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더 테러 라이브>, 애초부터 받을 수 없었던 사과.. 그 씁쓸한 뒷맛!

너의길을가라 2013. 8. 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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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과의 협상은 없다." 

그렇다. 그것이 원칙이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더 많은 희생을 만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테러범과 협상을 하게 되면, 그런 선례를 남기게 되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그 이후부터는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이 '테러'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노규'는 애초부터 받을 수 없는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물론 '박노규'는 '마지막 수단'까지 준비했다. 사과를 받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과를 받을 수 있다. 그 사과 한번이면 모든 것을 멈추겠다'는 마음이 선행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참으로 절절하지 않은가? 대통령의 사과, 단지 그 사과 한번이면 된다는 그 마음 말이다. 




'더 테러 라이브'는 방송국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국민 앵커 윤영화(하정우)는 불미스러운 일로 9시 뉴스에서 밀려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세제 개편에 관한 시청자 의견을 받던 중에 '진상'과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자신을 마포대교를 만든 일용직 노동자 박노규라고 밝힌 테러범은 마포대교를 폭파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물론 윤영화는 장난전화라고 생각하고 우습게 여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말 마포대교가 폭발했다. 

윤영화는 9시 뉴스 복귀라는 대박의 꿈을 안고 테러범과의 통화를 TV로 생중계하기로 국장(이경영)과의 딜을 성사시킨다. 여기서부터 상황은 급속도로 전개된다. '박노규'는 2년 전 마포대교 보수 공사 중에 인부들이 다쳤지만 국가 행사 중인 당시, 누구도 구조하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며 분노한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다. 물론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를 대신해서 경찰청장이 등장한다. 우습게도 경찰청장은 시종일관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테러범과의 협상은 없다"면서 박노규에게 엄포를 놓는다.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된다. 폭파된 마포대교의 생존자들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 있다. '박노규'는 대통령의 사과가 없으면 다리를 마저 폭파시켜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말한다. 숨막히게 전개되는 상황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윤영화의 입장, 경찰의 신뢰할 수 없는 태도, 생중계라고 하는 극적 장치들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통령의 사과는 없다. 대통령은 사과할 수 없는 존재일까? 모든 일에 대통령이 사과를 한다면 그 또한 곤란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최악의 상황들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의 기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법이 공정하게 집행된다면 '박노규'는 마포대교를 폭파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원칙은 무너진 지 오래다. 법? 돈 많은 사람들에게 법은 우습기만 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단지 옛말이 아니다. 돈과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법과 원칙을 농락하고 있다. '더 테러 라이브'는 그런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참으로 뒷맛이 쓴 영화이다. 

스포일러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화가 났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를 비교하는 기사들, 송강호와 하정우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꼬집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려고 했다.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이유가 있나? 대통령 선거하나? 두 영화 모두 훌륭하고 재밌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닌가? 이렇게 글을 풀어나가려고 했다. 또, 단독 주연으로 극의 전체를 이끌어나간 하정우의 탁월한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사실 정말 훌륭했다. 감정 연기와 디테일한 연기들은 하정우가 왜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들은 몰입도를 배가시켰다. 긴장감을 잃지 않는 편집도 좋았다. 뭐, 이런 이야기들로 글을 채울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무려 296일 간의 철탑농성 끝에 지상으로 내려온 최병승 씨와 천의봉 씨가 생각났다.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현대차가 생각났다. 절박함, 벼랑 끝에 몰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그들.. 철탑에서 내려오자마자 경찰서로 가야했다. 그들에겐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한국전력은 이들에게 퇴거 강제금을 부여했다. 그 돈이 1억 2천 360만 원에 이른다. 정부는 이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대통령은 없었다. 아직도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각났다. 이들이 '불합리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가? 이들이 범죄자인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철저히 짓밟는 것이 대한민국의 원칙이고 법인가?!

노량진 수몰사고 이후 박원순 시장이 취했던 행동들이 떠올랐다. 그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사고 현장을 찾았다. 이후 합동분향소에서 유족 대표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고개를 숙였다. 진심을 담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런 결과가 돼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고 가족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에게 위로 말씀을 드린다. 가시는 길에 부족함이 없게 최선을 다해 모시겠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시행사, 시공사와 유족 간 문제지만 서울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며 모든 것을 유족들의 뜻대로 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박원순 시장은 유족들에게 페이스북을 통해 편지를 쓰기도 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나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에 대해 진솔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면 그 죽음에 대해 가슴 깊이 애도를 표하는 것, 그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책임을 따지고, 입장을 계산하고 이후의 정치적·사회적 파장을 걱정하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런 것이다. 물론 '더 테러 라이브'에서처럼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테러에 굴복해 대통령이 사과를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극단적인 선택 이전의 상황들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극단에 몰리기 이전에 그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방법과 기회는 많다. 혹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해결방법을 찾는다면 최악의 상황들은 피할 수 있다. '더 테러 라이브'는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다. 그 씁쓸한 뒷맛이 참 오래도 남아 있다. '더 테러 라이브'는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최악의 상황'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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