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려는 마음을 사명감(使命感)이라 한다. 뜻은 간단하고, 쉬워 보인다. 그 정도의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으니까. 그런데 현실에서 그 말은 좀더 신성하게 들린다. 자신의 일을 천직(天職)으로 받아들이고, 그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 쯤으로 여겨진다. '너희는 사명감이 없어!, '사명감을 좀 가져!'라는 호통에 우리가 매번 쪼그라드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사명감이 필요없는 직업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경찰(또는 소방관)처럼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직종에서 사명감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사명감이 없는 경찰은 시민의 입장에서 불안하다. 그래서 tvN <라이브>의 오양촌(배성우)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명감을 강조하다. 그가 잠시동안 경찰학교 교수로 부임했을 때, 경찰 교육생을 얼마나 쪼아댔던가. "사명감은 어디있어! 집에 놔두고 왔나?"



정말이지 오양촌은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경찰이다. 조직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불합리한 징계를 받게 된 안장미(배종옥)가 "경찰의 적은 골치 아픈 민원인이 아니라 우리를 이용해 먹고 버리는 국가다. 그 말이 이해가 가."라며 오양촌에게 "자긴 경찰된 거 후회한 적 없어?"라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없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직접 사람 구하는 직업이 경찰, 소방관 말고 몇이나 되니?" 역시 (단순한) 오양촌답다. 


당연하겠지만 모든 경찰관이 오양촌은 아니다. 한정오(정유미)처럼 여러가지 이유로 취업 전선에서 고배를 마시고, 지하철에 붙은 경찰 모집 공고문에 이끌려 경찰이 된 케이스도 있다. 드라마에서 다뤄지진 않았지만, MB정부 시절 공무원 시험 과목이 통합되면서 타직렬(가령 행정직)에서 월담한 경우도 상당수 있다. 누군가에겐 천직인 그 일이, 누군가에게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일일 수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사명감 없는 경찰이다. 단지 먹고 살려고 경찰이 됐고, 그게 별로 부끄럽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죽자 살자 뛰고 있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인데, 내일이면 또 다른 사건에 묻힐 일이 뻔한데, 현장의 우리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건 거대한 조직이 아닌 초라한 우리들뿐인 걸. 그래도 나는 아이가 살았으면 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먹고 살 일이 있다면 그만두고 싶은 현장이지만, 별다른 사명감도 없지만, 우리가, 내가 이 아이를 만난 이상 제발 이 아이가 살았으면."


유기된 아기를 발견하고, 싸늘해진 그 아기를 살리기 위해 미친듯이 뛰던 한정오는 스스로에게 고백한다. 자신은 사명감 없는 경찰이라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죽자 살자 뛰고 있나.' 매일같이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어김없이 어제의 사건은 오늘의 사건에 묻히고 말 텐데. 그래서 우리의 노고는 먼지처럼 사라지고 말 텐데. 그걸 알아주는 건 초라한 우리들뿐인데.


수뇌부로부터 불합리한 징계를 받아도, 독직폭행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써도, 범죄자가 쏜 총에 동료 경찰이 맞아 죽어도, 멈춰서서 한숨을 돌릴 여유조차 없다. 지구대의 시간은 흘러가고, 경찰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순간에도 신고는 쏟아진다. 지령을 받으면 출동해야 하고, 끔찍한 현장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 두려운 현장과 맞서 싸워야 한다. 사선(死線)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한정오는 동료들과 함께 심폐소생술(CPR)을 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지금이라도 다른 먹고 살 수단이 있다면 현장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래서 국비 유학생을 신청한 자신이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아이를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인다. '우리가, 내가 이 아이를 만난 이상 제발 이 아이가 살았으면.' 여기에 답이 숨어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사명감이라는 게 대단한 무언가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양촌이라고 흔들림이 없었을까. 수많은 좌절과 회의(懷疑) 속에서도 눈앞에 맞닥뜨린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굉장히 멀게만 느껴지는 사명감이라는 녀석의 실체이다. 한정오와 마찬가지로 사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경찰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하고 있음을 <라이브>는 이야기하고 있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보자. 합리적인 대답이 도출되리라 믿는다. 이효리가 이사를 갔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꼭 알려져야 하는 사실일까? 이효리가 '소길댁'인지 '선흘댁'인지를 파헤쳐서 알리는 게 공익적인 가치가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 매체 더팩트는 '[FACT체크] 관광객 방문 불편호소 '소길댁' 이효리, 이사했나?'라는 기사를 통해 이효리의 사생활을 들쑤셔 놓았다. 


√FACT 체크1=이효리, 이제 '소길댁' 아닌 '선흘댁?

√FACT 체크2=소길리 주민들 "며칠 전에도 봤는걸요"

√FACT 체크3=소길리 주택 등기부상 여전히 거주? 


