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손을 맞잡은 여성의 연대, <아가씨>가 보여주는 전복의 쾌감

너의길을가라 2016. 6. 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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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스릴러, 드라마

국가 : 한국 

감독 : 박찬욱

제작/배급 : 모호필름/CJ엔터테인먼트

런닝타임 : 144분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줄거리 :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조진웅)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김민희). 그녀에게 백작이 추천한 새로운 하녀가 찾아온다. 매일 이모부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외로운 아가씨는 순박해 보이는 하녀에게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녀의 정체는 유명한 여도둑의 딸로, 장물아비 손에서 자란 소매치기 고아 소녀 숙희(김태리).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아가씨를 유혹하여 돈을 가로채겠다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제안을 받고 아가씨가 백작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하녀가 된 것. 드디어 백작이 등장하고, 백작과 숙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가씨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는데…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매혹적인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가씨>를 보기 전에 관객들이 버려야 할 두 가지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가씨>를 보기 전 관객들이 버려야할 두 가지가 있다. 내 영화는 잔인할 것이다라는 선입견과 불친절하고 어려울 것이다라는 선입견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경험'에 의한 데이터였지만, 감독의 입장에서는 그런 평가들이 '족쇄'처럼 다가왔던 모양이다.


분명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이 기존에 찍어왔던 영화들과 분명히 구분된다. "내 영화치고는 대사가 많은 편"이라는 박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굉장히 수다스럽다. 그만큼 '친절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쉽다. 분명하고 명확하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다. "이번 영화는 장르적인 면이 강하고 분명히 끝나요. 뭔가 궁금하거나 그런 것이 별로 없죠"


나홍진의 <곡성>이 모호함을 통해 해석의 다양한 접근을 허용하는 전략을 썼다면, 박찬욱 감독은 '명쾌함'을 무기로 꺼내들었다. <곡성>을 대한 관객들은 '모호함'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해석을 검증하기 위해 '재관람'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강요당한 것은 아닐까?)한다. 그렇다면 <아가씨>는 어떨까? 분명한 권선징악과 해피엔딩, 관객들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단언하자면, 그렇다. 이유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박찬욱 특유의 유미주의(唯美主義) 혹은 심미주의(審美主義)는 극상(極上)의 영상미(映像美)를 스크린에 담아냈다. <아가씨>가 취하고 있는 시공간적 배경인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와 '서양식 건물과 일본식, 한국식 건물들이 혼재된 거대한 저택'은 미를 '탐(耽)'하는 박찬욱에게 무한한 예술적 감각을 담아낼 그릇이자 그 자체로 마르지 않는 원천(源泉)이었을 것이다.


<아가씨>가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기술상에 해당하는 '벌칸상'을 수상한 것은 이 영화가 도달한 미(美)의 성취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케 한다. '아가씨'의 숨은 주인공, 미술과 의상(중앙일보)은 <아가씨>를 위해 얼마나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물론 <아가씨>를 '재관람'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아름다움'은 영상과 미장센(mise en scene)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원작인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각색하면서 이야기의 구조와 인물들 간의 관계를 일부 가져왔지만, 이를 1부(숙희의 시선)와 2부(아가씨 히데코의 시선), 3부로(네 주인공의 얽히고설킨 이야기) 구성하면서 종합적인 완성도를 높여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실현한 것은 탁월한 성과다. 2부는 1부를 '전복'시키는 '반복'으로 진행되는데, 다른 시선에 의한 반복을 통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박 감독의 원숙함이 돋보인다.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존재했던 1부의 장면들이 2부를 거치면서 '미완'이 되고, 끝내 더 큰 완성으로 귀결되는 흐름을 경험하는 건 실로 흥미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숙희(김태리)의 시선에서 전개됐던 이야기들이 히데코(김민희)의 시선에서 비춰지면서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각 장면들이 품은 의미와 반복적인 대사의 뉘앙스도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확실히 박찬욱 감독은 '천재적'이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아가씨>가 주는 최고의 쾌감은 폭력적인 남성성의 세계에 갇혀 있던 두 여성(히데코와 숙희)이 그로부터 탈출을 결심하고 들판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이다. '자유'를 향한 몸짓을 지지하게 되면서 관객들도 이 영화의 유쾌함에 온전히 녹아들게 된다. 남성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안된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서로의 몸을 만지는 장면은 또 어떤가. 그들에겐 더 이상 '계급'의 서열조차 중요하지 않다. 전복은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다.


파격적인 레즈비언 섹스 장면에 눈살을 찌푸리는 관객도 있겠지만,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 의식과 결이 다른 친밀한 감정의 교류가 역력히 느껴진다. 게다가 행위 과정에서 히데코와 숙희가 두 손을 맞잡는 장면(배를 타고 도망치는 장면에서도 (깍지) 손을 잡는 장면이 나온다)은 '여성의 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해어화>에서 소율과 연희가 반목하며 끝내 맞잡은 손을 놓아버리는 아쉬움을 <아가씨>를 통해 깨끗이 해소했다.



박찬욱 감독은 여러가지 설정을 통해 남자들의 세계를 철저히 비웃고 조롱한다. '신사(紳士)'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성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그들은 음란 서적과 '춘화'를 탐닉하고 변태적인 성욕에 빠져있다. 고상한 취미처럼 여겨졌던 '낭독'은 히데코의 후견인이자 이모부인 코우즈키(조진웅)과 저 신사들의 변태성을 드러내고야 만다. 아, 신사의 뜻은 '품행과 예의가 바르며 점잖고 교양이 있는 남자'이다.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 의식은 '낭동'뿐만 아니라 백작(하정우)가 히데코를 겁탈하면서 "여자는 강제로 하는 관계에 극도의 쾌락을 느낀다'는 말을 하는 장면에서 또 한번 드러난다. 나중에 히데코가 백작에게 "현실세계의 여자는 강제로 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라고 되받아치는 장면이라든지 (남성들의) 왜곡된 성 의식의 공간이었던 지하실을 가득 채운 서책들을 시원하게 찢어발기는 장면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물론 '여성의 시각'에서 봤을 때, '남성'인 박찬욱 감독이 그린 '그녀들의 탈주'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여전히 남성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비평할지도 모르겠다. 남성중심적으로 구조화된 세계 속에서 살아온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시도들이 '균열'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7월 3일까지 <아가씨>는 4,215,248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박찬욱 감독은 기존 작품에서 '예술성'을 지나치게 추구한 탓에 '흥행성'을 놓쳐버렸던 안타까움을 <아가씨>를 통해 어느 정도는 해소했다. 유약함과 영악함을 동시에 지닌 히데코 역을 연기한 김민희는 연기의 전성기를 갱신했고, 김태리는 신인답지 않은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줬다. 그가 가진 다양한 얼굴들은 앞으로 배우로서 롱런할 것임을 예상케 했다. 


하정우는 사기꾼인 백작 역을 맡아 노련한 줄타기에 성공하고, 조진웅과 김해숙과 문소리도 적은 분량임에도 영화 속에서 강렬한 인상을 담기는 데 성공한다. 연출과 시나리오, 연기 3박자가 잘 갖춰진 <아가씨>가 <곡성>의 바통을 이어받아 2016년 한국영화 최고의 '문제작'이 되길 바란다. 더 많은 관객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 더 많은 '논의'를 이끌어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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