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열린 화장실 봐도 성희롱? 핵심 빼버린 YTN 보도가 부른 논란

너의길을가라 2014. 11. 6. 09:27
반응형


지난 5일에는 기륭전자 여성 노조원 박 모 씨가 남성 경찰관에게 성희롱을 당한 사건에 대한 항소심(민사)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기사'를 제공했던 언론사는 YTN이었다. 하지만 제목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내용은 소략하기 짝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24시간 실시간 뉴스 전문의 케이블방송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팩트가 과감히(?) 생략 혹은 왜곡된 기사에 의해 다수의 네티즌들은 괜한 에너지 낭비를 해야만 했다. 그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앵커) 화장실 안에 있다가, 열린 문틈 사이로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걸 발견하면 굉장히 불쾌하겠죠. 이렇게 문이 열린 화장실 안을 쳐다만 봤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성희롱으로 볼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기자) 무더기 해고에 맞서 투쟁에 나섰던 기륭전자 여성 노조원 박 모 씨.지난 2010년 임원과 승강이를 벌이다 경찰서로 연행됐습니다. 조사를 받다 형사과 안에 있던 화장실을 이용하게 됐는데, 화장실 출입문을 바라보다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경찰관 김 모 씨가 문틈 사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겁니다. 놀란 박 씨는 손발이 마비되는 증상을 보였고 병원 응급실까지 실려갔습니다. 용변을 보던 자신을 경찰관이 몰래 훔쳐봤다던 박 씨의 주장은 그대로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경찰관 김 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박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열린 화장실 쳐다만 봤어도 성희롱" YTN



YTN 보도의 포인트는 '열린 문틈', '문이 열린 화장실'에 맞춰져 있다. 앵커가 이런 밑밥을 깔고 난 후, 기자는 '경찰관 김 모 씨가 문틈 사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겁니다'라고 리포팅을 한다. 자연스럽게 위의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은 '이미 문이 열려 있는 화장실의 틈으로 (우연찮게 혹은 약간의 과실로) 안쪽을 봤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위의 기사를 읽고 난 후 네티즌들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소 과하긴 하지만, '화장실 열고 볼일보는건 죄없나?', '열고싸는 인간은 정상이냐?'는 반응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YTN 기사가 그런 방향으로 네티즌들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YTN의 보도는 팩트에 기반한 것일까? 기륭전자의 여성 노조원과 경찰관을 둘러싼 성희롱의 진실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다른 기사를 검색해보면 전혀 다른 맥락이 펼쳐진다. 


박씨는 2010년 4월 회사 임원과 승강이를 벌여 경찰 조사를 받던 중 김씨가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안에 설치된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었는데 김씨가 강제로 문을 열어 견딜 수 없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고, 이 때문에 손발이 마비돼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희롱인가 아닌가.. 기륭 노조원 성희롱 사건 항소심 판결 국민일보


박씨는 자신이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내부에 있는 화장실에 용변을 보러 들어간지 4분쯤 되었을 때, 김씨가 화장실 문을 열고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등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다.


법원, "기륭전자 여성 노조원 화장실 문 연 경찰 손해배상 해야" <경향신문>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사건의 핵심은 '경찰관이 강제로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YTN의 보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재차 확인을 위해 <경향신문>의 기사도 읽어봤다. <경향신문>은 아예 제목에서부터 '화장실 문 연'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지켜야 할 경찰관이 함부로 화장실 안쪽을 엿봤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문을 열었다'는 맥락이 사라진 채 전달된 뉴스는 자칫 오해를 부르기에 충분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3부(박관근 부장판사)는 "박씨가 화장실 안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김씨가 들여다본 사실이 인정된다. 지극히 내밀한 공간인 화장실 문을 정당한 사유 없이 연 행위 자체만으로도 당혹감을 넘어 상당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라고 판단하면서 국가와 경찰관 김 씨에게 "박 씨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여기에 덧붙여서 재판부는 "김씨가 문을 연 것이 아니라 이미 열려 있는 상태에서 빨리 나오라는 취지로 손짓만 했다고 하더라도 남성 경찰관이 여성 피의자가 있는 화장실 안을 들여다본 행위만으로도 박씨가 실제로 용변을 보고 있었는지와 상관없이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당연한 판결이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때로는 인권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들의 시각도 상당히 편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판결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바로 '(피의자의) 인권'이다. 이는 곧 우리들의 인권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법이 공권력이 아니라 약한 시민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은 지금같은 시대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어 '사소하다', '과하다'는 말은 성립될 수가 없다. 특히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관이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지켜야 하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경찰과 피의자'라는 관계뿐만 아니라 사실관계마저 몽땅 생략된 채 '열린 문 틈'만 강조해서 보도하는 YTN의 뉴스는 또 한 번 뉴스의 생명이 정확성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더불어 인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경도되어 있는지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