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노숙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는 올해 1월 시점에 노숙자가 약 77만 명으로 집계됐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1년 전보다 무려 18%나 증가한 수치이다. 프랑스에서는 일정한 거주지 없이 길거리나 쉼터, 공동 숙소 등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숙자 수가 약 33만 명(2022년 기준)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사망한 노숙자는 최소 735명이다.
대한민국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 4월에 발표한 '2021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숙자는 8956명에 달한다. 경제 상황이 매년 나빠지고 있는 중이라 이 숫자가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급속히 늘어나는 노숙자 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악랄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사회 안전망이 붕괴되어 간다는 뜻이다.
"이 빵을 버린 건 제가 아니라 선생님들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딱지남(공유)은 빵과 복권을 잔뜩 구입한 후 한적한 공원을 찾는다. 그는 그곳에 있는 노숙자들에게 빵과 복권을 내밀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빵과 복권이 상징하는 건 명확하다. 전자는 일용할 양식이다. 눈앞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다. 후자는 미래의 가능성이다. 물론 모두 알다시피 당첨될 확률은 매우 낮다.
노숙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복권을 선택한다. 당장 허기를 채우는 게 우선인 것 같지만, 그런다고 한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들은 긁고 난 후 '꽝'이 된 복권을 보며 절망한다. 딱지남은 망연자실한 노숙자들 앞에서 빵을 쏟으면서 이 빵을 버린 건 당신들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빵을 짓밟으며 한껏 조롱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 첫 회에 등장하는 가난한 이들이 더욱 가난해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두 빵을 선택하면 다 같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 이상을 원한다. 복권을 통한 일확천금, 부의 독식을 좇는다. 확률은 0에 가깝지만, 나는 다를 것이라는 헛된 기대가 부나방이 되도록 이끈다.
앞서 노숙자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 빵이 아니라 복권으로 향하는 욕망은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 일확천금을 누리고 주식, 코인 등에 투자하는 우리의 모습이 딱지남에게 조롱당하는 노숙지들과 얼마나 다를까. 마찬가지로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은 저마다 경제적 빚을 지고 삶의 벼랑에 선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게임이 계속 진행되면 누군가 죽어 나간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투표를 통해 게임을 중단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나는 아닐 거야. 한 게임만 더 해서 상금 챙겨서 나가야지.'라는 생각으로 'GO'를 외친다. 기훈(이정재)은 이를 필사적으로 막아보려 애쓰지만,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이 욕망이라는 동력을 멈추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개인의 욕망과 탐욕을 통해 유지되고 더욱 가속화되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다. 각자도생의 기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회 안전망은 더욱 느슨해지고, 구멍은 숭숭 뚫려 있다. 그러다보니 낙오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바닥으로 떨어져 복권을 긁는 희망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 시즌2'의 극단적 게임으로 소환된다.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한편, 어떻게 하면 이 악랄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멈춰 세울 수 있을지 묻고 있다. 물론 그보다 우선해야 할 질문은 멈출 생각이 있느냐, 이 참혹한 구조 속에서 진짜 벗어날 의지가 있느냐일 것이다. 대답은 쉽지 않고, 탈출은 더욱 어렵다.
지난해 12월 26일 공개된 오징어게임 시즌2'는 엄청난 흥행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시청 기록을 집계하는 93개국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톱10 공식 홈페이지 집계에 따르면, 12월 넷째 주(23~29일) 기준 4억 876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시즌1을 앞섰다. 비록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적어도 '오징어 게임 시즌2'가 던진 질문은 이 시대에 유효하고 매우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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