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는 말을 잘하지만, 밖에 나가면 입을 닫는다? 지난 11일 방송된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에는 '선택적 함구증'을 겪고 있는 금쪽이가 등장했다. 4남매 중 둘째 아들인 금쪽이는 평소 흥이 많고 다재다능한 아이다. 하지만 학교에 가면 침묵 모드로 변했다.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선생님 앞에서만 조용하고 친구들과는 대화를 많이 했는데, 커 갈수록 점점 더 입이 무거워졌다.
가족 앞에서는 평범한 10살 금쪽이가 학교만 가면 입을 닫는 이유는 무엇일까. 낯선 사람 앞에서 입을 꾹 닫는 까닭이 뭘까. 단지 낯을 가리기 때문일까. 그저 부끄러움이 많아서일까. 아이의 침묵이 길어지자 엄마는 걱정이 많아졌다. 사실 첫째 딸도 5살 때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다. 어린이집에서 입을 다문 채로 1년을 지내다가 선생님의 지도와 도움 덕분에 지금은 완치됐다.
"아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성격이 완전히 굳어져 있거나 형성되어 있지 않아요. 근데 이 성격은 타고난 것과 길러지는 것이 합이에요."
아빠도 어린 시절에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두 아이에게 발현된 증상에 달리 방법을 몰라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렇다면 선택적 함구증은 가족력일까. 오은영은 그 질문이 '유전 질환'을 뜻하기보다 '부모의 성향을 닮냐'는 것 같다며, 성격이란 타고난 것과 길러지는 것의 합이라고 대답했다. 결국 닮는다는 얘기였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인 법이다.
금쪽이의 학교 생활은 어떨까. 수업 시간에 금쪽이는 질문을 하거나 대답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 모르는 내용이 있어도 그냥 넘어갔다. 선생님은 그런 금쪽이가 걱정돼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흔드는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했다. 식사 시간이 됐지만 금쪽이만 혼자 밥을 먹지 못했다. 수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쪽이는 수저가 없다고 말하는 대신 혼자 수저를 찾느라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옆에 앉은 친구가 금쪽이의 상황을 파악하고 선생님에게 알려 교무실에 가 수저를 가져오게 했다. 하지만 금쪽이는 교무실에서도 쭈뼛거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금쪽이가 돌아오지 않자 선생님이 직접 교무실로 가서 수저를 챙겨와야 했다. 확실히 선택적 함구증은 학교 생활에 있어 큰 지장을 주고 있었다. 그런 금쪽이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오은영은 흔히 사람들이 선택적 함구증을 (그 네이밍 때문에) 본인이 '선택'해서 말을 안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선택적 함구증이란 발화 능력에 문제가 없음에도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말을 하고 싶어도 여러 이유로 입이 쉽게 열리지 않는 것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금쪽이는 선택적 함구증이 맞았다.
6회 방송에서도 선택적 함구증을 겪는 아이가 출연했었는데, 그 경우는 극심한 불안으로 힘겨워 말을 못했던 케이스였다. 금쪽이의 경우에는 불안과 긴장감이 느껴지나 아무 것도 못하는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다. 금쪽이는 말 대신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다만, 언어 발달이 늦었다. 오은영은 그 이유가 말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집에서 하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금쪽이는 언어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매우 적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곧바로 포기했다. 또, 말을 잘하는 친구들이 나서서 착한 금쪽이의 어려움을 해결해줬다. 그러다보니 도움을 받는 게 익숙해진 것이다. 금쪽이는 능동성과 주도성이 부족했다. 주변 사람들은 '끄덕끄덕'이나 '도리도리'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질문만 던졌는데, 일종의 고육책이었으나 오히려 역효과였다.
예/아니오로 대답이 가능한 닫힌 질문(Closed Question)은 금쪽이의 입을 닫는 데 일조했다. 언어 발달의 포문을 열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배려들이 되레 방해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선택적 함구증은 만 5세 전후로 증상이 발현되고, 만 10세 이전에 치료되지 않으면 장기화될 수 있다. 금쪽이이 경우 조금 늦긴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학교를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콜라 줄까?"가 아니라 "뭐 마실래?"
"기분 좋아?"가 아니라 "기분 어때?"
오은영은 압박을 하거나 부담을 주면 입을 열기 더 어렵다면서 말의 포문을 여는 짧은 말부터 시작해보라고 조언했다. 짧은 말을 내뱉음으로써 불편함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압축된 편안한 표현을 찾는 게 우선이다. 의성어도 좋다. 쉬운 말로 시작해 성공의 경험을 자주 쌓다보면 점차 입을 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작은 손짓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쪽이의 속마음을 들어볼 차례였다. 낯선 상황이라 쉽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힘겹게 "말.. 잘하고.. 싶어."라고 진심을 드러냈다. 이어서 첫째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선택적 함구증을 겪었던 첫째는 이제 말하는 게 편해졌을까. 첫째는 "그건 잘 모르겠어.."라며 말을 삼켰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첫째는 지금도 말하는 걸 힘들어하고 있었다.
호전됐다고 믿어왔던 첫째의 뜻밖의 침묵에 엄마 아빠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동생에게만 집중했던 사이 첫째는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다. 두 아이를 위한 '금쪽처방'이 필요했다. 오은영은 첫째가 완벽주의 기질이 있다며 말을 술술 하지 않는 까닭이 틀릴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첫째에게 필요한 말은 "너랑 말하는 게 재밌어. 꼭 정답이 아니어도 돼."였다.
금쪽이에게는 '음성 일기'를 녹음하게 했다. 생각과 감정 표현이 어려운 금쪽이가 스스로 하루를 기록하고 돌아보도록 함으로써 말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금쪽이는 선생님에게 음성 일기를 전달했고, 선생님은 매일 답장을 보내 소통에 나섰다. 또, 즐겁게 말하는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 한 가지 주제 안에서 멈추지 않고 말하는 게임을 하기도 했다.
가족들의 꾸준한 노력을 통해 금쪽이는 조금씩 변화했다. 음성 일기는 금쪽이의 자신감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루아침에 수다쟁이가 될 수는 없지만, 이제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금쪽이가 선택적 함구증을 이겨내고 좀더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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