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관객들을 향해 담담하게 묻는 <소수의견>, "근데 넌 뭘 했냐?"

너의길을가라 2015. 6. 2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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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수의견>을 보고 나서 SNS에 짧은 글을 남겼다.


<소수의견>과 <연평해전> 중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수의견>을 선택하는 여자가 굳이 말하자면 이상형. 하지만 '<소수의견>이 뭐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태반일 테고, 그런 선택을 하는 여자도 절대적 소수일 것이 분명하므로, 한 치의 망설임은 모른 척 넘어가는 걸로.


실제로 스코어 차이는 현저하다. <연평해전>은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현재(28일)까지 누적 관객 수 1,438,306명을 기록하고 있다.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제시장>에 이은 또 한 번의 흥행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소수의견>은 누적 관객 수 215,468명으로, 관객들의 관심에서 한 걸음 비껴 있는 형편이다.




"공분을 불러일으키려고 만든 게 아니라 공감을 위해 만들어졌다. 사회 풍경을 보여주려고 했던 거죠. 전 '진정성' 같은 말 별로 안 좋아해요. 촌스러워요. 저라고 가치관이 없고, 정치 성향이 없겠어요? 그런데 전 특히나 이런 영화를 그런 식으로(가령 진정성으로) 접근하는 건 별로인 것 같아요. 제 취향이 그래요." (김성제 감독)


굳이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글을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평해전>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각각 연평해전과 용산참사라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이 두 영화를 정치적 지향의 차이로 이해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6명의 숭고한 죽음(부상자는 18명), 제2연평해전의 기억이 어찌 특정한 정치적 입장의 소유일 수 있겠는가? 또, 평생을 살아온 터전을 잃게 된 철거민, 그 소시민들의 투쟁과 눈물에 대한 공감이 어떻게 일부 정치적 입장만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두 영화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단지 '취향의 차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슬픈 장면에서 슬픈 음악이을 깔아놓고 "여기서 울어!"라고 강요하는 듯한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등)는 왠지 피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소수의견>은 강제철거 현장에서 열여섯 살 아들을 잃은 아버지 박재호(이경영)의 슬픔조차 담담하게 그려낸다.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관객들의 감성을 '깊은 곳에서부터' 뒤흔들어 자극한다. 슬픔을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라고 할까?




분명 <소수의견>은 아주 잘 '빠진' 영화는 결코 아니다. 전반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띄고, 몰입이 되기 시작하는 중후반까지 다소 어수선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법정 영화로서 특별한 반전이나 색다른 시도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점들이 <소수의견>의 가장 큰 미덕이다. '담담하다'는 것 말이다.


피고는 경찰이 아들을 죽였다고 주장하고, 검사는 경찰이 아니라 철거 용역이라 주장하는 상황. 경찰 기록은 완벽히 차단되고, 사건을 조작 · 은폐하려는 검찰과 큰집(청와대)의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한다. 이 사건을 맡은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과 그의 선배 장대석(유해진)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100원 국가배상청구소송'을 거는 회심(會心)의 승부수를 둔다.




한 쪽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한다는 일부의 주장과는 달리 <소수의견>은 초지일관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고자 애를 쓴다. 아니, 그냥 있는 그대로를 비춘다. 투쟁하는 철거민의 모습에 '동정'을 담지도 않고, 이를 진압는 경찰의 모습에 '악'을 뒤집어 씌우지도 않는다. 물론 타락한 권력과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검찰의 민낯을 드러내는 데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긴 하지만, 이를 두고 '편견'을 들이댈 순 없을 것 같다. 그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소수의견>을 감상하는 포인트는 다양하겠지만, 그 누구도 믿지 않았고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경찰이 아들을 죽였다"는 박재호의 주장, 그 '소수의견'이 어떤 과정을 통해 '다수의견'이 되어 가는지에 초점을 맞춰 <소수의견>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한 덕분에 법정 용어들이 관객들에게 쉽게 소개되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극비수사>에서 웃음기 없는 정극 연기를 손보였던 유해진은 그 중간 지점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윤계상도 지방대 출신 2년 차 국선변호사 윤진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성제 감독은 그를 캐스팅한 이유로 "그의 얼굴에 청년의 표정이 있어서 참 좋았"고, "황량해 보이는 청년의 표정. 그게 윤진원과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연기력으로 승부를 볼 정도도 아니었다. 특히 김옥빈의 롤(역할)은, 흐름 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다소 빈약했다.


사건을 조작하려 했던 검사 홍재덕은 결국 옷을 벗고, 유명한 로펌(광평)의 변호사가 된다. 그리고 윤진원과 마주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봉사로 돌아가는 거야. 박재호는 희생을 했고 나는 봉사를 했어. 근데 넌 뭘 했냐?" 윤진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저 홍재덕이 건넨 명함을 던지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제 그 질문은 관객들에게로 향한다. 대답은 우리의 몫이다. "근데 난 뭘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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