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소문의 여자』, 인간성에 대한 해학설을 그리다

너의길을가라 2013. 9. 1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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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나 그것이 발휘되는 건 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 한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타인을 비난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발동되곤 합니다."


- 오쿠다 히데오, 『소문의 여자』저자의 글 中 - 






오쿠다 월드의 진수가 녹아 있는 통쾌한 범죄 스릴러! 


오쿠다 히데오가 최초로 선보인 범죄 스릴러 소설 『소문의 여자』. 한 여자를 둘러싼 소문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유쾌하게 그려낸 오쿠다 히데오식 범죄 스릴러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위선적인 일상과 미궁의 여자가 일으키는 사건이 펼쳐진다. 10편의 작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편마다 각기 다른 화자의 시각으로 한 여자를 묘사하고 있다. 앞서 나온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에 교묘하게 얽혀 들어가며 여자의 실체를 드러낸다. 


일본의 어느 지방도시. 미유키라는 여자를 둘러싼 은밀한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녀는 불우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용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대학에 들어갈 무렵부터 색기를 발휘해 팜므파탈로 변신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을 유혹하고, 아버지뻘 되는 남자의 후처가 되고, 고급 클럽 인기 마담으로 변신하고, 젊은 주지와 관계를 맺고 신도들을 조종한다. 이처럼 다양한 소문이 퍼지는 가운데 그녀와 관련한 남자들이 몇 년에 걸쳐 연이어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가운데 그녀의 행적은 묘연해지는데….




한창 오쿠다 히데오가 읽히던 시절이 있었죠? 2000년대 중반인가요?『공중그네』가 대히트를 쳤던 무렵으로 기억을 하는데요.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유머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었죠. '괴상한' 정신과 의사가 상당하러 온 사람들을 '괴상한' 방식으로 '치유'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오쿠다 히데오가 '사람'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때 이후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오랜만이었는데요. 아무래도 코믹한 스타일의 소설은 취향이 아니라서 기피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소문의 여자』를 읽게 된 건 아무래도 표지에 끌렸던 것도 있고(제목도 흥미롭고요), 오쿠다 히데오의 글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궁금증도 한몫했습니다.


책 소개는 YES24에서 가져온 내용(노란 박스)이 좋아서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몇 마디만 첨언해 볼까요?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오쿠다 히데오의 말도『소문의 여자』를 읽는 데 큰 도움이 되는데요. 소설 속에는 온갖 군상(딱 좋은 표현이군요)들이 등장해서 '소문의 여자'인 미유키를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소문'을 통해 미유키를 인식하고, 평가하고, 단정짓죠. 언제나 그렇듯 '소문'은 부풀려지고 왜곡된 채 전달됩니다. 또, 그들은 양심과 정의를 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진정 양심과 정의에 부합하는 행동인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말처럼, 우리들이 그토록 찾는 '양심과 정의'라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외치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소설에서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미유키'라는 캐릭터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대사가 있는데요. "여자는 남자를 발판으로 삼지 않으면 위로 올라갈 수 없어." 참 씁쓸하고 꿉꿉한 말이죠? 소설을 읽으면서 마냥 미유키를 탓할 수가 없는 것이 그녀의 말이 현실과 부합하는 측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바람직하고 교육적인 말과는 동떨어진, 파이팅 넘치고 의욕적인 말과는 괴리된 지극히 비정상적인 '현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죠. 미유키가, 『소문의 여자』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그 현실의 단면입니다.


글의 마지막은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의 말로 장식하도록 하겠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부정적으로도 쓰지 않는다는 건 제가 옛날부터 주장해 온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성에 대한 '성선설'도 아니고 '성악설'도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성에 대한 '해학설'이라고나 할까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터지는 그런 모습에야말로 인간의 진실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성에 대한 해학설', 참 멋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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