더팩트는 "2년 전 이효리가 소길리를 떠났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고, "제주도에 있는 다른 마을로 이사했다", "주택 매각 얘기가 나"왔다며 포문을 열었다. "몇 차례 이사설이 나돌았"으나 명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절하게도 더팩트가 현지 취재를 통해 '이효리 둥지 이전설'을 밝혀냈다고 으쓱해 한다. 참 대단한 특종이다. 


팩트를 체크한다는 명목하에 더팩트는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선흘1리에서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마을 주민 J모씨'를 만나 이효리가 이곳으로 이사를 왔냐고 묻고, 다시 소길리 마을회관 앞에서 동네주민 K씨(여)를 만나 이효리가 이사를 갔냐고 묻는다. 더 나아가 등기부 등본까지 확인해 소길리 주택의 소유권까지 확인한다. 참 대단한 열의다. 




그래도 만족을 못했는지 '이효리 측에 몇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고, <효리네민박>을 제작한 담당 PD에게까지 질문을 한다. "꼭 그렇게 했어야 속이 후련했냐?"라고 묻고 싶다. 심지어 더팩트는 기사의 서두에서 '관광객들의 무단 방문으로 불편함을 호소했던 소길댁 이효리'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그래?"라고 따지고 싶다. 


언론(혹은 기자)의 가장 훌륭한 방패는 '대중(大衆)'일 것이다. 대중의 관심사다. 시청자가 원한다. 독자가 궁금해 한다. 그래서 언론으로서 취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거기에 언론의 자유까지 더해지면 제어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시민의 알 권리(right of know)를 충족시켜주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주요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의 자유란 권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지 연예인의 사생활을 캐는 데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니다. 시민의 알 권리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의 눈이 미치지 못하고, 손이 닿지 않는 국가 · 사회 · 기업 등의 비밀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언어이지, 연예인의 이사 여부를 캐고자 하는 언론사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다.



당사자가 스스로 밝히지 않은 사실, 무엇보다 가장 사적인 내용을 굳이 팩트체크라는 미명하에 보도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그 대상이 연예인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25일 더팩트의 보도가 나간 후, 헤럴드경제와 이투데이가 받아쓰기에 들어갔다. 앞으로 더 많은 (유사)언론들이 이와 같은 행태를 반복할 것이다. 사생활 침해로 고통받았던 이효리는 또 다른 사생활 침해의 피해자가 됐다.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언론들의 무분별한 연예인 파헤치기에 대해 "연예계 소식 역시 대중의 관심사라는 측면에서 알권리에 해당함은 분명하나, 이 역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더팩트의 보도는 분명 선을 넘었다. '시민의 알 권리'가 아니라 '(인터넷 기사의) 클릭 수'에 봉사한다'는 조롱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앨리스라는 이름의 소녀가 흰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아내라 불리기 시작한 여성이 남편의 손에 이끌려 '시댁'으로 간다. 그리고 아주 이상한 나라를 만난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곳, 적어도 나는 아닐 거라 여겼던 곳, '세상에 이런 일이!'라 저절로 외치게 되는 곳. 정신을 차려보니 그 미지의 세계에 와 있다. 이제 그 여성의 이름은 '며느리'다. 참 괴상한 이름이다. 


그곳은 오로지 며느리에게만 이상한 나라였다. 그 낯선 공간에서 며느리는 가족도 아니었고, 손님도 아니었다. 며느리(=아들의 아내)라는 매우 난해한,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일 뿐이었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현 시대의 가정의 모습을 며느리의 시선에서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그 시선으로 바라본 가정과 시댁의 풍경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자기는 우리 집에 갈 때 진짜 편안하게 트레이닝 복 입고 가잖아. 우리 엄마 아빠가 밥 먹으러 오라고 하면 자기는 여름에 맨발에 슬리퍼 신고, 반바지 입고, 야구모자 눌러쓰고 가잖아. 우리 집 갈 때. 근데 왜 나는 자기 부모님 집 갈 때마다 뭘 입어야 할지 신경이 쓰이고, 새벽부터 나와가지고 샵에서 변신을 하고 가야 하는지 모르겠네."


민지영은 시댁 갈 때마다 전전긍긍해야 했다. 전날부터 무슨 옷을 입을지, 어떤 머리를 해야 할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남편은 "다음부터는 슬리퍼 신고 와", "다 마음에 달린 거야."라며 철없는 소리나 늘어 놓는다. 한숨밖에 안 나온다. 친정은 잠깐 들리기도 빠듯하다. 발길이 무거웠다. 시댁에 가서 고생할 딸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떠올리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아니나 다를까.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에 직행해야 했다. 시댁 어르신들을 맞아야 하니 옷도 제대로 갈아입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처음 온 날은 이렇게 안 해도 되는 거야,"라고 만류했지만, 이내 "그럼 앞치마 줄까?"라며 본격적으로 업무 분담을 시킨다. 주방의 분위기와 거실의 분위기는 완전 딴판이었다. '여자들은 왜 시댁에만 가면 부엌에서 벗어나질 못할까?', '왜 음식의 간은 남자들의 입맛에 맞춰야 할까?' 질문이 쌓인다.



