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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

불평등 시한폭탄.. 당신, 경고를 받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아요! 본문

사회를 듣는 귀

불평등 시한폭탄.. 당신, 경고를 받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아요!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13. 5. 1. 07:19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만약 어떤 중대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 그 다음 바로 어떤 재난이 덮쳐온다면, 그때 당신도 나, 우리 모두가 그 재난 이전에 아무런 경고를 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그 무엇을 요구하든 그 어떤 지식도 제공하는 스마트한 기계장치'를 갖고 있고, 이미 여러가지의 다양한 '시한폭탄'을 눈으로 목도했고, 때로는 그것을 깔고 앉아 있고, 혹은 끌어안은 채 살고 있으니까요. 지그문트 바우만은 특히 '불평등 시한폭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미 '불평등 시한폭탄'에 대한 수많은 경고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제발 또 다시 당신이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했다고 말하지는 말라'고 강변합니다. 





- <경향신문>에서 발췌 -



오늘은 노동절(근로자의 날)입니다. 노동자들을 위한 날이죠. 노동자들이 적어도(!) 오늘만큼은 행복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금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경향신문>의 기사는 더욱 가슴 아프게 읽힙니다. (철탑서 맞이하는 노동절… 출구 못 찾는 노·사·정 대화도 끊겨


'대체휴일제'는 대기업의 반발에 막혀 결국 표류하고, '60세 정년' 법안은 어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두 정책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대한민국은 과도한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고, 그에 비해 생산성은 극도로 낮습니다. 노동시간과 생산성이 비례하지 않는 사실은 이미 확인이 되었죠. 역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숨 쉴 시간'을 주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대체휴일제'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이죠. '60세 정년'은 어떻습니까? 일본은 이미 정년을 65세까지 늘렸습니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정책입니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죠. 세대 갈 일자리 경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볼 일도 아닙니다.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일자리는 서로 겹치지 않고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라는 사실도 밝혀졌었죠. ("정년 연장하면 세대 간 일자리 경쟁? 타당성 없다")


문제는 이 정책들이 갖고 있는 '불평등'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대체휴일제'와 '60세 정년'이 보호하지 못하는, 오히려 괴롭히는 '사각지대'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유정복 안행부 장관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취하며, '대체휴일제'를 반대했는데요. "대체휴일제를 통해 공휴일이 늘어나게 되면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자영업자, 임시직·일용직 근로자 등 취약계층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취약계층을 위해서 펼친 논리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내용상으로는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대체휴일제'의 사각지대는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도 더욱 취약한 계층이 피해를 보는 방식으로요. 


'60세 정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정년을 늘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제한적인 것은 문제입니다. (정년 60세 연장, 민간기업 직원에겐 유명무실) 민간 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사실상 '60세 정년'이 적용될 여지가 없는데요. 근속연수를 공개한 9개 공기업의 평균근속연수는 평균 15년이었지만, 10대그룹의 평균근속연수는 9.4년에 불과합니다. 대기업이 이런데, 중소기업이나 그밖의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휴일제'와 '정년60세'와 같은 정책들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정책입니다. 큰 틀에서 법적인 장치를 마련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사각지대'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오히려 법에 의해, '노동권'을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법에 의해' 소외당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불평등의 악순환이 나를 비껴가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신문과 인터넷의 뉴스를 통해 수많은 '경고' 메시지를 받지 않았습니까? 노동절을 맞이한 오늘, 이러한 '경고'들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는 건 어떨까요? 





지그문드 바우만 역시 리처드 로티의 글을 인용하면서, '바로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그러한 경고들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하는 일을 멈춰야 할 때'라고 거듭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아이들이 정말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야말로 참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게 키워야만 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우리가 더럽힌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사람들보다 무려 열 배나 많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정작 우리가 두드려대는 그 키보드를 만드는 제3세계 사람들보다 무려 백 배나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 우리의 아이들은 반드시 일찍부터 자신들이 누리는 그 행운과 다른 아이들이 누리는 행운 사이에는 많은 불평등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배우게 해야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바로 그러한 불평등들이 신의 의지도 아니고 경제적인 효율성을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가 아니라 오히려 분명 피할 수 있는 비극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가능한 빨리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게끔 해야만 합니다. 그 어떤 누구라도 한편에서 다른 사람들이 과식하는 동안 굶주리게 되는 일은 결코 없게 하기 위해서는 과연 이 세계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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