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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의 극장

<계춘할망>, 무조건적인 사랑의 위로와 핏줄을 넘어선 공동체의 가치


장르 : 드라마

국가 : 한국 

감독 : 창감독

제작/배급 : 지오엔터테인먼트, 퍼플캣츠필름, 빅스토리픽쳐스/콘텐츠 난다긴다

런닝타임 : 116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줄거리 : 12년만에 잃어버린 손녀를 기적적으로 찾은 해녀 계춘. 손녀 혜지와 예전처럼 단둘이 제주도 집에서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적응해간다. 그러나, 아침부터 밤까지 오로지 손녀 생각만 가득한 계춘과 달리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다 커버린 손녀 혜지. 어딘가 수상한 혜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의심이 커져가는 가운데 혜지는 서울로 미술경연대회를 갔다가 사라진다. 12년만에 혜지가 할망을 찾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할머니와 떨어져있던 시간 동안 혜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계춘할망>은 이른바 '착한 영화'라고 명명되는 영화들의 계보(系譜)를 잇는다. 그 맥(脈)의 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집으로>와 <말아톤>이 2000년대 초중반 개봉돼 흥행적으로 성공을 거뒀다면, 최근에 개봉한 <로봇, 소리>는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안타깝게도 <계춘할망>의 운명은 후자에 속했다. 


계춘을 연기한 윤여정은 개봉 직후 "이번 영화가 손익분기점만 넘었으면 좋겠다. 투자자들이 손해만 보지 않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지만, 순제작지 30억 원의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100만 명)에 한참 못 미치는 47만 5,971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평론가들은 '착한 영화의 한계'를 지적하는 쪽과 '착한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수가 읽히는 낡은 스토리텔링의 한계' 때문이라는 쪽으로 나눴다.


영화의 흥행을 결정하는 요소는 워낙 다양하고, 미묘한 조건들이 결합된 다층적인 양상이라 그 책임을 한 가지 원인에 귀결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MSG를 좀 더 치지 그랬어!'와 같은 타박은 무의미한 뒷북이나 마찬가지다. 상업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고려해서 MSG를 적절히 (잔뜩) 쳤다면, <계춘할망>이 47만 5971명의 관객에게 전달했던 깊은 울림은 없었을지 모른다. 어느 쪽이 나은 결과인지 선뜻 말하기 어렵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네 원대로 살라" (계춘)


<계춘할망>은 손녀를 향한 할머니 '계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치유'와 '성장'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무조건적인 사랑'의 힘을 확인하는 동시에 그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직접적인 경험'을 환기시키는 위로를 얻게 된다. 설령 그와 같은 경험이 없다고 해도 '사랑'이 갖는 보편성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할 것이다.


금지옥엽으로 애지중지하던 손녀 혜지(김고은)를 장터에서 잃어버린 후 계춘 할망의 삶은 단단히 굳어버린 '화석'과도 같았다. 12년 후, (계춘할망의 입장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오게 된 손녀를 다시 품에 안게 된 계춘 할망은 그제서야 활짝 웃는다. 그리고 못다준 사랑을 온전히 내어준다. 12년 동안 떨어져 지냈던 오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적응기'가 펼쳐지면서 영화는 웃음기를 띤다.



하지만 좀처럼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 '날라리'로 살아왔던 세월을 길었기 때문일까. 혜지는 할머니에게 쉽사리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또,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면 그림자보다 빛을 보아야 한다"는 미술 선생 충섭(양익준)의 조언에도 '아직도 빛이 낯설기만 하다'고 답한다. 그의 마음에 드리운 어둠이 너무 큰 탓이다. '날라리'로 살아온 혜지는 친구 민희(박민지)를 미끼 삼아 협박을 하는 철헌(류준열) 때문에 할머니의 통장에 손을 대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는 불량한 모습을 보이고, 수상한 행동을 하는 혜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계춘 할망의 든든한 지원군 석호(김희원)는 이 사실을 계춘 할망에게 전하지만, 혜지를 향한 계춘의 사랑과 믿음은 일고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하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혜지에게 다가가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네 원대로 살라"는 위로와 지지를 건넨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아빠(그녀가 진짜 혜지라면 아빠가 있을 수 없다) 현철(조덕제)는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혜지는 결국 계춘의 곁을 떠난다. 이때부터 영화는 급류의 물살에 휩쓸린다. 쭈뼛쭈뼛했던 혜지의 정체가 의붓자매였던 은주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계춘은 실망을 넘어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계춘 할망>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 영화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함께 '가족 의미'를 되새기게 하기 때문이다.



전근대적인 가족 개념이 '혈연', 이른바 '핏줄'이라고 하는 폐쇄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은 '부대낌'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계춘과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는 석호가 온전히 계춘의 입장에서 그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라. 이것은 '부대낌'이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만들어낸 또 다른 가족의 모습이 아닌가? 제주의 어촌 마을에 형성된 공동체라는 이름의 가족은 '피보다 부대낌이 진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또, 계춘은 자신의 친손녀가 아닌 것이 밝혀진 은주(김고은)를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가 주기로 했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취소하지 않는다. 혜지로 살아야만 했던 은주, 빛이 낯선 그늘 진 아이였던 은주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이유가 없는 그 무한한 사랑을 버팀목 삼아 치유받고 성장한다. 그리고 치매에 걸린 계춘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킨다.



"할망, 바다가 넓어, 하늘이 넓어?"

"바다가 넓지"

"하늘이랑 바다랑 끝까지 가봤어?"

"안 가봐도 알어. 오래 살다가 보면 그냥 저절로 알아지는 게 있어."


중간중간 작위적인 설정과 어색한 연출 등이 노출되긴 하지만, 주름이 깊게 팬 계춘 할망을 연기한 윤여정의 진정성 담긴 연기가 그 허술함을 덮고도 남는다.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순박하게' 다가온다. '도회적인 이미지가 소진됐다'는 도발에 낚여(?) 출연을 결심했다는 윤여정은 그동안 보여줬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놀랍게도 <디어 마이 프렌즈>에선 또 다른 모습을 전혀 위화감 없이 연기하고 있지 않은가?


<계춘할망>은 진실한 사랑이 주는 위로가 어떤 것인지 담백한 어조(결코 과하지 않다)로 전달하고 있다. 하늘을 품고 있는 바다(계춘 할망)의 넓은 사랑이 밀물처럼 와닿는다. 어쩌면 그 '사랑'은 우리의 할머니 세대들만이 가진 특별한 세대적 산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우리들의 과제는 그 사랑을 어떻게 계승하고 체화시켜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주느냐가 아닐까? 그리고 그 '전달'이 '핏줄'에만 국한되지 말아야 한다는 건 계춘 할망이 몸소 보여줬으니 거듭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