"비교하면 안 되지만, 친정 식구들은 지우 재운다고 하면 숨도 안 쉬어. 숨도 안 쉬어. 친정 감녀 지우 다 케어해주거든. 항상 '너 밥 먹어. 엄마 이따가 천천히 먹을 테니까 너 밥 먹어."


그나마 민지영의 경우는 가장 원만한 편에 속했다. 박세미의 이상한 나라는 경악스러웠다. 명절을 맞아 만삭의 몸으로 홀로 시댁으로 가야했던 박세미는 식모에 가까웠다. 그 누구도 박세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그 어떤 배려도 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부엌에서 전을 부쳐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밤이 깊어 아이를 재우려고 했지만, 시댁 식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결국 박세미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뒤늦게 도착한 남편은 눈치가 없었다. 홀로 힘들었을 아내의 상황을 파악하기보다 술을 꺼내놓으며 시댁 식구들과 놀 궁리만 했다. 더욱 경악스러웠던 건, 며느리에게 자연분만을 강요하는 시아버지였다. 그는 산모의 건강과 안위를 걱정하기보다 손주의 아이큐를 먼저 챙겼다. 며느리를 출산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발상이었다. 서운함이 밀려온 박세미는 또 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머니가 그냥 일방적이시잖아. 말을 전혀 안 들으시니까, 정말 분출을 못하는 최고점이 있단 말이야. 그런 부분들 그때였던 것 같아. 어쨌든 나도 너무 속상하고 힘들고 그 순간에.. (눈물) 오빠마저 외면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그 순간 너무 괘씸하다? 나쁘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 때가 있지."


김단빈은 워킹맘이다. 육아뿐 아니라 시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홀 서빙과 계산을 맡아 일한다. 또, 인터넷으로 개인 사업까지 하고 있다.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하다. 시어머니는 아침부터 전화를 쉴 새 없이 하며 며느리를 재촉한다. 겨우겨우 일을 마무리 짓고 식당에 나가면 그때부터 잔소리 폭격이 이어진다. 시어머니는 식당 일부터 육아 문제까지 개입하고, 그와 같은 압박은 며느리를 숨막히게 만든다. 


손목이 아파 깁스를 하고 있지만 쉴 틈이 없다. 병원 갈 시간조차 없을 정도다. 시어머니는 "(병원은) 새벽에 가 봐라"라며 속을 긁는다. 간신히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았지만, 의사는 팔을 계속 쓰면 더 악화된다고 우려한다. 시어머니는 손주들의 옷과 문화센터 강좌를 알아보고, 자신의 취향을 며느리와 손주들에게 계속 강요하다. 김단빈은 속이 타들어간다. 그런데 남편은 뒷짐만 지고 있다. 남편은 어김없이 남(의) 편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제작진은 "단순히 누굴 욕하기 위함이거나 그 집의 변화만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다. 프로그램을 보고 시청자의 집이 변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단순히 한 개인, 한 집안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래 기간동안 암묵적으로 내려온 사회문화적인 문제일 것이다. 심각한 사안도 눈에 띄지만, 프로그램 속의 며느리가 겪게 되는 일상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리라.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인 것 같지만, 결코 둘 만의 문제가 아니다. 둘이 맞물려 있는 것도 있지만,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이 너무 수동적으로 빠져 있기 때문에 고부 갈등으로 표출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여러가지 문제가 그 현상으로 드러나는 건데, 자꾸만 둘의 싸움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김지윤 소장)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소극적인 남편 김재욱에게 욕을 쏟아붓거나, 시어머니들의 과도한 참견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으로 해결되는 건 없다. 또, 대부분의 고민 상담 프로그램처럼 '서로 조금씩 양보하세요' 정도의 결말로 몰고 가는 건 하나마나한 일일 뿐이다. '나도 며느리고, 너도 며느리인데', '내 딸도 시댁에 가면 며느린데' 같은 역지사지로 풀어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훨씬 더 뿌리깊고, 근원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자 MC들이 허튼소리를 하는 와중에 '좋은연애연구소' 김지윤 소장의 진단과 솔루션은 가뭄의 단비처럼 시원하다. 김 소장은 며느리의 시선에서 발견된 수많은 문제들을 가족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남자들이 스스로를 '중간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정의 일원이자 주체로서 남자들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이상한 나라가 오직 시댁뿐이겠는가. 여성에게 세상은 애초부터 이상한 나라였다. 가사 노동과 육아를 도맡아야 하고, 거기에 직장에서도 과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조금이라도 몸을 사리면 '여자라서 그렇다'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뿐인가. 시댁에 가면 '며느리'가 돼야 한다. 이처럼 여성들은 그들을 슈퍼우먼이 되길 강요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경쟁력 있는 시청률(1회 4.6%, 2회 4.3%)과 높은 화제성으로 정규편성에 성공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문제제기가 훨씬 더 치열한 고민을 이끌어내길 기대한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tvN <라이브>(연출 김규태, 극본 노희경)가 제대로 탄력을 받았다. 시청률은 착실하게 상승 곡선(1회 4.337%, 13회 7.058%)을 타고 있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호평일색이다. 연출, 극본, 배우들의 연기까지 드라마의 성공을 위한 삼박자가 제대로 갖춰졌고, '경찰'을 소재로 한 이야기의 몰입도 역시 훌륭하다. 신뢰의 이름, 노희경 작가는 시청자들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다. <라이브>는 분명 웰메이드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브>에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6년 이화여대 시위를 묘사하며, 이를 진압하는 장면(2회)은 논란을 일으켰다. 드라마는 경찰 교육생 신분이던 한정오(정유미), 염상수(이광수)의 시선을 견지했고, 시청자들은 '경찰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당시 경찰 1,600명이 투입된 진압 현장은 아비규환이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학생들은 심리치료를 받는 등 당시의 괴로움 속에 살고 있기에 논란은 커졌다. 



