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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이라도 달려들어야.." '알쓸범잡'이 내린 분노조절장애의 기준

너의길을가라 2021. 5. 3. 19:41

지난해 12월 8일, 서울 광진구에서 시내버스에 탑승한 60대 남성 A씨는 마스크를 착용해 달라는 버스기사의 요구에 "네가 뭔데 착용하라 마라야?"라며 욕설을 쏟아부었다. 흥분한 A씨는 버스 뒷문을 발로 차며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어 양손으로 버스기사의 목을 조르더니 얼굴을 두 차례 때렸다. A씨는 특가법(운전자 폭행) 및 폭행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난 5월 26일, 공항철도 서울역 1층에서 서 있던 한 여성을 마주친 30대 남성 B씨는 아무 이유 없이 몸을 부딪치더니 다짜고짜 욕설을 하고 시비를 걸었다. 이에 여성이 항의하자 B씨는 주먹으로 여성의 얼굴을 가격했다. B씨의 폭행으로 여성은 눈가가 찢어지고 광대뼈가 함몰됐다. 이유를 묻자 B씨는 "순간적으로 욱해서 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욱해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폭행을 저지르는 사례는 끝도 없다. 이른바 '분노 범죄'이다. 최근에는 특히 마스크 착용과 관련한 실랑이로 폭행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한편, 지난 2월 28일 포항에서 서울로 향하는 KTX 열차 안에서 벌어진 사건도 '분노'와 관련 있다. 열차 안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햄버거 등 음식을 먹던 20대 여성 C씨는 승무원의 제지를 받고 취식을 멈추는가 싶었다.

하지만 승무원이 다른 객실로 이동하자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에 함께 타고 있던 승객이 항의하자 "내가 여기서 먹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없이 생기고 천하게 생긴 X이 너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라며 막말을 쏟아부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사회적 공분이 일어났고, 결국 C씨는 사과했다. 그와 별개로 C씨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이로 고발됐고, 모욕죄 혐의로 송치됐다.


대구를 여행하기 전에 동대구역에서 만난 tvN <알쓸범잡>의 출연자들은 '분노'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윤종신과 장항준 감독은 위에서 언급한 KTX 사건을 떠올렸다. 박지선은 한국 사회가 분노 사회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면서 충동적 분노 범죄도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2013년 대구에서 벌어졌던 한 사건을 언급했다.

대학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귀가한 22살 여학생이 실종된 사건이었다. 이틀 뒤, 그 여학생은 저주지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충격적이었던 건 피해자가 입은 외상의 정도였다. 피해자는 앞니를 포함해 치아가 모두 부러져 있었다. 사인은 장기 파열이었다. 범인과 피해자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도대체 왜 그와 같은 금찍한 범죄를 저지른 걸까.

범인은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다른 택시를 타고 쫓아갔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옥탑방으로 피해자를 데려가서 살해한 후 저수지에 유기한 것이다. 범인은 대구 지하철역에서 공익 근무를 하던 24살 남성이었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던 범인을 대상으로 정신 감정을 실시한 결과, 범인은 충동 조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분노조절장애라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것은 잘 보면 장애가 아니에요. 장애는 조절이 안돼야 장애인 거잖아요. 운전을 하다가 앞차랑 시비가 붙어서 내렸는데... 마동석이 내렸다. 그럼 분노가 쏙 들어가죠? 바로 그건 장애가 아니죠. 그러니까 마동석을 보고도 달려들어야 장애인 거죠. 조절이 안 되는. 근데 내린 사람이 나보다 약해 보이거나 (그래서 더 덤비면) 그건 장애가 아닌 거죠. 폭력이죠."

그런데 소위 '욱해서' 저질렀다는 범죄들은 모두 '분노조절장애'로 봐야 할까. 박지선 교수는 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을 사용하고 쉽게 그 개념을 받아들이지만, 사소한 시비가 붙었을 때 상대방이 '마동석' 같이 덩치 큰 근육질 남성이라면 어떨까. 똑같이 달려들 수 있을까. 아마 대다수가 욱을 가라앉히고 깨갱하지 않을까.

박 교수는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사람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건 장애가 아니라 폭력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장 감독도 '비겁한 폭력'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앞서 나열했던 사건들도 엄밀히 말하면 분노조절장애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과연 마스크를 쓰라고 한 버스기사가, 서울역에 서 있던 여성이, 햄버거를 먹지 말라고 한 승객이 마동석이었다고 해도 그럴 수 있었을까.


한편, 박지선 교수는 살인 범죄자 통계를 인용하면서 대한민국의 경우 살인범 연령대 분포가 다른 나라들과 많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가장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연령대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이다. 외국 영화를 봐도 그 나이대 청년들이 일탈을 많이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40대~50대가 살인 범죄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배경과 관련있다.

10대의 경우 입시 체제 하에서 24시간 관리되고, 철저히 감독받기 때문에 일탈의 여지가 매우 적다. 하지만 계속되는 부정적 상호작용으로 인해 분노의 축적이 일어나고, 이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서 결국 범죄로 나타나게 된다. 정서를 조절하지 못하고, '파국화(안 좋은 일을 확대 해석해 최악이 결과를 걱정하는 것)로 진행돼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알쓸범잡>은 우리 사회가 분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화두를 던졌다. 분노가 축적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동시에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고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전했다. 술을 마신 범죄자를 '심신미약'으로 감경하는 게 당연했던 것처럼, 범죄를 저지른 자의 행동이 의도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닌양 면죄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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