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부성애와 동질감이 뻔한 플롯을 덮었다

너의길을가라 2016. 6. 2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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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범죄/드라마

국가 : 한국 

감독 : 권종관

제작/배급 : 콘텐츠케이/NEW

런닝타임 : 120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줄거리 : 한때는 모범 경찰, 지금은 잘 나가는 브로커 ‘필재’(김명민). 끊이지 않는 사건 수임으로 ‘신이 내린 브로커’로 불리는 그와 브로커 모시며 일하는 변호사 ‘판수’(성동일)에게 어느 날, 사형수로부터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세간을 뒤흔든 인천의 재벌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사건’의 범인 ‘순태’(김상호)는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사건 브로커 ‘필재’는 점점 커지는 사건의 배후가 있음을 직감한다. 권력과 돈으로 살인까지 덮어버린 재벌가의 만행을 밝히기 위해 브로커 ‘필재’와 변호사 ‘판수’ 아재콤비가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줄 특.별.수.사를 시작한다!



'<검사외전>이랑 비슷한 거 아냐?', '<베테랑> 아류작 아냐?' 개봉하기 전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가 받았던 가장 많은 오해이자 선입견이었다. '을'이 '(재벌인) 갑'의 부조리를 밝혀내고, 처절하게 응징한다는 권선징악의 평범한 플롯을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상한 이야기 구조에 사람들은 뻔할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저 '명본좌' 김명민의 연기에 기대를 걸어 볼 뿐이었다.


정경유착, 불법세습, 청부살인, 분식회계.. '재벌'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온갖 사회적 문제들은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숱한 '노출'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이 시정(是正)되지 않은 채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아니면 재벌들의 위대함을 역설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시나리오만 해도 다소 무거운 영화였어요. 그런데 많이 덜어내고 일정 사건보다는 풀어가는 과정과 인물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지금의 유쾌하고 사이다같은 영화가 나온 것 같아요. 만족해요." (권종관 감독)


<특별수사>는 전직 경찰 출신의 사무장인 필재(김명민)가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사건'의 범인 순태(김상호)가 보낸 편지 한 통을 받고, 그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신이 내린 브로커'라 불리는 필재가 영화의 중심인데, 김명민은 자신이 출연했던 <조선명탐정> 시리즈에서 그랬던 것처럼 화려한 개인기를 펼친다.


그래서 일까?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언변으로 사람들을 홀리고(설득하고),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상황을 능숙하게 조율하는 필재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익숙하다. 김명민은 '내가 했던 포지션 중 가장 낮은 포지션'이라 설명하지만, 문제는 '포지션'이 아니라 익숙한 패턴과 연기 방식이 아닐까? 이런 구성에선 코믹하게 (더) 망가지는 '보조' 캐릭터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오달수의 바통을 성동일이 이어받은 식이다.



물론 고정적이라 하더라도 특화된 캐릭터를 요령껏 이식하는 것도 배우의 능력이라면 결과물에 따라 박수를 보내도 무방할 텐데,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진 박수 쪽에 가까워 보인다. 오히려 아쉬운 건 김명민과 대척점을 이루는 악역인 재벌가의 여사님(김영애) 캐릭터다. <베타랑>의 유아인이 창조해낸 '조태오'는 악역의 역사를 새로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중들의 기준점을 상당히 높여 놨다.


웬만한 악역 캐릭터와 그 안에 갇힌 연기는 평면적으로 다가온다고 할까? 그래서 '악독함'을 잔뜩 뒤집어 씌웠지만, <특별수사>의 여사님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매력을 잃어버린 뻔한 악역 캐릭터는 그저 권선징악의 소모품에 불과할 뿐이다.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여사님의 포스는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긴장감을 형성시키지도 못한 채 소비된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수사>가 시종일관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한 방(카타르시스)만을 추구하는 속물스러운 영화라는 얘기는 아니다. 세계관이 지나치게 단선적이며, 캐릭터 구성이 손쉽게 이뤄지고, 녹취에 의존한 문제해결 방식이 허술할지언정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부성애'를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과 필재와 동현이 '전과자의 자식'이라는 낙인 속에서 동질감을 이루는 대목은 곱씹을 만 하다.


영화 속에서 순태가 보여주는 절절한 부성애는 관객들을 뭉클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아빠는 오로지 홀로 남겨진 딸 걱정뿐이다. 범죄를 (거짓) 인정하고 모범수로 지낸다면 10년 내에 출소할 수 있었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당당한 아빠'였다. 몸에 문신을 새긴 건달이었던 순태는 딸 동현을 만나면서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을 인정하는 순간 '살인자의 딸'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물려주게 되므로 이를 결사적으로 거부한다.


또, '죽음으로 억울함(결백)을 증명하라'는 교도관 차교위(오민석)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 까닭은 '살아서' 딸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고 싶다는 명예 때문이다. 한편, 차교위가 보이는 폭력적인 태도들은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만약 그도 '전과자의 아들'이라는 설정이었다면 순태를 향한 과도한 적개심이 이해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죄 없으면 지가 알아서 나오겠지, 내가 네 아빠 잡아 넣었냐?" (필재)


속물근성(俗物根性)이 뼛속까지 배어 있고, '사적인 복수'를 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던 필재가 동현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들은 색다를 게 없다. 다만, 그 변화의 원동력이 두 사람의 '동질감'에서 비롯됐다는 측면은 흥미롭다. 필재의 아버지는 범죄자가 됐고, 그런 아버지를 경멸한 필재는 경찰이 된다. 범죄자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건 녹록치 않은 일이다. 벗어던질 수 없는, 삶을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돈'을 추구하고, '성공'만을 찾았을지 모른다. 그런 필재 앞에 '범죄자의 딸'이 된 동현이 나타났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 소녀를 바라보며 필재는 '각성'한다. '범죄자의 자식'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며 격려하는 장면들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섣불리 '연좌제'를 적용하고마는 사회적 편견을 공유하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찌됐든 '카타르시스'로 귀결되는 스토리는 유쾌한 오락 영화를 원하는 관객들을 만족시킬 것이다. 김명민을 비롯해서 김영애, 김상호, 성동일, 김향기 등 주 ·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잘 어우러져서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에 눈살을 찌푸릴 일은 없다. 다만, 그동안 비슷한 플롯의 권선징악형 영화들에 익숙해졌던, 그래서 좀더 수준 높은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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