"힘들었던 현장에 대한 기억이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분들이 당시 상황이 연상되는 장면으로 인해 다시금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노희경 작가, 김규태 감독, 그리고 제작진 일동이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경찰을 미화하려는 게 아니라) 수뇌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는 제작진의 해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연출에 있어 세심함과 배려가 부족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라이브> 제작진은 곧바로 사과에 나섰다. 제작진의 진심이 담긴, 재빠른 사과로 <라이브>는 초반의 악재를 털어낼 수 있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전해 받은 시청자들은 그제서야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는 <라이브>, 그 상승세의 비결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노희경의 힘'일 것이다.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경찰'이라는 직업은 노출이 될 대로 노출됐다.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는 이야기다.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제대로, 깊숙이 다룬 작품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어렵다. 


많이 엉성했고, 혹은 많이 부풀려졌다. 그나마 진지했던 작품들도 직업적 특성, 그 일부분만 강조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 속에 경찰은 '무능력하다', '우스꽝스럽다'에 가까웠고, 가끔 '멋지다'는 감상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디테일'이다. <라이브>는 경찰 조직의 생리, 지구대 시스템, 사건 처리 및 수사 과정 등이 상당히 현실적으로 그려졌다고 평가받는다. 



일부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현직 경찰관들도 큰 불만 없이 시청하고 있다니 디테일의 견고함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노희경은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끄집어 냈다. 비록 경찰이 특수한 직업이라지만,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시민이라는 걸 이해시켰다. 그들도 중년의 고독을 겪으며, 청춘의 비애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공감의 여지가 생겨났고, 몰입의 강도는 더욱 커졌다. 


거기에 더해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과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들, 세대를 관통하는 묵직한 화두들은 <라이브>의 백미다. 홍일 지구대장 기한솔(성동일)을 비롯해 은경모 팀장(장현성), 퇴직을 앞둔 이삼보 주임(이얼), 완벽에 가까운 최명호 경장(신동욱) 등은 단지 주인공의 주변인물이 아니라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진 의미있는 조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실상 주조연을 가리는 게 큰 의미가 없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강력계의 레전드이자 사이코 오양촌(배성우), 여성청소년과 수사팀장 안장미(배종옥)가 그려내고 있는 중년 부부의 갈등과 사랑이라든지, 양촌부(이순재)와 오양촌의 부자 관계는 드라마에 묵직한 울림을 더한다. 특히 오랜기간 병상에 누워있던 모친의 존엄사(연명치료 중단)를 받아들이는 장면은 눈물샘을 자극했는데, 세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한정오(정유미), 염상수(이광수)가 중심이 된 청춘들의 삶은 <라이브>의 중심 이야기인데, 이들이 자신의 삶에 부과된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들은 같은 고통을 짊어진 세대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서로를 못마땅해 하며 반목했던 이삼보 주임과 부사수 송혜리(이주영)가 점차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노희경은 이를 통해 세대 간의 소통과 교감을 보여주고 있다. 


