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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뜯어먹는 소리

존 컨스터블, 아름답기만 한 19세기 영국의 농촌?



"어느 하루도 같은 날이 없고, 단 한 시간도 서로 같은 시간이 없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 한 나무의 두 잎사귀도 같아 본 적이 없다. 진정한 미술이란 자연처럼 서로 달라야 하는 것이다."



참 아름답죠? 시골의 풍경.. 따뜻하고, 정겹고, 그립고.. 존 컨스터블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고향'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에겐 말할 것도 없고, 평생을 도시에서 산 사람들에게도 왠지 모를 목가적인 감상을 불러 일으키죠.


존 컨스터블(1776~1837)은 윌리엄 터너와 함께 영국의 대표적인 풍경화가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풍경을 소재한 그림을 그렸는데요. 그는 풍경화란 직접 자연을 관찰하고 그려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집 근처의 야외로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당시의 아카데미 전통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죠. 


물론 생각해봐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과연 19세기 영국의 농촌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풍요롭고 아늑한 모습이었을까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상황이었을까요? 존 컨스터블이 지방에서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었다는 것이 하나의 힌트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프랑스의 장 프랑수아 밀레가 당시 농촌의 현실, 가난하고 열악한 농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것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존 컨스터블, 에섹스 비벤호의 공원, 1816년, 캔버스에 유채, 56.1 x 101.2cm, 위싱턴D.C. 국립미술관




존 컨스터블, 플랫포드 물방앗간, 1817년, 캔버스에 유채, 102 x 127cm, 데이트 미술관, 런던




영국의 19세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8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으로 도시는 급속도로 발전했고,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했습니다. 자의에 의한 것도 있었지만,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도시의 빈민 노동자가 된 경우가 많았죠. 이들에게 존 컨스터블의 그림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존 컨스터블의 그림들에 산업화를 겪던 대한민국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