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국민참여재판 시행 7년, 누가 배심원을 우려했는가?

너의길을가라 2014. 9. 30.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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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2월 12일 대한민국 사법사(史)에 한 획을 긋는 재판이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렸다. 바로 직업 법관이 아닌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서 직접 재판에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것이다. 그렇게 첫발을 뗀 국민참여재판도 어느덧 시행 7년 차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처럼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으면 될 텐데, 굳이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이 왜 필요한 것일까? 참여정부가 국민참여재판을 도입된 취지는 국가권력의 한 부분인 사법권의 영역에서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고, 국민의 상식과 경험을 재판절차에 반영하여 사법신뢰를 증진시키며, 국민이 재판절차와 법제도를 보다 가까이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실질적 법치주의를 실현하고자 함에 있었다.


물론 일정한 제약을 두어 한계를 명확히 했다. 배심원의 평결에 기속력을 배제함으로써 법관이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배심원의 평결은 그저 '의견'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 법관에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미국식 배심원 제도를 절충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의 참여가 불편했던 것일까? 아니면 국민의 상식과 경험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 시행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법을 잘 모르는 배심원들이 냉정한 판단을 하기보다는  감정에 치우치는 평결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말이 좋아 '우려'이지 사실은 '무지몽매한 시민'들에게 법적 판단을 맞기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소수의 엘리트들의 반발이었다.


과연 그들의 우려처럼 법적인 지식이 부족한 시민들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을까? 국 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평결과 재판부의 판결이 일치하는 확률은 2008년 87.5%에서 2012년에는 95.6%까지 증가했고, 2013년 (9월까지)에도 93.4%의 높은 일치율을 기록했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2008년 국민참여재판이 처음 시행된 이후 국민참여재판 총 건수는 1,368건이고, 배심원 평결과 판결이 일치한 케이스는 1,274건에 달한다고 한다. 불일치한 경우는 고작 94건에 불과했다. 일치율은 93%였다.


전문적인 법적 지식을 갖추지 않은 배심원단이 내린 평결과 평생동안 법 공부에 매진한 법관들의 판단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대부분 일치했다. 이처럼 높은 일치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법'이라는 것이 '상식'의 범위 안에 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한 판사는 "민사 사건에서는 전문적인 법적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형사 사건의 경우 주어진 자료를 토대로 피고인이 범인인가 아닌가를 가리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상식 선에서 일반인들도 법관에 준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치율이 93%까지 나오게 되자 더 이상 시민들을 무시하는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럼에도 국민참여재판을 흔들고자 하는 목소리는 방향만 살짝 틀었을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던 안도현 시인과 주진우 기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이 지난해(2013년) 가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단으로부터 잇따라 무죄평결을 받자 국민참여재판이 정치적 논쟁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권선동 의원은 "참여재판은 사실 확정이 필요한 사건에 국한해야 한다. 선거사건이나 명예훼손처럼 예민하게 갈리는 사건을 맡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했고, 바통을 이어받은 법무부는 대법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국민참여재판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법무부가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을 손봐야 한다'면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자, 민변은 "법무부 개정안은 국민참여재판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또, 안도현 시인에 대한 판결에 대해서 "법무부는 아마도 이 사건들이 국민참여재판이 아니었다면 유죄가 선고되었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이나, 실제에선 배심원의 평결이 더 합리적이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방향은 살짝 바뀌었지만 본질은 같다. 감성재판, 여론재판이라는 저들의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정치권을 비롯한 소위 엘리트 계층에게 '시민'이란 존재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려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는 무지몽매한 자들에 불과한 듯 하다. 이 얼마나 오만한 발상이란 말인가?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 국민들은 내가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가 하고 또 내가 지금 국민참여재판이라는 데서 배심원이라는 그러한 중요한 공적 기능을 수행할 때하고 그것을 구분할 줄 안다"면서 "감성재판이다, 여론재판이다, 이런 주장들은 국민들이 그러한 공사의 구분의식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적 사건의 경우 오히려 법원의 판결이 배심원들의 평결보다 들쭉날쭉한 경우가 더 많다"면서 법원이 정치에 휩쓸리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지난 11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 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 판결'이라는 조롱을 바지 않았던가? 과연 어느 쪽이 더 문제인 것일까?



지난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대강당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배심원의 날' 행사가 열렸다. 서 울중앙지법이 참여재판에 참여했던 배심원 2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78%(226명)가 지인에게도 참여재판을 권하겠다고 응답했다. 직접 국민참여재판을 경험한 시민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배심원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알리고 권하고 싶어한 것이다. 


물론 배심원으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선, 장시간 이어지는 재판 진행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57%에 달했고, 어려운 법률용어나 재판기록이 어렵다는 대답도 30% 였다. 결국 법무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참여재판의 대상 범위를 축소하는 등 국민참여재판을 흔들기보다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편익을 도모하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국민참여재판에 있어 재판 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법조계의 전유물이었던 어려운 법률용어 등을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꿔나가는 노력이야말로 법무부가 해야 할 몫이다. "이 행사를 통해 국민들께서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더 많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고, 형사재판이 한층 더 높은 신뢰를 얻기를 바란다"는 이성호 법원장의 말처럼 앞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더욱 활성화시켜 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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