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반복되는 대학의 군대 문화, 명령과 복종에 익숙한 우리 사회의 단면은 아닐까?

너의길을가라 2015. 3. 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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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News)는, 본래 그 말처럼 '새로운 것'이지만, 실제로 '뉴스'가 'News'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실제로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하는 'News'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약간의 변용(變容)만 거친 과거의 것에 불과하다. 매년 반복되는 뉴스들을 상기해보라.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케케묵은 이야기들, 사회의 특정 사안을 놓고 벌어지는 기득권과 개혁적 성격을 가진 시민단체들의 충돌, 연예인들의 가십 기사, 역대급 경기라는 찬사가 이어지는 스포츠와 관련된 반응들

 

'특정한 날'을 맞아 기획된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3 · 1절이나 광복절이 되면 '역사를 기억하자'는 외침 아래 그와 관련한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지곤 한다. (이토록 많은 기사들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기억하자'는 외침은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식목일(4월 5일)'에도 '나무를 심자'는 구호와 함께 대통령(혹은 국무총리)을 비롯한 각종 유명 인사들이 삽을 들고 흙을 뿌리는 장면들이 담긴 사진 기사들이 인터넷을 도배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뉴스가 넘쳐나는 우리 시대의 'News'이다.

 

ⓒ 세계일보

 

괜시리 허무함이 배어 있는 퉁명스러움으로 글을 시작한 까닭은 이 시기만 되면 '반복'되는 기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대학교에서 벌어지는 신입생 군기잡기'가 그것이다. 관련 기사들을 모아봤다. 가볍게 훑어보도록 하자. ('대학 군기'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엄청나게 많은 기사들을 만나볼 수 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것이 매년 반복되어 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 한겨레

 

 

<한겨레>와 <KBS>는 각각 "택시 타지 마, 화장도 안돼" 공포의 대학 캠퍼스, '짝다리X, 기대기X' 대학이 군대인가요? 의 제목을 통해 상황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지만(클릭을 유도하기에는 훨씬 더 적합했겠지만), 오히려 <뉴시스>가 단 제목(학기초만 되면 되풀이되는 대학문화 '신입생 군기잡기')이 더 마음에 든다. 그렇다. 더 이상 신입생의 군기를 잡는 대학 문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매년 이 시기만 되면 반복되는 일이다.

 

사람들은 당장은 격한 반응을 쏟아내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른 (반복되는) 뉴스들에 의해 까마득히 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 어김없이 돌아오는 3월 무렵이 되면,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며 (짧지만) 뜨겁게 분노할 것이다. 어떤 기자는 그 때도 이렇게 탄복할 것이다. "학기초만 되면 되풀이 되는 신입생 군기잡는 대학문화!"

 

 

실상을 전달(혹은 폭로)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래야 상황 자체를 전복시킬 가능성이 확보된다.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켜, 혹은 정부에게 압박을 가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한 여론의 힘을 우리는 수 차례 목도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매년 어김없이, 똑같은 양상으로 반복되는 '대학 내의 군대 문화'는 왜 바뀌지 않는 것일까? (물론 모든 대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씁쓸하지만, 우리는 그 힌트를 현상을 가리키는 '이름'에서 찾게 된다. 이른바 '군대 문화'라는 그 지긋지긋한 괴물 말이다.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군대'의 경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의 (누군가에게는 밝기도 하겠지만) 어두운 단면들, 다시 말해 군사 정권들에 의해 일반 국민들도 '군인화'되었던 긴 기간은 우리를 '명령과 복종'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물론 거기에서 멈추는 것은 절반의 성공이다. 한걸음 더 들어가보면, 산업화 이전에 근대화가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직면하게 된다. 그때부터 '병영 국가'의 기반이 닦아졌다. 그로부터 교육받은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했고, 그 결과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직면하는 '군사 문화'의 잔재를 남겼다. '대학 내의 군기 잡기'도 이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는 부작용이 아닐까?

 

ⓒ 한겨레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단국대학교 000학과 000전공 15학번 000입니다!"라는 관등성명으로 인사를 시키도록 교육(?)하고, 군대에서 비롯된 '다, 나, 까 말투'를 사용하도록 하고, '파마, 염색, 화장, 틴트, 선크림' 등을 못하도록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은 결국 군대 문화의 산물이다. 그것을 일그러진 선·후배 문화로 접근할 수 있지만, 본질은 결국 사회 속에 깊숙이 침투한, 혹은 내재되어 박힌 '군대 문화'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논란이 불거지는데도, 대학의 군기잡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입생 때는 문제의식을 느꼈던 학생들도 막상 선배가 되면 다시 같은 방식으로 후배들의 군기를 다지고 있습니다. 군기는 말 그대로 '군대의 기강'을 뜻합니다. 대학은 군대가 아닐 뿐더러, 사회에서 가장 자유로운 교류의 장이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학문적 교류와 소통 속에서만 선배를 향한 진정한 존중도 싹틀 수 있습니다. 이제 불필요한 '악습'은 과감히 끊어버려야 할 때가 아닐까요."

 

'짝다리X, 기대기X' 대학이 군대인가요? <KBS>

 

"충격적인 것은 자신들의 행동이 어디가 잘못됐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하는 행동은 학교를 위해서라며 자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 학교를 위해서라면 일제 때나 행해진 군기문화를 박멸해야 한다. 참된 지식인으로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문제의식을 갖는 아름다운 대학생이 되기를 바란다."

 

'까라면 까라' 대학가 비뚤어진 군기문화 <세계일보>

 

<KBS>와 <세계일보>의 기사들은 각각 '훈훈한 가르침'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지만, 이런 통송적인 이야기로 '군대 문화'에 찌들어버린 대학생들이 '아름다운 대학생'이 될 리는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것이 단지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군대 문화'는 대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징 중의 하나다.

 

- 구글 이미지 검색 -

 

한국 대기업의 프랑스 현지법인 대표였던 에릭 쉬르데쥬라가 전하는 한국 기업의 모습은 이러했다고 한다. "
일본인들은 내가 한국 기업으로 옮긴다고 하자 한국 사람들과 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말렸다. 한국인들은 군대식이고, 시끄럽고, 세련되지 않았으며, 사람을 통제하려 한다는 말을 했다. 경험해 보니 한국인은 산업적으로는 열려 있지만, 가족, 회사, 사회가 다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익숙해져 있었다. 명령과 복종."

 

'명령과 복종'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전화 통화할 때는 양해를 구하는 말투로', '상체 꾸벅 후 0.1초 뒤 육성인사', '짝다리X, 기대기X, 눕기X, 핸드폰X' 라는 식으로 신입생들을 강력히 통제하고, 자신의 영향력 아래 복종하게 하는 대학교 선배들은 과연 '누구'로부터 배웠던 것일까?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시즌을 맞아 반복적으로 써내는 기사들이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현상'에 매물돼 반짝 떠들 것이 아니라, '본질'을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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