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기자님들, 안현수와 김연아로 행복하셨나요?

너의길을가라 2014. 2. 24.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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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신문(新聞)의 시대는 지났다. 아니, 정확히는 '종이'신문의 시대는 지났다. 더 이상 사람들은 종이신문을 구독하지 않고, 종이신문을 찾아 읽지 않는다. 조금 과장(誇張)된 말이긴 하지만, 그 과장이 단순한 과장이 아닌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미디어 이용 행태를 조사(5082명을 대상)한 바에 따르면, 신문 기사를 이용하는 경로를 묻는 질문에 '모바일 기기를 통한 인터넷'라는 응답이 55.3%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PC, 노트북 등 고정형 단말기를 통한 인터넷(50.7%)', '종이신문(33.8%)' 순이었다. (중복 응답 가능)



- <한겨레>에서 발췌 - 


모바일이든, PC나 노트북이든 결국 '인터넷'을 통한 접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비중은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의미심장한 조사 결과는 19~29세의 경우 85.6%가 30대의 경우 79.2%가 모바일 인터넷(스마트폰)으로 신문 기사를 접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신문'의 힘은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다. 


모바일이나 PC, 노트북으로 뉴스를 읽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소비할 것이다. 실제로 언론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뉴스에 접근하는 비율은 애초부터 적었고, 그마저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 세 가지 사실, 즉, ① 우리는 여전히 뉴스를 소비한다 ② 인터넷(모바일, PC등)을 이용해 뉴스를 소비한다 ③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소비한다 는 것을 종합해보면 '위험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좀 쌩뚱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위험하다니?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가보자. 



- <경향신문>에서 발췌 - 



우리는 뉴스를 소비한다. 과거보다 훨씬 더 쉽게 소비한다. 우리의 손에는 어디서든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다. 언론들은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그 비중을 옮겨가고 있다. 그에 따라 중간 매체인 포털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기자들은 점점 더 '날라리'가 되어가고 있다. 뉴스는 많지만, 곱씹어 볼만한 뉴스는 없다. 읽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휘발성(揮發性) 뉴스들만 남발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뉴스 공급의 생명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최대한 빨리 소식을 전달해야만 한다. 그래야 도태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언론들이 '속도 경쟁'이 목숨을 걸고 있다. 때문에 부정확한 정보들이 난무한다. 비문(非文)이 속출하고, 맞춤법은 애시당초 고려사항이 아니다. 심지어 댓글난에는 누리꾼들의 맞춤법 강의가 이어지기도 한다. 어차피 기사의 내용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니,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기사를 일단 쏘고 볼 일이다. 


이러한 언론 세태를 비판하면서 '슬로우 뉴스'가 일종의 블루 오션을 개척하고 나섰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꾸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여전히 '(부정확하더라도) 빠른 뉴스'가 대세를 점하고 있다. 그것이 휘발성이 강한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성이기도 한다. 어차피 진득하게 앉아서 기사를 음미할 사람들은 없다. 눈에 띄는 제목을 클릭하고, 슬쩍 훑어볼 뿐이다. 오히려 기사보다는 댓글을 보러 클릭하는 경우도 많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해야 할까?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종이 신문의 경우에는 적어도 신문을 찍어내기 전까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내용을 비롯해서 구성과 편집 등에서 조금 더 심사숙고할 여지가 있었다. (물론 황색 저널리즘이 신문 점유율의 70~80% 이상을 차지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틈이 있었고, 또 정확한 정보를 전해야 한다는 책무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서도 되레 떳떳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시대가 달라졌잖아, 라고 항변한다. (남들보다) 빨리 써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 고 따진다. 매체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 고 자기변명을 늘어놓는다.


소위 '듣보잡'인 인터넷 언론도 우후죽순 늘었다. 많이 망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숫자는 상당히 많다.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과 젊은 시절의 조갑제를 연상케 하는 기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자 정신'이라는 말은 주진우와 이상호를 끝으로 폐기처분 된 것 같다. 더 이상 기자들은 책을 읽으며 공부하지 않는다. 한 가지 사안을 두고 밤을 지새며 고민하지 않는다. 진실을 파헤치고자 뛰어들지 않는다. 문장을 고민하지 않는다. 어휘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 공들여 쓰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 되다시피 했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읽히지 않는 글이라며 조소(嘲笑)를 머금으며..



- <스포츠조선>에서 발췌 - 


소치 동계 올림픽 기간 동안 정말 엄청나게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기자들은 무척 바빴을 것이다. 물론 그 기사의 내용이라고 해봤자 'Ctrl + C, Ctrl + V' 를 통해 간단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단순 노동도 나름대로의 시간과 고생을 동반하니 바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고생했다고 박수쳐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양한 시각은 결여되어 있었고, 죄다 천편일률적인 기사들뿐이었다. 






특히 불편했던 것은 가장 핫한 소재였던 '안현수'와 '김연아'를 대상으로 쓰인 반복된 기사들이었다.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서 검색해 본 결과(2월 기준) , '안현수'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기사는 9,993건에 달했고, '김연아'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기사는 무려 28,470건이나 됐다. 물론 그 두 사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지대했던 것은 사실이고, 사람들의 감정의 진폭이 컸던 것도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그 감정을 이용해서 '클릭 수'를 높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 국민들을 감정의 과잉 속으로 밀어넣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치올림픽]안현수 영웅대접, 두둑한 포상금에 아파트까지 <이데일리>

3년전 내한 소트니코바, "김연아 배울 점 많다"고 하더니.. <엑스포츠>

소트니코바 인터뷰 "지난해부터 김연아 이기고 싶었다" 패기 <뉴스엔>


안타깝게도 지금 기자들(혹은 언론)이 하고 있는 행태, 곧 그들이 쓰고 있는 기사들은 그저 '기자, 자신의 감정 배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엔 달라야 한다. 그저 잘 팔릴 것 같은 자극적인 기사, 소위 '클릭질'을 유발하는 기사들을 쓰는 것이 기자의 책무는 아닐 것이다. 또, 기사를 통해 자신의 분노를 풀어 놓는 것이 기자의 임무는 아닐 것이다. 


소치 동계 올림픽 기간동안 기자들은 아주 행복했을 것 같다. '안현수'와 '김연아'라고 하는 불패의 아이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끊임없이 소비되는 이 놀라운 현상 앞에 기자들은 신세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국민들도 올림픽이라는 마법과 분노를 자극하는 기사들에 휩싸여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이제 곧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다. 삶을 짓누르는 문제들은 산적해있고, 그 문제들을 풀어낼 방법은 요원하다. 수 만 개의 기사들을 쏟아낸 기자들은 이제 어떤 기사를 쓸 것인가? 행복은 끝났다. 행복을 계속 연장하려는 시도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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