또, 노희경은 드라마의 소재로 삼은 경찰(의 권한과 역할)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데, 경찰의 입을 빌려 여성을 겨냥한 범죄들에 대해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속시원히 쏟아내고 있다. "그 어떤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범인의 잘못이"라는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따뜻한 위로, "네 허락없이 네 몸에 손대는 거 정당화 될 수 없어. 이해받을 수도 없고. 그건 범죄."라는 데이트 폭력의 가피해자들에 대한 따끔한 일침은 최고의 장면들이었다.



전작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희경은 <라이브>에서도 '결핍'을 통해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딘가 부족하고, 약점이 있기 때문일까. 노희경의 드라마 속 인물들에선 '사람냄새'가 난다. 그 냄새가 가만히, 어느새 스며든다. 그가 만들어낸 세상 속의 사람들은 미성숙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의 모습이기에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또,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로부터 한걸음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힘을 얻게 된다. 


유대와 연대는 노희경의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다. 결국 사람은 부대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에 경찰은 가장 적절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장 없는 드라마, 자극적인 소재 없는 드라마, 노희경은 매번 성공했다. 가능성은 낮겠지만, <라이브>가 시즌제로 제작되는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분명, 한정오는 안장미처럼 훌륭한 경찰관이 될 것이다. 또, 염상수도 오양촌을 뛰어넘는 레전드(이자 또라이)가 될지도 모른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하여간 대한민국 여편네들 큰일이야. 남편은 밖에서 7천원짜리 밥 사먹으면서 하루 종일 일하는데, 집에서 펑펑 놀고 먹으면서 이런 데서 칼질이나 하고. 진짜 말세다. 말세야." 


한숨부터 나온다. 가사 노동을 하찮은 것인마냥 생각하게 만드는 성차별적 언어다. 명백한 여성 혐오다. 그런데 이 참담한 문장이 지상파 드라마의 대사라는 게 믿겨 지는가. 벌써부터 놀라면 곤란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어디서 여자가 술 먹고 들어와서 고성방가야!" 술 먹고 귀가해 소리를 지르는 건 꼴보기 싫은 일이고,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어디서 여자가'라는 단서를 붙일 이유가 있었을까?



"대를 못 이으니 이혼시켜야겠어요." SBS <아임 쏘리 강남구> 

"안주인 되려면 식구들 끼니는 챙겨야지. 못하면 배워. 분만 뽀얗게 바르고 입술만 빨갛게 칠하고 있으면 되는 줄 아니" MBC <당신은 너무합니다>

"야, 남자가 깎으면 당도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연구결과 모르냐?" tvN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돈을 만나 이혼을 종용한다. 여성을 오직 출산의 수단으로 여기는 성차별 사례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예비 며느리에게 가사 노동을 강요하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한다. 남자가 과일을 깎으면 당도가 줄어든다는 말은 '과일을 깎는 건 여성의 몫'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드러내고 조장한다.


위의 어처구니 없는 대사와 장면들은 2017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5월 1~7일까지 지상파 3사와 종편 1사, 케이블 1사의 시청률 상위 프로그램 22편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니터링 결과다.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달았고, 그 변화의 물결은 미투 운동으로 이어졌다.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 그 근간을 뒤흔든 미투 운동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조금이나마 나아졌을까? 당연히 그랬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딱히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지난 3월 1일부터 7일까지 지상파 3사를 비롯해 JTBC, TV조선, MBN, tvN 등 총 33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성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는 장면이 무려 56건이나 발견됐다. 



"가족의 아침을 여는 것은 엄마들의 몫" TV조선 <사랑은 아무나 하나>

"여자 3명 이상 모인 브런치 모임을 단속해야 해요" MBN <속풀이쇼 동치미>

"진짜 예쁜 관객들이 많이 왔으면 많이 웃겨 줘야지" tvN <코미디빅리그>

"아빠가 그랬잖아. 엄마 성격은 못 고친다, 내 돈으로 얼굴을 고치더라. 실리콘 3봉지는 들어갔을 거야 KBS2 개그콘서트>


그래도 위의 사례들은 듣는 즉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경우들에 해당한다. 눈살이 찌푸려지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명확히 지적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직감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일부(라고 믿고 싶은지 모르겠지만)의 사람들은 '저 정도 가지고 왜 그러냐'며 너무 예민하게 살지 말라고 말하거나, 이런 지적을 하는 이들을 '프로불편러'로 규정해 조롱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틀렸다'는 확실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TV 속 내용들을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는 수준까지 성숙됐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TV는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차별적인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전히 매우, 지독히 남성중심적이다. 



