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여행기

[버락킴의 구라시키 여행기] 4. 오하라 미술관, 소도시에서 찾은 의외의 발견!

너의길을가라 2019. 6. 3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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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이런 퀄리티의 미술관이 있다고?"


위의 감탄사에 등장하는 '이런 곳'은 (이번 여행기의 주인공인) 구라시키[倉敷, Kurashiki]를 지칭하는데, 결코 비하의 뉘앙스가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니, 예상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구라시키는 면적 355.63㎢, 인구 47만 6,073명(2018 기준)의 (중)소도시가 아닌가. 게다가 미관지구는 인구가 밀집된 시내로부터 떨어진 곳이었다. 이런 사이즈의 동네에 미술관이 있다는 만으로도 반가운 일인데, '이런 퀄리티'라니..!


'이런 퀄리티' 역시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의미이다. 클로드 모네, 앙리 마티스, 폴 고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등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하는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유럽의 한복판이 아니라 일본, 게다가 소도시의 미술관에 거장들의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니 의외의 감동이 몰려왔다. ​​



지금부터 이런 곳에 있는 이런 퀄리티의 미술관, '오하라[大原] 미술관'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구라시키는 1969년 시의 조례(條例)를 통해 '도시미관'라는 내용이 담긴 도시계획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오하라 미술관은 언제 문을 열었던 걸까? 놀랍게도 1930년이다. 뉴욕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이 1929년에 설립됐다는 걸 생각해 보면, 오하라 미술관의 역사가 새삼 놀랍기만 하다. 당시 사람들에게도 일본 최초의 서양 전문 미술관 개관은 굉장히 센세이서널한 일이었을 것이다. 


위치상 미관지구 안에 오하라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 역사와 위상을 생각하면 오하라 미술관을 중심으로 미관지구가 형성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구라시키의 '도시미관'이 처음부터 지금의 '미관지구'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도 아니었다. 구라시키는 티볼리 공원이라는 테마파크를 조성했다가 실패를 맛보고, 그 후 구도심의 역사지구를 가공 발전시켰다. 실패와 개선을 통해 지금의 '구라시키 미관지구'가 완성됐다. 

오하라 마고사부로


오하라 미술관은 구라시키의 실업가(實業家)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화가 고지마 토라지로의 사후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였을까? 우선, 마고사부로는 구라시키의 손꼽히는 지주이자 구라시키 방적을 세운 오하라 고시로의 아들이다. 유복하게 자란 그는 도쿄에서 유학하며 방탕한 시절을 보냈지만, 고향으로 돌아와 이시이 쥬지라는 자선사업가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한편, 전도유망한 미술학도 고지마 토라지로는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게 됐다. 고지마는 오하라 가문이 운영하는 장학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 마고사부로를 만나게 됐고, 그리하여 후원자와 화가로서 두 사람의 끈끈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고지마는 도쿄미술학교에서도 두 번의 월반을 하며 2년 만에 조기 졸업했고, 미술전에 1위로 입상하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런 고지마의 재능을 높이 산 마고사부로는 유럽 유학을 권유했다. 


고지마는 1908년부터 유럽으로 건너가 그림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동시대를 살아갔던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접했다. 예술에 대한 눈이 한층 높아진 고지마는 마고사부로에게 회화 작품을 수집할 것을 제안했고, 마고사부로는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그 첫 번째 수집품이 바로 아만 장(Edmond François Aman-Jean)의 <머리카락(hair)>이었다. 오하라 컬렉션의 시초였던 셈이다. 


아만 장, <머리카락(hair)>


엘 그레코, <수태고지>


모네, <수련>


고지마는 '일본의 화가들이 이 그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수집에 나섰고, 마고사부로도 고심 끝에 고지마를 계속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고지마는 1919년 모네와 마티스를 찾아가 <수련>과 <마티스 양의 초상화>를 구입했는데, 유럽에 머무른 2년 동안 20여 점을 수집했다. 고지마가 가져온 그림들을 전시하자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 들었고, 이를 본 마고사부로는 '미술은 모두가 향유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 차례 더 유럽을 찾았던 고지마는 독창적인 종교화를 그렸던 스페인의 거장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 고갱의 <향기로운 대지> 등을 수집해 오하라 컬렉션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 나갔다. 그러나 고지마는 1929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했다. 마고사부로는 고지마의 삶과 죽음을 기리기 위해 고지마가 남긴 작품들과 수집품들을 전시할 미술관을 건립했다. 당시 불어닥친 경제 불황도 고지마에 대한 애도를 막진 못했다. 


지방의 소도시에 있는 미술관답지 않게 놀라운 컬렉션을 지닌 오하라 미술관은 이처럼 오하라 마고사부로와 고지마 토라지로, 두 사람의 우정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오하라 미술관과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둘은 서로를 더욱 빛내는 동반자 같은 존재로 자리잡았다. 위치적으로도 오하라 미술관은 구라시키 미관지구의 초입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데, 인공 운하 옆이라 금방 눈에 띤다. 



오하라 미술관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떠오르게 하는 우아한 외양의 본관을 비롯해 분관, 공예 동양관, 별관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에서 고지마가 수집한 작품들과 그 이후 마고사부로의 아들 소이치로(제2대 미술관장)가 수집한 현대 미술 컬렉션은 본관에 전시돼 있다.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의 작품에 여기에 해당된다. 이쯤되면 오하라 미술관의 컬렉션이 얼마나 탄탄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대부분 (핵심적인 작품들이 있는) 본관을 둘러보는 선에서 오하라 미술관 관람을 마치는 편이다. 한 가지 부연하자면, 오하라 미술관(본관)의 전시 작품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그림은 김환기 화백의 것이었다. 시간적(혹은 체력적) 여유가 있다면 미술관 내부의 일본식 정원도 함께 둘러보면 좋겠지만, 본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제법 힘이 빠질 테니 굳이 더 돌아다닐 것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묘미 중 하나를 꼽으라면 예상치 못했던 경험, 그 의외의 발견이 아닐까? 조용하고 한적한 (일본) 시골 동네의 풍경만 그리고 들렀던 구라시키에서 발견한 일본 최초의 서양 전문 미술관인 오하라 미술관을 만난 건 잊지 못할 즐거움이었다. 구라시키를 두고 문화 중심지라고 부르는 건 괜한 말이 결코 아니었다. 참고로 오하라 미술관의 개관 시간은 09:00에서 17:00(단, 입장은 16:30)까지이고, 입장료는 개인 1300엔, 대학생 800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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