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경찰을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경찰은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존재다.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어디서나 경찰을 만날 수 있고, 드라마와 영화에서 경찰이 등장하는 않는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적어도 낯설진 않다. 그리고 경찰은 굉장히 만만한 존재다. 재빠르기보다 굼뜨고, 전문적이기보다 무능하고, 자신의 일에 투철하기보다 비리나 일삼은 존재, 미디어는 경찰을 그렇게 소비해 왔다.  


tvN <라이브>는 달랐다. 노희경이라서 달랐다고 해야 할까. 전국에서 가장 바쁜 '홍일지구대'를 배경으로 일선 경찰들의 삶에 천착했다. 드라마는 경찰을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수뇌부와 현장을 직접 뛰는 비수뇌부로 구분한다. 그리고 비판의 화살을 전자로 향하고, 따뜻한 시선을 후자로 향한다. 방송을 통해 확인했듯이 일선 경찰들의 고뇌와 노고, 그 고통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었다.


Code 0와 Code 1(신고자의 생명, 신체에 위험이 현저한 경우)가 쉬지 않고 터지는 곳.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 사건이 밥먹듯이 발생하는 곳. 홍일지구대는 그런 현장이었다. 언제 칼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위험은 상존했고, 경찰들은 그 위태로움 속에 노출돼 있었다. 누구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다. 그곳은 사선(死線)이었다. 그럼에도 오양촌(배성우)을 비롯한 수많은 경찰들은 군소리 없이 뛰고 또 뛰었다. 사명감 하나로. 



"저는 오늘 경찰로서 목숨처럼 여겼던 사명감을 잃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후배들에게 어떤 순간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라. 경찰의 사명감을 가져라. 어떤 순간도 경찰 본인의 안위보다 시민을 국민을 보호해라. 그게 경찰의 본분이고 사명감이다. 수없이 강조하고 말해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했던 모든 순간들을 후회합니다. 피해자건 동료건 살리지 말고 도망가라. 네 가족 생각해서 결코 나대지 마라. 네 인생은 국가 · 조직 · 동료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우리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현장의 욕받이다. 현장은 사선이니 모두 편한 일자리로 도망가라. 그렇게 가르치지 못한 걸 후회하고 후회합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감히 현장에서 25년 넘게 사명감 하나로 악착같이 버텨온 나를 이렇게 하찮고 비겁하고 비참하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감히 내 사명감을 가져갔습니까."


사명감을 잃어버린, 아니 빼앗겨 버린 오양촌은 눈물을 흘리며 '누가 감히 내 사명감을 가져갔냐'고 따져 묻는다. 사수를 구하기 위해 범죄자에게 총기를 사용했던 염상수(이광수)를 징계하기에 혈안이 된 경찰 수뇌부를 향한 울분이었다. 자신의 몸이 다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현장을 사랑하고 범죄자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젊은 경찰관이 '나쁜 경찰관'으로 전락하게 됐다. 


이 참담한 상황을 주도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국가와 조직이었다. 진이 빠질 때까지 부려먹기만 할 뿐, 중요한 순간에선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외면한다. 지켜주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한데, 과연 일선의 경찰들이 무슨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네 인생은 국가 · 조직 · 동료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오양촌의 말이 현실을 대변한다. <라이브>의 핵심적 메시지이자, 노희경이 확인한 경찰 밑바닥의 정서랄까.


'그들의 사명감을 지켜주자.'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원론적인 말이다. 현실적인 대책들이 필요하다. 먼저 살펴 볼 통계가 있다. 경찰 1인당 치안 서비스 대상 인구인데, 대한민국의 경우 약 450명 수준이다. 미국(354명), 프랑스(300명)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인력 부족은 업무 과중은 야기하고, 그 몫은 오로지 현장 경찰관들에게 전가된다. 업무 강도는 높고, 노동 시간은 길다. 한마디로 열악하다.



위험한 현장에 언제 출동해야 할지 모르는 경찰관들은 항상 긴장 상태에 놓여있다. 4일에 한번 밤을 새야 하는 불규칙적인 시스템은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수면 장애와 만성 피로는 현장 경찰관들의 숙명과 마찬가지다. 한양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교실 김인아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급성심근경색 발병률의 경우 경찰이 일반 공무원보다 1.84배 높다고 한다. 협심증(1.52배), 뇌혈관질환(1.36배)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복무 중 사망한 결찰관 438명 중 286명(65.2%)가 질병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 기간동안 순직으로 인정된 경찰관은 79명(18%)에 불과했다. 야간 근무 중 파출소 숙직실에서 숨진 경찰관도 순직처리가 되지 않았다. 공무집행방해 사건을 처리한 뒤 대기근무 20분 만에 숨졌지만, 공무 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며 순직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사례다.


이것이 일선 경찰관들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오양촌과 염상수는 지구대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빌어먹을 사명감 때문일 게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지키자는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일 게다.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앞서 경찰 1인당 치안 서비스 대상 인구를 언급했지만, 그 역시 평균값일 뿐이다. 홍일지구대처럼 신고가 빗발치고, 강력 사건이 넘쳐나는 곳이 현실에 존재한다. 반면, 하루에 신고가 몇 건 들어오지 않는 곳도 있다.



"24시간 불철주야 주민의 민생치안을 담당하는 일선 경찰서의 처우개선을 위해 특수직근무수당으로 야간출동수당을 신설했는데, 지급액도 크지 않아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오히려 야간출동건수가 많은 지역에서 더 적게 지급받고 있어 지역별로 형평을 맞춰 개선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


이렇게 생각하면 접근하기 쉬울지 모르겠다. MBC every1 <시골경찰>의 신현준도, tvN <라이브>의 오양촌도 경찰이다. 하지만 그들이 연기하는 경찰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전자의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어르신들을 문안순찰하는 것 정도가 주요 업무다. 물론 그러한 업무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다만, 바쁘고 힘든 곳에 일하는 경찰들에게 무언가 혜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경찰이 꺼내든 카드는 '출동 수당'이지만, 한 건에 3,000원에 불과한 수당은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마저도 너무 많이 지급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몇 만원을 더 벌고 건강을 잃으니 차라리 한적한 곳에 가고자 하는 게 당연한 심리 아니겠는가. 승진 등에 있어서도 지역 경찰이 찬밥 신세라고 현직의 경찰관들은 푸념한다. 일선에서 묵묵히 일하는 경찰들을 위해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사명감 하나로 퉁치려 하는가.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