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선릉역 알몸녀는 사이버 검열의 첫 단추일까?

너의길을가라 2014. 10. 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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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역 알몸녀. 지난 25일 오후 SNS를 비롯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야릇한 이슈였다. 당시 나체 상체의 젊은 여성이 인도를 걷고 있는 모습을 자동차 안에서 촬영한 동영상이 유포됐고, '선릉역 알몸녀'라는 설명과 함께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서울 강남경찰서 등에서 수사를 개시했고, 그에 따르면 최초 유포자는 25 일 오후 3시 무렵 선릉역 공영주차장에서 결별을 요구하는 남자친구와 다툼을 벌이던 여성이 화가 나서 옷을 벗은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화가 나서 옷을 벗었다는 이야기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어찌됐든 최초 유포자의 주장은 황당한 주장은 계속됐다. 나무꾼이 빙의된 남자친구는 여성이 벗어놓은 옷을 가지고 가버렸고, 이 바람에 여성은 나체 상태로 거리를 활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기본 스토리'였다면 여러 사람의 리트윗 등을 거치면서 '양념'이 붙기 시작했다. 선릉역 알몸녀가 음란사이트의 회원이라거나 이 사건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제보(?) 등이 잇따랐다. 물론 경찰 관계자에 의해 '사실 무근'인 것으로 확인이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관심을 끌려고 누군가가 기존에 돌아다니는 영상에 이야기를 덧입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경찰 측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선릉역 알몸녀'는 날조..SNS 타락 도 넘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는 '선릉역 알몸녀'와 관련한 기사를 쓰면서 '날조(捏造)'라는 다소 과격한 포현과 함께 'SNS 타락'이라며 정면으로 SNS를 저격하고 나섰다. 이는 보수적인 색체를 띤 언론에서 SNS가 각종 범죄들(주로 성범죄)의 창구(窓口)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SNS를 매우 위험한 도구로 몰아가는 것과 비슷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본래 '루머'라는 것은 확대 재생산(擴大再生産)되기 마련이다. 전달되는 이야기에는 살이 붙게 마련이다. 거기에는 악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지만,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과장하거나 거짓을 보태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루머의 확산은 SNS가 개발되기 전부터 있어 왔던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과거에는 '우물가'가 SNS를 대신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탓'을 하고자 한다면, 애꿎은 SNS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꾸짖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우물가'에서 이뤄지던 루머의 확대 재생산이 SNS라는 혁신적인 도구를 통해 훨씬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SNS는 타락의 '주체'가 아니라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SNS 에는 분명히 자정 기능이 있다. 잘못된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확한 정보를 통해 왜곡된 사실들이 바로잡혀나가기도 한다. 그러한 자정을 돕는 것은 '언론'일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기사를 써야 할 언론들이 그저 '받아쓰기'에 급급하다보니 정확한 정보가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잡을 기회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선릉역 알몸녀'에 대한 당시 언론들의 기사를 보라. 많은 언론들이 '클릭 수'를 올릴 수 있는 자극적인 기사를 마구 찍어냈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 확인은 전혀 없었다.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온다" 고 발언하자, 검찰은 발빠르게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전담수사팀'을 구성했다. SNS를 비롯한 각종 게시판은 검찰의 무리한 움직임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찼고, 사적인 대화가 오고가는 카카오톡 등을 검찰이 감시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자, 그제서야 검찰은 해명과 함께 부랴부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했다.



▶ 공적 인물이나 연예인 등 공인과 연관된 허위사실을 조작·유포하는 경우

특정인에 대한 악의적인 신상털기

특정 기업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로 기업의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경우

왕따카페를 만들어 청소년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경우


검찰은 25일 '사이버 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면서 "다음 아고라나 네이버 게시판 같은 포털사이트 공개게시판이나 누구든지 회원 가입을 통해 글을 게시하고 열람할 수 있는 사이트에서 이뤄지는 비방 목적의 허위사실 적시를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또, "메신저나 SNS상 대화는 통상의 수사 절차대로 고소ㆍ고발이 이뤄질 때에나 수사가 가능하다"면서 언제든 메신저야 SNS도 수사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정치적인 글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기에는 (물론 지금도 충분히 하고 있지만) 논란의 소지가 많고 여론의 반응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가십성 사건들부터 가볍게 접근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선릉역 알몸녀'는 여론의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시의적절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 등을 비롯한 보수적인 언론들은 'SNS 타락'을 강조하면서 여론 몰이를 시도해왔고, 검찰은 타락한 SNS에 칼을 들이대는 아주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SNS는 타락의 주체가 아니라 한낱 도구에 불과하다. 또, '악성 루머'를 확대 재생산하는 근본적인 책임은 오히려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는 언론들이 져야 한다. 언론이 제 역할만 바로 한다면, 수많은 왜곡된 정보들이 걸려질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고,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위축시킴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권력 앞에 모두 무릎 꿇고, 지엄하신 윗분의 말씀에 복종하는 충실한 백성으로 거듭나라는 뜻은 아닐까? 물론 허위 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나쁜 짓'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이 문제를 국가가 개입해서 형사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민사상의 배상 등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와 대한민국의 검찰은 '표현의 자유'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고, '선릉역 알몸녀' 등 가십성 기사들은 이를 위해 좋은 재료가 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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