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이부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삼성은 깨달을 수 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4. 3. 2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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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텔 들이받은 택시기사, 이부진이 살렸다 <조선비즈>

'삼성家' 이부진, 어려운 택시기사 4억 탕감 "이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조선일보>

 

누구보다 놀란 것은 바로 '삼성'이었을 것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알려지자 인터넷에는 '훈풍(薰風)'이 불었다. 삼성과 관련된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이 대체로 비판적인 성격을 띄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물론 <조선비즈>와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은 낯뜨겁고, 그에 달린 베플(베스트 댓글)들의 내용도 살짝 민망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기사의 내용은 훈훈한 것이었다. 호텔신라 측은 '주목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면서 표정 관리에 들어갔지만,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반응이 폭발적이다. 

 

 

- <조선비즈>에서 발췌 -

 

당시엔 화제가 됐지만, 시간이 조금 흘러 기억이 나지 않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사건을 설명해보기로 하자. 지난 2월 25일, 모범택시 1대가 신라호텔의 입구인 회전문을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택시 운전기사 홍 씨(82)는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경찰은 홍씨의 운전 부주의로 결론을 내렸다. 뻔히 존재하는 급발진을 언제까지 '운전 부주의' 혹은 '운전 미숙'으로 넘어가려는 것일까? 어쨌거나 신라호텔의 피해액은 5억 원 가량. 홍씨는 5,000만 원 한도의 책임 보험을 가입해두었지만, 그것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만큼 큰 금액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리라.

 

다행스럽게도, 이부진 사장이 이 사건을 직접 챙겼던 모양이다. 이 사장은 한인규 부사장을 불러 "택시 기사도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것 같지 않은데, 이번 사고로 충격이 클 것이다. 집을 방문해 보고 상황이 어떤지 알아봐 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상황 파악을 해본 결과, 고령(高齡)의 홍 씨는 낡은 빌라의 반지층에 살고 있었고, 몸도 성치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이부진 사장에게 보고됐고, 이 사장은 홍 씨가 일으킨 사고에 대한 피해액을 사측에서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홍 씨는 "사고 이후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거리에 나 앉을 상황에 눈 앞이 캄캄했다. 신라호텔에 피해를 끼쳤고, 사죄해야 하는데 도리어 이런 호의를 받아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서 신라호텔에 대해 미안한 마음과 함께 고마움을 표시했다. 

 


기업은 이미지로 장사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기업에 있어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기업들이 그토록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광고에 집착하겠는가? 이부진 사장의 '미담(美談)'이 공개되면서, 이 사장을 비롯해 호텔신라에 대한 이미지는 급호감으로 바뀌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부진 사장을 치켜세우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타이틀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평사원'과 연애 끝에 결혼한 독특한(?) 이부진 표 '러브 스토리'도 재조명하고 있다. 4억 원의 변상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을 얻은 셈이다. 


삼성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정의당조차도 공식 트위터를 통해 "정의당 트위터는 삼성이라면 무조건 비판만 할 것 같죠? 아닙니다. 칭찬할 건 팍팍 칭찬합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님, 정말 잘하셨습니다. 약자를 대하는 삼성의 자세가 앞으로도 쭈욱 이랬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이부진 사장에 박수를 보냈다. 

 


- <연합뉴스>에서 발췌 - 


노회찬 "대법원, '삼성 X파일 사건' 공공의 관심사 아니다" <스포츠서울>

이건희-이재용 '편법 경영권승계' 아니다‥대법원 무죄판결 <뉴시스>

문재인 "삼성, 태안에 사회적 책임..정부도 책임" <머니투데이>

황유미父 "삼성직원, 영화보다 더했다" <노컷뉴스>


하지만 삼성에 있어 이부진 사장은 '개인적 일탈'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이부진 사장의 미담 속에서도 여전히 삼성의 어두운 그림자는 짙게 깔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삼성 공화국(공화국이라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대한민국의 삼성이 아니라 삼성의 대한민국이 되어버린 지도 오래 됐다. 삼성의 입김이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만큼 절대적인 힘을 갖고,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정부의 경제 정책의 밑바탕이 된 것이 사실이다. '원격 의료'의 뒤에 '삼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 아니던가?


'삼성 X파일 사건'는 타락한 대한민국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주었고, 이건희로부터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 및 재산 증여는 '꼼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전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삼성 제품이 하나도 없는 집이 있던가?)를 바탕으로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그만큼의 사회적인 기여나 공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럴 수 있는 기회는 무수히 많았지만, 그때마다 삼성은 밥상을 걷어찼다.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의 예인선이 충돌하면서 유조선의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벌어졌지만, 정작 삼성은 책임을 외면했다.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를 비롯한 수많은 피해 노동자들의 사례는 어떠한가? 삼성은 끝내 이들을 외면했다. '꿈의 직장'이 '저주의 직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됐지만, '상영관 축소 논란' 끝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못한 채 막을 내려야 했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이부진 사장의 '미담'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것이 기업 이미지를 위한 선택이었든, 선량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던 간에 박수 쳐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미담'이 화제가 되고,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이런 사례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벌이나 기업인 등 사회적 기득권 층이 보여준 모습은 '돈질'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고 억압하는 것뿐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우는 없었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그 말은 사어(死語)가 되지 않았던가?


과연 이부진 사장의 미담이 만들어 낸 '긍정적인 효과'가 삼성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재벌과 기업(인)에 '파동'을 일으킬 수 있을까? 너무 순진한 바람일까?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법이다. 이건희 회장도 '써야할 곳 안써도 좋을 곳을 분간하라. 판단이 흐리면 낭패가 따른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물론 상당히 아이러니하긴 하다) 


삼성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판들을 직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삼성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삼성을 위한 사회적 고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그만큼 자랑스러운 기업 삼성이 사회로부터 존중받고,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이부진으로부터 비롯된 변화의 바람이 삼성을 비롯한 재계와 대한민국 전체로 번져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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