문이었을까. 예외없이 말장난을 걸어왔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도 아니었고, 그 반응이 재미있어서 흔쾌히 맞받아치곤 했다. 


"하하, '구라' 아니라니까?"




부연 설명을 곁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카야마 현(어차피 이 지명도 생소할 테지만)에 있는 소도시(인구 47만의 도시를 소도시라 말하긴 애매하지만)야.", "'구라시키 미관지구'라고 일본의 옛 정취를 잘 보존한 곳이야." 열심히 떠들어댔지만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평소의 장난기를 탓해야 할까. 결국 포털 사이트에서 사진을 검색해 보여줬더니, 그제서야 "이런 데가 있었구나?"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렇다니까! 진짜 예쁘지?"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둘로 나뉘었다. 먼저 '낭만을 모르는' 이들은 '그런 한적한 곳에 무슨 재미로 가냐?'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낭만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은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평화로운 곳이 있었냐?'며 얼굴에 화색이 됐다. 금세 관심을 보였고, 네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어서 털어놓으라는 눈빛을 보냈다. 어쩌겠는가, 못 이기는 척하며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이야기들을 건넬 수밖에. 참고로 구라시키와 관련된 여행 가이드 책은 찾기 어려웠다.



구라시키[倉敷]는 일본 혼슈[本州] 오카야마 현[岡山縣]에 있는 도시다. 다카하시 강[高橋川] 하류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름에 창고를 뜻하는 창(倉)이 들어있는 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 구라시키는 도쿠가와 시대에 쌀 · 목화 · 기름의 주요 집산지였다고 한다. 자연스레 창고가 많이 지어졌고, 지금도 전통적인 양식의 창고가 많이 남아 있다. 지금은 대규모의 공업시설이 이전돼 서일본을 대표하는 공업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만 들으면 왠지 재미가 없다. 역시 구라시키를 설명하려면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언급해야 한다. 미관지구(美觀地區)라는 말에서 자연스레 '아름다움'을 연상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일본의 17세기의 옛 정취가 조성 및 보존돼 있다. 미관지구 안에 자리잡은 인공 운하와 그 물길을 따라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운하 양옆으로 쭉 늘어선 아기자기한 상점들은 구라시키의 백미다. 사실 구라시키를 여행지로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도 운하의 풍경이 담긴 사진 때문이었다.


- 오하라 미술관 -


막연히 그 한가로움이 좋았다. 넋을 놓고 사진을 들여다 보게 됐다. 아마 평온함이 그리웠던 것 같다. 휴식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북적대는 도시를 떠나, 귓가에 울리는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한 풍경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히 들었다. 2015년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신화의 김동완이 소개를 하면서 다소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 관광객의 수가 적다고 하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또, 구라시키는 문화 중심지의 역할도 하고 있다. 구라시키의 대표적인 가문인 오하라(大原)의 이름을 딴 오하라 미술관은 놀라운 컬렉션을 자랑한다. 이 생소한 지명의 도시에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해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으니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세잔, 고갱, 르누아르, 피카소, 잭슨 폴락, 앤디 워홀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또, 모네와 마티스의 작품은 작가로부터 직접 구한한 것이라 하니 그 의의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왠지 숨은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거길 어떻게 찾아가지? 가고 싶은 여행지를 찾았으니 이제 찾아가는 일만 남았다. 구라시키의 매력에 푹 빠져 아드레날린이 충분히 분비된 만큼 지체할 수 없었다. 방법을 찾는 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미 마음 속에서 구라시키는 가야만 하는 곳이 됐다. 구글 지도를 펼쳐두고 구라시키와 그 주변 지역을 살폈다. 또, 인터넷을 통해 여러 정보를 취합했다. 구라시키로 가는 루트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1 오카야마 → 구라시키

2 다카마쓰 → 구라시키 

3 오사카 → 구라시키 


일반적으로 구라시키는 오카야마 여행 일정의 일부로 소개된다. 오카야마 성[岡山城]과 18세기 일본의 정원을 복원한 고라쿠엔[岡山後楽園]을 둘러보고, 오카야마에서 JR을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구라시키에 들러보라는 식이다. 오카야마로 가는 직항 노선(대한항공)이 있기 때문에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여행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여행 코스이다. 가장 무난한 일정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루트는 다카마쓰(高松)에서 구라시키로 이동하는 동선이다. 일반적이진 않지만,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우동으로 유명한 다카마쓰에서 맛집 투어를 한 후, JR을 타고 오카야마를 거쳐 구라시키를 들르는 것이다. 아무래도 다카마쓰에만 머무르기는 지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카마쓰까지 직항 노선(에어서울)이 있으니,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1'과 '2'를 아우르는 루트를 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1'의 단점은 직항 노선이 있으나 오전 8시 비행기를 타고 오카야마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돌아오는 비행기도 오전 9시 30분으로 상당히 이른 편이다. 여유가 없어서 개인적으로 피하고 싶은 일정이다. 특히 돌아오는 날에 '이별'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없다는 점이 싫어 가급적 그런 일정은 짜지 않는 편이다. '2'의 단점도 마찬가지다. 오전 8시 25분에 다카마쓰로 출발, 오전 10시 5분에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 도톤보리의 모습 -


그래서 선택한 루트가 바로 오사카[大阪]에서 구라시키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지도로 보면 거리가 꽤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 200km 정도 된다), 신칸센이라는 좋은 교통수단이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비용 문제도 '간사이 와이드 패스(는 여행 전에 미리 구입하면 좀더 저렴하다)'라는 좋은 아이템이 있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 물론 '1'과 '2'보다 비용이 조금 더 들긴 하지만, 일정의 여유를 위해서 그 정도는 더 지불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신칸센을 타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여행 첫날은 무리하게 이동하기보다 오사카에서 1박을 하면서 느긋하게 보내고, 다음 날 구라시키로 떠나 2박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그득한 구라시키의 매력이 더욱 와닿을 수 있도록 오사카의 도톤보리에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경험하기로 했다. 비교 체험이라고 할까. 13년 만에 만나게 된 오사카도 반가웠지만, 역시 여행의 초점은 오로지 구라시키에 맞춰져 있었다. 어서 빨리 고요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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