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뜯어먹는 소리

랜드시어, '고디바 부인의 기도'

너의길을가라 2012. 8. 7. 00:13





지난 번에 올린 그림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바로 존 콜리어의 '고디바 부인(혹은 레이디 고디바)'였는데요. 제가 글을 쓰면서, 같은 주제를 전혀 다르게 그린 그림이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그림을 찾지 못해서 올리진 못한다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찾아지는 거였어요. 영어로 검색하면 금세 찾아지더군요. 끙.. 어쨌거나 지금 보고 계신 랜드시어의 '고디바 부인의 기도'는 어떤 느낌인가요? 존 콜리어의 그림에 나오는 '고디바 부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죠? 존 콜리어의 그림에서 고디바 부인은 가냘픈 몸매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죠. 애처로운 느낌입니다. 그녀는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죠. 그런데 랜드시어의 그림에서 고디바 부인은 상대적으로 몸도 튼실합니다. 몸에 근육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두 팔을 자신있게 펼치고 있고, 고개를 위로 들고 있죠. 표정도 뭐랄까, 의지에 가득차 있다고 해야 할까요? 난 지금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어! 뭐, 그런 확신도 느껴지고요.


사실 전설 속에서 고디바 부인은 마을 사람들의 세금을 감면시켜 주기 위해 옷을 다 벗고 시장을 돌고 있는 거니까, 일종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고디바 부인은 랜드시어의 그림처럼 당당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앞에 보이는 교회의 첨탑도 고디바 부인의 희생 정신을 잘 드러내고, 영웅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존 콜리어의 그림은 전설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재해석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존 콜리어는 왜 고디바 부인을 그런 식으로 그렸을까요?


이택광에 의하면, 빅토리아 시대까지만 해도 여성은 자연과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고 하네요. 남성이 문화라면 여성은 자연.. 계몽되지 않은 존재, 가다듬어지지 않은 존재였다는 거죠. 신성림의 글에서도 여성이 어떤 식으로 그려졌는지 알 수 있는데요. 여기에 대해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성 = 자연, 거기에 발가벗고 있는 여성은 완벽한 자연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발가벗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존 콜리어는 거기서 수치심을 찾아낸 모양입니다. 뭐, 에덴 동산 이후로 인간은 발가 벗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게 됐죠. 보티첼리의 '아프로디테의 탄생'에서도 갓 탄생한 여신이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발가벗고 있다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아프로디테가 정말 수치심을 느꼈을까요? 아마 이 그림을 그린 보티첼리가 발가벗고 있다는 건 수치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고디바 부인 전설'이라는 똑같은 주제를 그리고 있음에도 '랜드시어'의 그림과 '존 콜리어'의 그림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려졌습니다. 정말 같은 주제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른데요. 이래서 그림은 재미있나 봅니다.  색채, 구도, 기법  등을 살펴보는 것도 그림을 보는 하나의 재미겠지만, 그림 속에 숨겨지 있는 이야기들을 파악하는 것도 그림을 보는(읽는) 큰 재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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