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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식 구조에서 막기 힘들다! '알쓸범잡'이 다룬 층간소음 문제

너의길을가라 2021. 5. 1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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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위층(6층)으로 올라가 둔기로 현관문 손잡이를 수 차례 내려쳤다. 또, 현관문 문틈에 둔기를 끼워 넣고 강제 개방하려고 시도했다. 내부에 있던 윗집 사람에게 죽여 버린다며 협박도 했다. 평소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벌이다가 당일 술을 마시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부평경찰서는 특수재물손괴 및 특수협박 협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15년 5월 8일, 상도동 층간소음 사건도 되짚어보자. B씨는 새벽 3시에 천장에서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자 화가 났다. 그날따라 술을 먹은 상태라 흥분도가 좀더 높았는지도 모르겠다. B씨는 윗집 사람을 깨웠고, 한참 실랑이가 벌어졌다. 급기야 흉기까지 휘두르게 됐다. 그런데 실제 위층에는 아이가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이가 있는 집은 사실 그 옆집이었다.

2016년 7월 2일, 경기도 하남시 사건은 층간소음으로 인해 당사자들의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C씨는 층간소음이 계속되자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윗집 입구 쪽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이다. 그리고 한밤중에 몰래 윗집에 들어가 노부부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결국 한 사람은 사망하고, 한 사람은 상해를 입었다. C씨는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소음 자체는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한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냥 시끄러운 거잖아요."

tvN <알쓸범잡>의 김상욱 교수는 인천의 한 음악카페를 방문한 후 '소리'와 관련한 범죄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층간소음'이다. 사실 소음 자체는 그냥 시끄러운 것뿐이고, 따라서 대단한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층간소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충간소음이 야기하는 범죄들의 유형을 보면 범죄가 의외의 방식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층간소음 사건은 단지 소리 때문에 일어난다기보다 감정의 문제 때문에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소한 갈등이 차곡차곡 쌓여 감정의 골이 한없이 깊어지고, 어느새 당사자들은 극한의 상태까지 내몰린다. 서로간에 복수와 보복이 난무한다. 작은 실랑이가 거대한 비극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충간소음을 점점 더 무겁게 다룰 수밖에 없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2020년 층간소음 관련 민원은 전해에 비해 61%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우리는 사무실에서는 층간소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유독 아파트(오피스텔, 빌라 등)에서 층간소음을 심하게 느낀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 왜 아파트에서만 층간소음이 심한 걸까. 그건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아파트는 벽식 구조로 지어진다. 벽을 두껍게 만들어 벽 자체가 건물의 무게를 떠받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벽 위에 판(슬라브)를 깔고, 다시 그 위에 벽을 올린다. 그러다보니 벽 자체가 위 아래로 연결된 한 몸이라 바닥을 치면 벽을 따라 소리가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벽식구조에서는 층간소음을 막기 어렵다. 상도동 충간소음 사건처럼 대각선 위층의 소리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반면, 빌딩은 기둥식 구조로 지어진다. 벽이 아닌 기둥을 세우고 보로 기둥들을 연결하는 식이다. 그리고 기둥끼리 연결한 곳만 벽으로 채운다. 기둥식 구조에서는 아래층과 위층이 직접 연결된 부분이 기둥뿐이기 때문에 당연히 전달되는 소리가 훨씬 적다. 벽식 구조에 비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어라? 다시 의문이 생긴다. 그럼 아파트도 기둥식으로 지으면 되는 것 아닐까.

대답은 간단하다. 왜 아파트를 벽식 구조로 짓는가. 싸기 때문이다. 벽식 구조는 1990년대 신도시가 개발되던 시기에 유행했다. 아파트를 갑자기 많이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저렴하게 만들어 낸 것이다. 게다가 기둥식 구조는 층간 높이가 3.3m인데, 벽식 구조는 벽식 구조는 2.9m에 불과하다. 그 차이로 층 하나를 더 만들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었던 셈이다.


층간소음 문제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에서 난제이다. 일단,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길이 현재로서는 없다. 건설사들은 층고를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대신 특정 부분의 슬레브 두께를 높이는 공법을 적용하고나 성능이 좋은 층간차음제를 개발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려 하고 있다.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살아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웃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확연히 갈리는 문제라 복불복의 성격도 띤다. 게다가 시끄럽다는 건 주관적인 개념이다. 정재민 법무심의관은 시끄러운 파티 속에서도 관심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들린다는 개념의 '칵테일 파티 효과'를 언급했다. 충간소음도 거슬리는 소리가 생기면 그때부터 귀가 얼리기 시작하면서 다른 소리가 더 커도 그 소음만 들리게 되는 것이다.


"위층 여자는 여전히 쿵쿵 슥슥 걸어 다녔다. 나는 이토록 명확하게 들려오는 것들을 못 들은 척하며 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1111호)

'미안해할 수 있을 만큼 미안해했고, 더 조심할 수 없을 정도로 조심했어요.'

아랫집은 내가 한 발을 디디면 바닥을 두 번 쳤다. (1211호)

김상욱 교수는 층간소음 문제를 다른 정소현 작가의 소설 <가해자들>을 소개했다. 소설은 각 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사연을 들어보면 각자의 사정이 충분히 이해되지만, 각박한 현대 사회의 개별화된 공간인 아파트에서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길 기대하긴 어렵다. 현실은 감정 싸움 끝에 아파트 천장에 '보복 스피커'를 설치하기 일쑤다.(소란죄로 처벌)

충간소음 문제의 흥미로운 지점은 소설에도 나오듯이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아무도 없'다. 김상욱 교수는 어쩌면 층간소음이란 건 핑계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과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게 진짜 문제일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오히려 소음 자체는 문제의 본질이 아닐지도 모른다.


김상욱 교수는 인간관계에서는 내용보다 때로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대를 존중하고 격식을 차리는 것을 그저 허례허식으로 치부할 건 아니란 뜻이다. 서로 예의를 갖추고 조금씩 배려한다면 분쟁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지나치게 감상적인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런 순수한 접근이 사람들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분명 층간소음은 괴롭다.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다. 자칫 잘못하면 위층과 아래층 중 하나가 떠나야 하는 극단적 상황까지 오게 된다. 실랑이가 벌어져 범죄의 당사자가 될지도 모른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한편, 우리도 언제든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조금씩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조심하는 것만이 이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일 것이다.

박지선 교수의 이웃이 아이가 울어서 시끄러울 수 있어 죄송하다는 쪽지와 작은 선물을 문고리에 걸어둔 것처럼 말이다. '관계'를 맺으면 '이해'의 여지가 생기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면 상대방의 '배려'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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