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방긋 웃는 대통령과 국민을 어리석다고 하는 부총리

너의길을가라 2014. 1. 24. 07:21
반응형



- <연합뉴스>에서 발췌 - 



참 해맑다. 그래서 참 속상하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 것일까? 다보스에서 한 영어 연설이 마마음에 흡족했던 탓일까? 오랜만에 대한민국의 땅을 밟는 것이 행복했을까? 아니면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이 반가웠던 것일까? 사실 웃는 것 가지고 대통령을 비판하고 싶진 않다. 그 정도로 쪼잔하게 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람인 이상 감정 표현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다만, 상황과 분위기는 좀 살폈으면 하는 것이다. 정말 단지 그것뿐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걱정하는 정치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다. 아주 간혹 별종 같은 정치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현 시점에서 그런 괴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를 걱정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문제는 거기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태평성대를 열어달라? 물론 여전히 대통령을 전근대의 왕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하늘을 받들듯 모시는 사람들이 있지만 민주적인 소양을 갖춘 일반적인 시민들은 그런 허황된 바람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이 바라는 건 사실 간단하다.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달라는 것이다. 상황에 맞는 표정과 제스처를 취해달라는 것이다. 그 정도면 해줘도 화가 나진 않으니까 말이다. 


대통령에겐 측근에서 보필하는 참모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참모들이 대통령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지 않는 이상,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보고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고,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도 못했으며 전국적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조류농가의 근심이 얼마나 큰지, 재래시장과 음식점들의 매출이 급감한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 카드 3사의 개인정보 유출과 그 심각성에 대해서도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모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다보스에서 전화를 걸어 '카드정보유출 책임을 엄하게 물으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방긋' 웃는다. 만약 필자가 대통령이라면 전용기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근심에 가득찬 표정을 짓겠다. 진심으로 국민들을 걱정하든 하지 않든 간에, '내가(대통령이) 이렇게 마음이 아프다. 걱정하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박 대통령은 정말 솔직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걱정하지 않으니까 걱정하는 척 할 수 없어'라는 단호한 의지? 



- <뉴시스>에서 발췌 - 



지난 22일, 현오석 부총리는 "우리가 다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았느냐.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지고 걱정만 한다"는 말을 지껄였다(이건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개인정보가 유출된 카드 3사의 고객들, 수 천 만명에 달하는 국민들은 졸지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정보제공에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보 공개에 거부하면 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다. 이것이 합당한 계약일까?


굳이 야권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현 부총리의 발언은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새누리당의 이혜훈 최고위원은 현 부총리의 발언을 "귀를 의심케 하는 망언"이라고 규정하면서, "금융당국의 책임이 없다고 얘기할 수 없다. 금융당국 수장을 제식구 감싸기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백번 양보해서 금융당국이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도 이를 따지는 것에 대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다니 국민을 무시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발상"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결국 현 부총리는 23일 오후 "불안과 불편을 겪고 계시는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무척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기재부 대변인을 통해 전달)


'방긋' 웃고 있는 박 대통령의 모습과 국민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현 부총리의 태도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문제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이혜훈 최고위원이 잘 지적한 것처럼 '국민을 무시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오만함'이 문제의 근원이다. 한 나라의 부총리가 그런 태도를 갖고 있는데, 나라가 잘 굴러가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한 것 아닐까? 그러고 보면 지금의 아수라장은 오묘하게도 '정상(正常)'적인 상태가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이 자업자득인 셈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