KBS2 <라디오 로맨스>에서 톱스타 지수호(윤두준)가 막내 작가인 송그림(김소현)을 어깨에 들쳐 매고 걸어가 차에 태운다. 데려다 준다는 남성의 제안을 거절하자 돌발적인 행동을 취한 것이다. 납치라고 할 수 있는 폭력적 행동이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남자의 사랑으로 묘사된다. SBS <리턴>에서 강인호(박기웅)은 불륜의 대상인 염미정에게 "넌 변기야, 내가 싸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싸는 변기"라고 소리친다. 경악스러운 장면이었다. 


로빈 월쇼는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에서 "대중문화는 남성의 공격성과 위력, 성을 혼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확실히 우리의 대중문화는 거기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더욱 위험한 건, 위의 사례들과 달리 교묘하게 성차별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일지 모른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전혀 깨닫지 못한 채 흘러넘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윤진아(손예진)와 서준희(정해인)의 달달한 연애를 보여준다. 연상의 여성과 연하의 남성이 그려가는 비밀연애가 설렘을 증폭시키고, 역경을 마주한 두 남녀의 진정한 사랑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윤진아와 서준희의 관계는 기존의 익숙한 젠더구도를 답습한다. 윤진아의 전 남친의 거듭된 젠더 폭력을 서준희가 '짠' 하고 나타나 해결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 사적 관계의 남성이며, 여성을 두고 남자들끼리 힘겨루기를 하는 가부장적 구도가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드라마는 윤진아를 남성의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그려 나가는 데 주력한다. 따라서 '애교', '순진성' 등이 강조된다. 여전히 남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 그것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보여주는 여성의 모습이다. 



tvN <나의 아저씨>는 어떠한가. 이지안(아이유)은 자신을 향해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하는 이광일(장기용)에게 "너 나 좋아하지?"라고 묻더니, 이번에는 박동훈(이선균)에게 "내 뒤통수 한 대만 때려줄래요?"라고 요구한다. 당황해 하는 박동훈에게 "그러니까 한 대만 때려달라고. 끝내게. 왜, 내가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좋아하나?"라고 소리친다. 끝내 뒤통수를 얻어맞고 길 위에 쓰러진다.


혹자들은 "극의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긴 호흡으로 봐달라"고 애원한다. 그것이 캐릭터와 스토리 전개를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설정이라 하더라도, 폭력에 지나치게 둔감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가 매번 폭력에 쉽사리 노출되고, 심지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폭력을 선택하는 듯한 연출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누가 봐도 명백히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장면들을 걸러내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웰메이드라는 타이틀 아래, 영리하게 감춰져 있는 문제들을 지적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간과하기 쉽다. 모른 척 하기 쉽다. 우리는 좀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좀더 고민하고, 좀더 지적해야 한다. 설령 그리하여 '프로불편러'라고 불리더라 할지라도 말이다. TV 속 여성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세상 속 여성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서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는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소확행(小確幸)은 무엇입니까?'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小) 확실하게(確) 실현 가능한 행복(幸).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 <소확행>에서 시작된 질문이었다. 피실험자 B, 소지섭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미션이든 간에 손쉽게 뚝딱뚝딱 해내던 그가 멈춰섰다. "여태까지의 미션 중에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그는 자세를 바꿔가며 한참을 고민했다. 


진지한 성격 탓이었을까. 작게 생각을 하지 못하는 성향 탓이었을까. 소지섭은 계속 머뭇거렸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소지섭이 스스로 찾아낸 답이기도 했다. 그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그렇게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또, '나에게 이런 행복이 괜찮은지 매번 되뇌는 사람'이었다. 물론 불행하다고 느끼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은 거라고 저는 느끼거든요." 그런데 소지섭뿐일까. 만약 당신에게 '당신의 소확행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주어진다면 어땠을까. 선뜻 행복을 끄집어낼 수 있었을까. 솔직히 쉽지 않았다. 아마 tvN <숲속의 작은 집>을 지켜보고 있었던 수많은 시청자들이 소지섭의 침묵에 공감하고, 그와 함께 침잠(沈潛)에 빠졌을 것이다. 


반면, 피실험자 A, 박신혜는 그다지 어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연필을 손에 쥐더니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얼굴에 예쁜 미소가 맺히기 시작했다. 삶 속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하나씩 하나씩 써내려 갔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빨리 나왔는데?" 쉽사리 행복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소지섭과는 달랐다. 다소 길지만, 박신혜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용해 보자.  



첫 번째는 가족입니다. 엄마 아빠랑 오빠랑 볼링장 가서 아빠랑 저랑 엄마는 오빠랑 팀 나눠가지고 볼링 게임해서 내기 같은 거. 아니면 가족들하고 낚시 가는 것도 너무 좋아하거든요. 댐에서 물 위에 동동 떠서 붕어 낚시를 하고 있으면 그렇게 시간이 잘 가요. 그리고 다 같이 밤에 고기 구워먹고, 새벽 내내 떡밥 던지면서 낚시할 때. 진짜 가족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고 소중하고, 뭐라고 해야 할까요. 꿈 꿀 수 있는? 순간순간들이 가족들하고 되게 많았던 거 같아요. 힘들었던 시절도 겪으면서 그것들을 가족들과 함께 이겨냈을 때의 행복함. 감사함.


