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드라마 톺아보기 26

'살인자의 쇼핑목록' 마트에서 일하는 이광수가 반갑다

"평일 대낮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으로 동네 슈퍼를 기웃거리는 남자의 뒷모습은 어쩐지 상쾌하지 않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이다." 어라? 이 기시감은 뭘까. 마트 계산대에 우뚝 서 있는 이광수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오히려 친숙하기까지 하다. 이런 걸 두고 '경력직'의 힘이라고 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불과 몇 주 전까지 이광수는 마트 알바였다. tvN 에서 차태현과 조인성을 도와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지 않았던가. 그런 이광수가 예능에 이어 드라마에서도 '마트'를 무대로 삼았다. 지난 27일 첫 방송된 tvN 은 '평범한 동네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마트 사장, 캐셔, 지구대 순경이 영수증을 단서로 추리해나가는 슈퍼마켓 코믹 수사극'이다. 강지영 작가가 쓴 동명의 단편소설을..

'우리들의 블루스' 18세에 임신한 노윤서, 어떤 결정할까?

'노희경 드라마치고는 조금 밋밋하네?' tvN 를 4회까지 시청하면서 (드라마에 대한 만족도와는 별개로)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 억척스러운 은희(이정은)와 돈이 절실한 한수(차승원)의 첫사랑 얘기가 펼쳐지고, 성질 더러운 동석(이병헌)이 버럭 화를 내도 왠지 모르게 '순한 맛'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노희경 드라마'에 대한 일종의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노희경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인간미 가득한 서정적 작품을 써왔다. 착하고 곱다고 할까. 하지만 SBS 를 기점으로 기조가 달라졌다. 파격적인 설정과 실험적인 소재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솔직하고 발칙한 대사들로 시원한 쾌감을 줬다. 매번 고민할 거리를 던져줬다는 점도 노희경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5회를 ..

'우리들의 블루스' 눈물겨운 아빠, 한수의 헌신

전근 준비를 위해 짐을 옮기다가 발가락을 소파에 찧었다. 눈앞이 핑 돌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휘감아 왔다. 새빨간 피가 양말에 스며들었다. 아무래도 발톱이 들린 모양이다. tvN 의 한수(차승원)는 이를 악물고 발톱을 떼어냈다.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발톱이 빠져 드러난 속살을 보며 한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이 전근이지 사실상 좌천이다. 그런데 하필 제주라니! 한수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좋은' 기억이 없었다. 제주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수학여행을 가려면 들깨를 시장에 팔아 돈을 마련해야 했다. 농구가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알아서 꿈을 접어야만 했다. 농구선수? 가난한 집 2남 3녀의 장..

'우리들의 블루스' 노희경이 차승원-이정은을 전면 배치한 까닭

은희(이정은)의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니, 이뤄질 수 없었다. 한수(차승원)는 가정에 충실(!)한 유부남이니까. 고향 제주로 돌아온 한수의 접근은 계획적이었다. 그는 돈이 절실했다. 미국에서 골프를 하고 있는 딸 보람의 유학 비용이 필요했다. 집이 가난해 학창시절 꿈이었던 농구를 포기해야 했던 한수는 자신의 딸만큼은 돈 때문에 꿈을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수는 은행 지점장이지만, 속 빈 강정이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상은 빈털터리다. 서울의 집도 팔았고, 퇴직금도 일부를 받아 썼다. 친구들에게도 손을 벌렸다. 가족들도 외면하는 처지다. 염치도 양심도 버렸다. 제주에 와보니 생선 장사로 성공해 점포 5개와 카페까지 갖고 있는 은희가 눈에 들어왔다. 좋은 타깃이었다. 게다가 한수는 은희의 영원..

명대사 쏟아진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을 추앙하라

채우기보다 비우기가 어렵다. 말이 그러하고, 글도 마찬가지다. 어떤 극본은 '지문'보다 '대사'가 훨씬 많다. 불필요한 대사들이 꽉꽉 들어차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상황까지 일일이, 인물의 입을 통해 설명한다. 표정과 행동으로 충분히 드러날 감정까지 구구절절 말하게 한다. 연출을, 배우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이 앞선다. 결국 자신의 글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백'을 비어진 상태 그대로 두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tvN , 로 필력을 인정받은 박해영 작가는 공백을 겁내지 않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의 극본에는 공들여 새긴 여백이 많다. 이야기를 풀어나감에 있어 조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다. 연출과 배우들은 그 빈칸을 압축적으로 채워나간다. 명대사가 즐비하고, 명연기가 쏟아진다. 드라..

'우리들의 블루스', 노희경이 돌아왔다 (feat. 차승원, 이정은, 이병헌, 한지민, 신민아, 김우빈)

오랜만에 드라마를 챙겨 보게 됐다. 이병헌, 신민아, 차승원, 이정은, 한지민, 김우빈, 엄정화, 김혜자, 고두심 등 출연 배우들의 이름도 '챙겨 봄'의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극본을 쓴 작가의 이름이 결정적이었다. 바로 KBS2 , , SBS , , tvN 를 집필한 '노희경'이다. 노희경의 드라마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노희경의 드라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삶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쓴 드라마 속 인물들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 안에 매몰되지 않고, 다시금 앞으로 걸어 나간다. 고개 숙이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우리는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결국 노희경의 드라마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방치돼 있던 '나'라는 존재가 흠뻑 적셔지는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