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유치해? 애니메이션의 선입견을 날려버린<인사이드 아웃>

너의길을가라 2015. 7. 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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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거 아냐?"


혹시 <인사이드 아웃>이 '애니메이션(animation)' 영화라는 이유로 당연히 유치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 그런 은 적어도 은 '독(毒)'다. <인사이드 아웃>은 애니메이션을 표현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지만, 그 장르에 국한(局限)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영화적 힘을 구현한다. 그렇다. <인사이드 아웃>의 방점은 애니메이션 '영화'에 찍혀야 마땅하다.



"감정들의 모습을 디자인하는 것은 감정들을 의인화하는 작업이었다. 감정을 수천 개의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에너지로 생각하고 성격뿐만 아니라 모양, 색깔까지 각 감정들을 나타낼 수 있도록 표현하려 했다" (피트 닥터 감독)


화산섬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오프닝 애니메이션 'Lava'가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다루고 있다. 기쁨(Joy), 슬픔(Sadness), 버럭(Anger), 까칠(Disgust), 소심(Fear)이라는 다섯 가지의 감정을 그 특성에 맞게 의인화한 것은 이해도를 높이는 동시에 전달력 면에서도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잠시 <인사이드 아웃>이 구축한 세계관을 들여다보자. 인간의 머릿속에는 감정을 컨트롤 하는 본부가 있다. 특정한 상황이 발생하면 다섯 가지 감정들이 그에 맞는 반응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억들은 '구슬'로 저장된다. 각각의 구슬들은 저마다의 '색'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곧 기억의 성격을 규정한다. 기쁜 기억은 금빛으로 빛나고, 슬픈 기억은 푸른 색으로 표현된다.


매일같이 구슬들은 장기 기억 저장소로 옮겨지고, 그 가운데 오래된 기억들은 심연(深淵)의 쓰레기장으로 버려진다. 꼬마 시절 외웠던 인형의 이름 같은 것들이 지금은 떠올지 않는 건 그 기억 구슬들이 쓰레기장에 버려져 색이 바래졌기 때문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핵심 기억 구슬'로 분류된 기억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핵심 기억 구슬은 한 인간의 인격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경우, 주인공 라일리의 핵심 기억은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탔던 경험, 아이스하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을 때 자신을 위로해주던 가족과 친구의 따뜻한 온기 같은 것들이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핵심 기억'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핵심 기억은 어떤 색으로 당신에게 남아 있는가?


이제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라일리는 '기쁨'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서 밝고 착한 소녀로 자라났다. 라일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가득찬 기쁨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만을 주입한다. '버럭', '까칠', '소심'을 밀어낼 뿐만 아니라 특히 '슬픔'이 개입할 여지를 철저히 차단한다. 원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할 정도로 배척한다.



다. 가? 까. 만 이렇듯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느새 '강박'이 되어 버렸다. 무조건 '웃는 것'만이 행복해지는 길인 걸까? '슬픔'이 존재하지 않는 삶, 그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일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인사이드 아웃>은 이러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기쁨'이 '슬픔'을 억누르려는 강도(强度)가 점차 세지자 공교롭게도 둘은 함께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다. '기쁨'과 '슬픔'이 사라진 감정 본부는 혼란에 빠지고, 이는 자연스럽게 라일리의 사춘기로 연결된다. 생각해보라. '버럭', '까칠', '소심'만 남은 소녀의 모습을!



이를 바로잡기 위해('기쁨'의 입장에서 볼 때) 감정 컨트롤 본부로 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기쁨'은 깨닫게 된다. 인간의 감정 가운데 '슬픔'이 존재하는 이유를 말이다. 우리를 성장시키는 건 '슬픔'이라는 감정이고, 이를 이겨내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더욱 단단한 존재로 거듭난다. 또, 슬픔으로 가득찬 순간에 옆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전해진 위로가 관계를 더욱 성숙시킨다. 가족, 친구, 연인라는 이름의 관계들이 모두 그렇지 않은가?


'기쁨'이 '슬픔'을 이해하고, 늘 주눅들어 있던 '슬픔'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되자, 라일리는 한층 더 성숙하게 된다. 라일리가 드디어 감정의 균형을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색밖에 갖지 못했던 구슬(감정)들이 다양한 색(감정)의 조합을 이루기 시작한다. 이젠 영화의 초반에 단색으로 표현됐던 구슬들이 기괴하게 여겨질 정도다.


<인사이드 아웃>은 다양한 감정들이 제 기능을 다 할 때 비로소 인간이 성숙해지고 더 나아가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마냥 웃기만 한다든가, 부정적인 상황을 애써 긍정하는 방식의 문제 해결은 당장은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막혀버린 감정의 흐름은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화가 날 때는 '제대로' 화를 내야 하고, 슬픔이 밀려올 때는 '제대로' 슬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사이드 아웃>이 '기쁨'의 강박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절실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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