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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툰드라' 바다코끼리 위기에 고현정이 전한 안타까움

너의길을가라 2022. 4. 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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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륙의 북동쪽 끝, 북극해와 맞닿은 추코트카에 '에누르미노'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이 있다. 그곳에 '축치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살아가고 있다. 300명 남짓의 그들은 바다코끼리와 귀신고래 등 바다 동물을 사냥하며 삶을 이어왔다. 1일 방송된 SBS 스페셜 <가디언즈 오브 툰드라> 3부 '툰드라의 경고' 편은 축치족의 이야기와 기후변화로 인해 툰드라가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에누르미노에는 9월에도 눈보라가 몰아친다. 해변에는 북극에서 밀려온 유빙들이 널려 있다. 축치족 남자들은 사냥 준비로 분주하다. 추코트카는 1년 내내 땅이 얼어있어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바다 사냥은 필수다. 축치족은 수천 년 전부터 바다에 의지에 생계를 이어왔다. 이들은 아직 전통 방식대로 작살을 이용해 바다코끼리를 잡는데, 법적으로 정해진 숫자만큼 사냥을 한다.


축치족 사냥꾼들은 전부 베테랑이지만, 사냥은 쉽지 않다. 바다코끼리를 찾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오래전 바다에 유빙이 많았을 때는 바다코끼리 사냥이 수월했다. 헤엄을 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바다코끼리는 얼음 위에서 휴식을 취하며 생활한다. 그런데 얼음이 없어지다보니 바다코끼리도 멀리 떠나버렸다. 얼음과 함께 바다코끼리도 사라진 셈이다.

힘들게 사냥한 바다코끼리는 마을 사람들이 공평하게 나눠 먹는다. 사냥에 성공할 때마다 집집마다 차례로 배분해 겨울을 나게끔 한다. 1년 내내 땅이 얼어 있어 먹을거리가 많지 않은 척박한 땅, 영구동토에서 살아가는 에누르미노 사람들에게 바다코끼리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이다. 축치족은 열량 높은 바다코끼리 고기 덕분에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도 수천 년을 살아올 수 있었다.

"최근 30년 동안 동북극의 얼음 면적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바다코끼리들이 쉴 곳이 매우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해안으로 이동하게 된 거죠." (막심 차킬레프, 해양연구소 연구원)



바다코끼리는 빙하가 있는 북극해를 좋아한다. 이들은 수심 50m 정도의 바다에서 조개나 연체동물을 먹으며 살아간다. 먹이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얼음 위로 올라가 시간을 보낸다. 바다코끼리들은 빙하 위에서 휴식도 취하고, 번식도 하고, 새끼도 기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북극의 빙하가 무서운 속도로 녹으면서 쉴 곳을 잃은 바다코끼리들은 얼음 하나 없는 해안 절벽으로 이동했다.

해안가는 한눈에 보기에도 좁다. 수천 마리의 바다코끼리가 휴식을 취하기는 무리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애초롭다. 어떤 녀석들은 절벽 위까지 올라가 휴식을 취한다. 문제는 내려올 때인데, 추락사가 빈번하다. 시력이 낮은 바다코끼리는 앞을 잘 보지 못하고, 육지에 익숙하지 않아 사고를 당하기 일쑤다. 수많은 바다코끼리들이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창자가 터져 죽고 만다.

바다에 얼음이 충분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다. 얼음이 사라진 탓에 바다코끼리들은 끊임없이 휴식을 취할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 많을 때는 한 곳에 십만 마리까지 모이기도 한다. 너무 많은 개체수가 몰리다보니 공황 상태가 돼 서로를 공격하는 일까디 벌어진다. 몸집이 작은 새끼들이 가장 많이 죽고, 임신한 암컷들이 몸싸움의 충격으로 유산을 하기도 한다.

"작년만 해도 이곳 군락지에서 거의 500마리가 죽었습니다. 해변 군락지에서 바다코끼리가 죽는 숫자는 해가 가면 갈수록 더욱 증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은 바다의 유빙감소와 기후변화가 바다코끼리 사망에 직접적 원인이 된다는 증거와도 같습니다." (막심 차킬레프)



새끼를 낳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면 결국 멸종 위기이 직면할 것이다. 또, 겁이 많은 바다코끼리는 놀라면 정신없이 바다로 도망가는데, 이때 많은 바다코끼리들이 서로에게 밟혀서 내장기관이 파열돼 죽기도 한다. 실제로 2006년 약 12만 마리였던 바다코끼리 개체 수는 계속 감소 중이다. 기후 변화가 축치족의 삶뿐만 아니라 바다코끼리의 생존도 위협하고 있다.

한편, 바다코끼리의 천적인 북극곰도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축치족은 북극곰을 '문제의 곰'이라고 부른다. 북극에 살아야 할 북극곰들이 자꾸만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코끼리 군락지에는 사체만 널려 있다보니 사냥하고 남은 바다 동물의 잔해가 남은 마을을 찾아오는 것이다. 축치족은 자체적으로 환경 순찰대를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하루는 마을 해변에서 북극곰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이상한 일이다. 에누르미노에서 2000km 떨어진 야쿠츠크에서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곳에서 비쩍 마른 북극곰이 발견됐다. 그 녀석은 북극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내륙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한 달 만에 포획된 북극곰은 근처의 동물원으로 이송돼 사료를 먹고 한동안 잠만 잤다. 많이 지치고 힘들어보였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변화 때문에 북극의 동물들이 이유도 모른 채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북극 동물들의 위기는 그 동물들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축치족일 것이다. 그들이 언제까지 북극 툰드라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내래이션을 맡은 배우 고현정은 "이 바다가 더 이상 녹아내리지 않기를, 그저 조용히 바라봅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메머드와 공룡을 멸종시킨 의문의 바이러스들이 언 땅 깊숙한 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고 기후변화로 영구동토가 녹으면 이 바이러스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겁니다." (장 미셸 클라베리, 엑스-마르세유 대학 생물정보학 교수)



툰드라가 보내는 경고를 좀더 들어보자. 겨울이면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 야쿠츠크의 한 마을에서 30년 전부터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영구동토였던 땅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땅에서 솟아나는 물 때문에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아무리 막아도 역부족이다. 영구동토가 녹으며 마을도 함께 녹아내리고 있다.

이런 기후 변화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2014년, 엑스-마르세유 대학 생물정보학과 장 미셸 클라베리 교수는 영구동토층에서 채취한 샘플에서 고대 바이러스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150만 년 전에 꽁꽁 잠들어 있던 '피토 바이러스'였다. 그건 바로 이 바이러스를 아메바 세포 안에 넣었더니 무서운 속도로 증식하더니 결국 아메바는 세포막이 타져 죽고 말았다.


단지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치부해도 될까. 실제로 비슷한 일이 2016년 여름, 야말 반도에서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 툰드라의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며 영구동토 층이 녹았고, 땅 속에 묻혀 있던 순록 사체 속에 잠들어 있던 탄저균이 75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이 일로 12살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또, 순록 2,300마리가 죽었고, 25만 마리가 살처분 당했다.

끔찍한 일이 앞으로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북극의 영구동토층에 녹아내리고 있는 현상, 북극 해안에 유빙이 사라지는 현상을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된다. 툰드라는 우리 인간에서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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