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배수아,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너의길을가라 2013. 3. 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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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된 시각의 기록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당나귀들>, <서울의 낮은 언덕들>의 저자 배수아의 아름다운 몸 이야기『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이 책은 몸을 주제로 한 스물여덟 편의 산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감각적인 언어로 쓰여진 몸 이야기는 냉소적이면서 다정하고, 감정적이면서 이성적이며, 환상성을 드러내면서도 현실적으로 인간의 육신과 그 안에 담겨진 욕망에 대한 자유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욕망의 기호이자 성의 대상으로서의 그 무엇, 혹은 행위를 나타내는 우리의 몸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욕망과 삶의 다양성을 독특한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몸을 통해 삶의 유한성과 육체가 가진 원래의 가치들을 떠올려주며, 저자가 몸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만나볼 기회를 전해준다.





1.


상상력이 없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참 많이 피곤하다. 상상력이 없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2. 


연애에서 자유로울 만큼 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3.


사람들은 참 많이 다르다. 하고 싶은 것과 하는 것이. 사회의 변화는 눈부시도록 빠르고 사람들의 삶의 형태도 발전하고 개인주의는 극으로 달리고 정보 통신은 지상의 낙원을 가져다줄 듯하고 이십대의 학위 소지자들이 넘치고 소프트하고 아이디어풀하고 스피디한 벤처라는 단어가 가치관을 지배하는 듯한 이런 때에, 의외로 그 표면의 아래에는 느리게 변하고 시간이 천천히 가고 고집이 있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갈등하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4.


왜 언제나 반드시 완전무결해야 하는가. 또는 완전무결을 지향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부분에서는 자유롭게 비위생적이 되거나 비상식적이 되어도 된다. 그것은 완벽한 기호의 문제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털어놓고 용서를 바랄 필요도 없다. 혹 그것 때문에 죄의식과 수치심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의 몫이다. 그러나 그대, 고통 하나 없는 완전한 인생을 진정 원하는가? 상처 없는 관계를 원하는가? 하나의 비밀도 가지지 않기를 원하는가? 죽을 때까지 마음 아플 일이 없기를 바라는가?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인격을 진정 원하는가? 진정인가?



5. 


객관적인 아름다움은 누구나 찬미하지만 누구나 오래 가질 수는 없는 것. 그러나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한 사람, 당신만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부정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하는 또 다른 내밀한 형태일 뿐이다. 몸이라는 허물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면서도 죽어도 변함없는 애정은 자신 한 사람만이 베풀 수 있고 그 애정과 집착은 타인을 통해서 확인받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사회를 이루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영원히 만족하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6.


폭력의 기억은 사랑의 기억보다 선명하고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미래의 시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7.


인간이 진화할수록, 아무리 좁은 공간을 나누어 생활하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멀어진다.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인정하기에는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가까운 사람이 겪는 클라이맥스와 고통과 좌절을 우리는 모른다. 설사 설명한다 할지라도 알 수 없다. 짐작할 뿐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죽음을 덜어줄 수는 없다. 우리 모두의 몸 안에는 서로 다른 시간의 시계와 달력이 들어 있어, 타인 안의 시간과 계절을 알 수 없다. 진정 일생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다른 모든 것은 단지 이해하고 견디는 것에 불과하다.



8.


생명은 짧고 육체의 젊은은 잠깐이다. 시간이 영원하다면, 불멸이라면, 나이 들고 늙어갈 운명이 아니라면, 영원히 젊다면, 이렇게 유한한 몸이 아니라면, 그래도 한 사람을 내 생명처럼 사랑할까. 사랑에 그토록 간절함이 있을까. 불안한 듯이 꼭 잡은 두 손을 결코 놓기 싫은 그런 존재가 있을까. 한 사람에게 구속됨으로써 얻는 충족감이 있을까. 같이 마주 보며 늙어갈 동반자가 있음이 그토록 감사할까. 언제나 변함없고 믿을 수 있는 그런 다정한 존재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할까. 아마 상당히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사람이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은 서로 남자고 여자이기 때문만도 아니고 잃어버린 반쪽이라고 그런 것만도 아니고 종족 보존을 위해서만도 아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너무나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는 바로 당신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식의 위안의 말은 안 믿는 편이다. 대상은 절대적이지 않다. 존재의 불안이 고독을 만들고 그래서 필요한 연인은 이미지로 남는다. 바로 그(녀)는 한때 나의 연인이었다는 이미지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전제하에서 세기의 로맨스도 천하의 분륜도 상투적 통속극도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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