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운명에 체념해야 했던,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영화 <관상>

너의길을가라 2013. 9. 1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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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를 만들었던 한재림 감독의 복귀작 '관상'. 우선, 영화 '관상'은 출연 배우들만으로도 흥행이 예고(?)되어 있었다고 할 정도로 '빵빵'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충무로의 가장 신뢰받는 배우 송강호를 비롯해서 '도둑들'과 '신세계'를 통해 흥행 배우로 거듭난 이정재,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김혜수, 누구나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 조정석, 최근 열애설이 터진 백유식(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용서하길), 그리고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오른 이종석까지.. 배우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이다. (이 정도의 오버도 이해를..)도둑들의 성공 이후, '멀티 캐스팅'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관상'의 성공 포인트는 이 배우들의 능력과 캐릭터를 얼마만큼이나 스크린 속에 잘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었다. 물론 아무리 좋은 배우가 있더라도 '시나리오'와 '연출'이 형편 없는 수준이라면 두고 볼 것도 없겠지만. 


'스포일러'를 최대한 지양하기 위해서, 결국 에둘러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선,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스포일러'의 위험을 피해가도록 해보자. '관상'에서 가장 '성공'한 배우는 단연 수양대군 역의 이정재다. 영화 '신세계'에서 이자성 역을 통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풍성하게 만들었던 그는 '관상'에서도 마성의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정재는 달라졌고 분명히 성장했다. '도둑들'을 대성공이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신세계를 통해 확고한 안정감을 구축했다면 '관상'에서는 그 자신감과 안정감이 마음껏 발산됐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은 조선 최고의 관상쟁이인 내경 역을 맡은 송강호 이야기를 해보자. 그는 결코(푸른소금에서는 실망했으므로 '결코'라는 말은 과장이지만) 실망시키지 않는 배우다. '설국열차'에서의 적은 분량 탓에 마음껏 감상하지 못했던 그의 연기를 '관상'에서는 흠뻑 감상할 수 있다. 독특한 대사 호흡법, 목소리, 눈빛, 표정, 동작, 감정의 조절.. 배우 송강호가 쏟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특히 내경의 처남인 팽헌 역을 맡은 조정석과의 앙상블이 돋보인다.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 캐릭터를 유행시켰던 조정석은 '관상'을 통해 '한국의 조니뎁이 되겠다'는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한다. 송강호와 조정석은 마치 시소를 타는 것처럼, 적절하게 힘을 배분하며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앞서 언급한 세 명의 점수는 확실한 플러스다. 





하지만 김혜수, 백윤식은 아리송한 플러스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김혜수와 백윤식은 자신의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선보였고, 이들만의 카리스마도 연기 속에 녹여냈다. 하지만 '틀'을 벗어나진 못했다. 평소 '음모'를 꾸미던 '마담' 캐릭터에서 조금은 순수한(?) 느낌의 연홍 역을 맡았지만, 캐릭터 자체가 드라마의 본류에서 조금 빗겨 있기 때문인지 별다른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김종서 역의 백윤식도 딱히 평가를 하기엔 평이했다. 


내경의 아들 진형 역의 이종석은 확실한 마이너스다. '도둑들'에서 김수현이 다른 배우들에 잘 묻어갔던 것에 비하면, 이종석은 사극에는 좀 어울리지 않은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색했다. 물론 이종석 탓만 하기엔, 캐릭터 자체가 갖는 힘이 워낙 약했다. 누가 맡았어도 될 무난한 캐릭터였다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이종석은 약해도 너무 약했다. 





'관상'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물론 기대가 워낙 컸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초중반까지만 해도 분명 힘이 있었다. 아무래도 '관상'이라고 하는 소재의 참신함이 잘 발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수양대군'과 김종서'가 등장하는 지점부터 오히려 힘이 꺾이기 시작한다. 그 지점부터 '관상'이라는 소재가 극의 주변으로 내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후부터 시작되는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서스펜스도 나름 흥미롭긴 하지만 이미 너무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송강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관객들은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결국 김종서가 죽고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다는 시나리오를 뻔히 알고 있는 관객들의 집중력은 흩트러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역사의 무게, 그 공허함이 짓누르기 시작한다. 물론 그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 '관상'은 후반부에 약간의 재미(?)를 선물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대결은 매력적인 역사 이야기이고, 불패의 신화를 쓰고 있는 소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공주의 남자'도 성공을 거두지 않았던가! 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역사 이야기는 되려 '덫'이 되어 돌아왔다. '관상'이라는 소재가 주변부로 밀려버린 것도 아쉽기만 하다. 


영화 '관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흠.. 무당은 자신의 앞날을 점치지 못하고, 관상쟁이는 자신의 관상을 보지 못한다는 슬프고도(?) 허탈한 이야기가 증명되는 영화 '관상' 정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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