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연평해전>을 본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눈물이 아니라 생각이다

너의길을가라 2015. 7. 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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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대한민국' 그리고, 그 '대한민국'을 지켜낸 사람들. 그들은 우리의 아들, 남편, 친구였습니다.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이 가장 뜨거웠던 그날의 실화.


럼, <전>은 '제2전'만, '음'등의 감정을 에 치중하고 있다. 론 '억'서 <전>만, 다. 


영화 <전>서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제2전'수는 다. 다소 민감한 부분일 수 있지만, 피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에 앞서 '영화'에만 초점을 맞춰 간단히 평을 하자면, <연평해전>은 결코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었다.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답습했을 뿐더러 관객에게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기보다 의도된 감정선을 따라올 것을 강요하는 영화였다. "이쯤에서 울면 돼. 자, 울어!"



<연평해전>을 보고 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생각'이다.


많은 관객들이 <연평해전>을 '슬픈 영화'로 인식하고, 제작사도 그런 식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 다. 북한 해군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인한 아비규환과도 같았던 연평해전.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한 비극적인 사태. 영화로 그려진 그 참담했던 전투는 분명 슬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연평도에서 벌어졌던 그 사건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 미안한 마음이 더욱 눈물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이젠 잊지 않을게' 정도일까. 하지만 단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제2연평해전을, 그 안타까운 죽음을 제대로 기억하는 방법일까?



는 '각'다. 제2지, 제1지, 다. 또, 다. 리 357가 '집'다. 리(3~4km)고, 다.


은 '각'다. (면, 다. 만, '중'다) 참수리 357호와 북한 함정이 수 백 미터까지 접근하게 되는 장면에 대한 설명이 <연평해전>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포격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그 물음표는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2002년 6월 29일 교전 당일 해군의 작전을 보면, 당시 해군본부 정보작전부장은 반드시 북한 함정과 4Km의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는 의견을 통보했고, 2함대사령관의 지시도 3km 거리를 유지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해군본부와 2함대사령부가 공히 북한 함정과 3~4km 거리를 유지하라는 방침을 세웠는데, 왜 수 백 미터 코 앞까지 접근했는가? 선제사격하지 말라는 지시와 북한 함정과 근접하는 경우, 이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가장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되는데, 불행히도 당시 상황이 그랬다. 그 때 2함대사령관이었던 정병칠 제독이 3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 분이 생전에 '당일 잠깐 사령관실에 올라간 사이 합참에서 상황실에 직접 지시를 해 고속정이 차단 기동을 하게 되었다. 내가 상황실에 내려와 있을 때는 이미 근접한 상황이었다'는 증언을 군 선배들에게 했다. 북한 함정에 바짝 근접했던 이유는 해군의 자체판단이 아니라, 당시 합참에서 2함대사령부 상황실을 직접 통제해서 내렸던 지시사항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근접기동을 명령한 사람은 누구인지 조사도 되지 않았고 책임 규명도 없었다. 당시 육군 일색으로 된 합참의 주요 작전 직위자들이 육군 식으로 해역을 통제하려고 했던 데서 초래된 불행이었던 것이다. 앞서 김상만 제독은 제2 연평해전 당시 국방부와 합참에서 전투원칙에 반하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했는데, 이들이 바로 김동신 국방장관, 이남신 합참의장, 이상희 합참 작전본부장이다. 특히 이남신 의장과 이상희 작전본부장이 당시 비극에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다. "연평해전이 '햇볕정책' 때문이면, 천안함은 '달빛정책' 탓?" <오마이뉴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서 찾을 수 있다. 조금 길지만 정독을 할 필요가 있다. 제2연평해전의 가장 큰 잘못은 당연히 북한에게 있다. 하지만 적정거리를 지키지 않고, 근접기동을 했던 것은 분명 실책(失策)이었다. 잘못된 판단이었고, 잘못된 지시였다. 그렇다면 '(저속) 근접 차단기동'을 명령한 사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 명령자는 마땅한 책임을 졌을까?


하지만 럼, 고, 다. 제대로 된 보고서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합참과 해군은 아직까지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처럼 당연히 밝혀내야 할 진실조차 감춰진 채 제2연평해전은 잊혀 왔던 것이다.



제2을 무작정 고, 해 보수 진영은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것이 과연 꽃다운 생명들의 죽음을 '제대로' 기억하는 방법일까? 교전 당시의, '근접 차단기동'의 그 간단한 진실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안보를 '정치화'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일까? 또, 갈등을 증폭시키고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길일까?


<연평해전>이 국민들에게 잊고 있던 제2연평해전의 안타까운 죽음들을 떠올리는 매개였다면, 이제 우리들은 '생각'하고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제2연평해전의 진실에 대해서 말이다. 또, 무엇보다 전쟁의 상흔은 고스란히 '개인'이 짊어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개인'이 언제든지 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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