두 번째로는 친구들. 동네에 저희가 자주 가는 아지트가 있어요. 거기 모여서 다 같이 맥주 먹으면서 파스타 먹을 때. 


그리고 가끔은 사람에게 위안을 받지 못할 때, 반려 동물에게서 얻는 에너지가 굉장히 크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고양이들이랑 같이 지내고 있는데. 제가 잘 때 약간 만세하고 자거든요. 그러면 손끝에서 만져지는 고양이 털의 부드러움. 잠이 되게 솔솔 잘 와요. 손 이렇게 대고 있으면, 와서 막 얼굴을 부벼요. '왔니?'라면서. 그럴 때 되게 행복하죠.


그리고 스포츠. 자전거 타고 딱 나갔는데, 뭔가 날씨도 너무 상쾌하고, 옷도 가볍고. 끝없이 달리다보면 바람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소리. 그런 순간순간들이 막 지나쳐 가는데, '내가 건강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들이 들 때가 많거든요. 


아, 언제 어디든 무얼 먹든 행복해. 먹는 건 어디에 껴놔도 행복한 것. 나에게 먹는 비중이 너무 큰가? 다들 그러지 않아요? 나만 그런가?



가족. 친구들. 반려동물. 스포츠. 음식. 바로 박신혜의 소확행이었다. 그의 삶을 구성하는, 지탱하는, 지켜내는 요소들이었다. 아마 그 소확행들은 박신혜가 살아가며 곤경에 처하고, 어려움에 빠졌을 때마다 버팀목이 돼 줄 것이다. 행복이란 그런 것이니까. 이미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해왔으리라. TV 속에서 박신혜를 볼 때마다 느껴지던 그 밝은 힘의 원천은 그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소확행들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박신혜의 이야기가 다소 길지만, 전체를 몽땅 옮긴 까닭은 그 어떤 글보다, 어떤 설명보다, 어떤 해석보다 완한 문장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복에 대해, 그것도 확신에 찬 상태에서 꺼내놓는 이야기보다 더 완벽한 풀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무한한 힐링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안갯속에 숨겨져 있는 듯 했던 우리 자신의 소확행을 찾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근데 어떤 때는 저도 자꾸 불만 불평이 되게 쌓이는 거예요.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자존감도 낮아지고. 근데 엄마께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감사하면 행복하다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지 자꾸 사람이 큰 것에만 감사하면 나중에 진짜 그 큰 것들이 사라졌을 때 불행 아닌 불행들? '행복하지 않다', '좋은 일이 없다'고  생각이 들기 마련이라고. 그러다 보니까 그냥 유독 진짜 짜증 나고 화나는 날에 곰곰이 생각해봐요. 나한테 오늘 감사한 일이 어떤 게 있었나."


박신혜는 불만과 불편이 쌓일 때마다, 유독 짜증이 나고 화나는 날에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고 한다. '나한테 오늘 감사한 일이 어떤 게 있었나.'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지침 삼아서 아주 사소한 것에 감사를 떠올린다. '오늘 하루 건강하게 눈뜰 수 있음에 감사.' 그렇다. 어쩌면 '행복'이란 '감사할 줄 아는 태도'에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숲속의 작은 집>이 '당신의 소확행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던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생에서 자신만의 소확행을 사색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발견하는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어떤 경로를 통해 거기에 도달하든 간에,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 또,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필요가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우리의 삶 곳곳에 장식해 둘 자격이 있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그날은 아빠가 잘못한 거야. 사과해." 


오양촌(배성우)은 딸 오송이(고민지)의 말에 어이가 없다. 차 안에서 남자친구에게 강제로 키스를 당하는 딸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분통이 터지는데, 그 남자친구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아빠를 112에 신고 하다니. 딸은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그날 난 혹시 몰라서 차 문이랑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있었어." 참을 수 없었던 오양촌은 "네 쪽 창문은 운전석에서도 컨트롤 되는 거 몰라? 그게 어떻게 안전하다는 증거야?"라고 반박한다. 


그러자 송이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112앱'이 설치돼 있었고, 언제든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끔 손에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었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있던 장소는 외진 곳이 아니라 CCTV가 곳곳에 설치돼 있는 아파트 주차장이었다고 항변한다. 송이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남자친구, 그러니까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를 옹호하기 시작한다. 



"어제 내가 다른 남자랑 있는 거 그 친구가 봤거든. 그래서 그 친구는 착한 애야."


송이는 자신이 바람을 피웠고, 남자친구가 그 현장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친구의 폭력적 행동은 정당하다고 설명한다. 놀랍지만,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많은 경우, 데이트 폭력(뿐만 아니라 가정폭력도 마찬가지다)의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향해 '제대로' 분노하지 못한다. 오히려 원인을 피해자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찾는다. 왜 그럴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도록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등 권력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각종 범죄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이런 범죄들의 경우에 그 책임을 피해자인 여성에게 전가해 왔다. '네가 화가 나도록 만들었겠지.', '네가 바가지를 긁었겠지.', '네가 짧은 치마를 입었잖아.' 화살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꽂힌다.



"범죄의 대부분이 범죄자가 악해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욱해서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거야. 그때 차 안에서 넌 분명 싫다고, 말로도 행동으로도 두번 세번 그놈한테 하지 말라고 경고했어. 그런데 놈은 계속.. 그놈이 착하고 안 착하고는 아무 문제가 안돼. 이미 사리분간 못할 만큼 욱한 게 문제라고, 알아들어? 네가 양다리 걸친 거 그거 정말 나쁜 짓이지만, 그렇다고 그 놈이 네 허락없이 네 몸에 손대는 거 정당화 될 수 없어. 이해받을 수도 없고. 그건 범죄야."


오양촌은 딸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대부분의 범죄가 범죄자가 악해서가 아니라 욱하기 때문에 벌어지며, 어떤 나쁜 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허락없이 상대방의 몸에 손을 대는 건 범죄일 뿐이라고 말이다. 뭐가 옳고 그른지 정확히 알라고 다그쳤다.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tvN <라이브>의 일침이었다. 또, 오양촌의 입을 빌린 노희경 작가의 일갈이기도 했다. 


실제로 데이트 폭력의 실상은 매우 심각하다. 여성긴급전화(1366)에 따르면, 데이트폭력과 관련한 상당이 2014년 1591건에서 2015년 2096건, 2016년 4138건, 2017년에는 8291건으로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경찰 측의 자료를 살펴보자. 2015년 7692명, 2016년에는 8367명, 20187년에는 1만 303명이 형사 입건됐다. 검거된 숫자가 저러하다. 그렇다면 신고만 접수된 경우, 신고조차 되지 않은 경우는 얼마나 된단 말일까.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폭력을 '사랑싸움'으로 치부하고,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넘어간다. 피해자조차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데이트폭력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467명에 달한다. 또, 데이트폭력이 상해로 이어진 케이스는 1만 3252건에 달한다.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강간도 매년 500건에 이른다. 이제야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조금 감이 올까. 


데이트폭력은 결코 연인들 간의 애정 문제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심각한 범죄다. 데이터 속의 가해자들도 송이의 말처럼 '착한 애'였다고 두둔해야 할까. 데이트폭력은 그 자체로 위험하지만, 더 심각한 건 데이트폭력이 곧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피해자의 46.4%가 폭력을 가한 상대방과 결혼을 했고, 그 중에서 17.4%가 가정폭력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결과) 



모든 범죄는 연결돼 있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데이트 폭력은 사실상 모든 문제의 출발점인 셈이다. 데이트폭력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신고를 해봐야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지속적 괴롬힘(경범죄처벌범 제3조 41호)'은 고작 10만원 이하 벌금, 구류 등에 불과하다. 정부는 징역 · 벌금 형으로 강화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역시 실무적으로 먼 나라의 이야기다. 


20대 중에서는 '여성 혐오 분위기 확산'을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공권력의 적극적인 개입과 함께 우리 사회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 폭력은 용인되는 순간, 점점 더 강도가 세지기 마련이다. 또, 제어하기 어려워진다. 작은 불씨부터 초장에 제압해야 한다. 오양촌의 일침을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피해자로부터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모든 시도를 멈춰야 한다.



"모든 게 범인의 잘못이라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야. 왜 수많은 길을 놔두고 동생과 도서관에 가기 위해 그 산길을 택했을까. 왜 좀더 저항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힘이 약한가. 왜 처음부터 강해서 자신을, 동생을 지키지 못했나. 내가 12년 전 그때 범인보다 그 장소를 지나갔던 나를 미워했던 것처럼, 너 역시 사는 내내 수만가지 자책할 거리가 떠오르겠지만, 분명하게 알아야 돼. 그 어떤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범인의 잘못이지."


강간 사건의 피해자를 찾아 간 한정오(정유미)는 위와 같이 말한다.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으며 위로한다. 역시 한정오의 입을 빌린 노희경의 위로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어떤 것도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결코 피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데이트 폭력을 이야기하다 왜 갑자기 강간 사건을 병치시키냐고? 앞서 설명하지 않았던가. 두 범죄는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