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를 망쳐놓은 걸까. 설렘으로 가득했던 드라마가 어느 순간부터 짜증을 유발하기 시작하더니, 이젠 분노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가 돼 버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윤진아(손예진)를 망가뜨린 걸까.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던 여자 주인공을 '민폐'로 전락시킨 저의가 무엇일까. 역량 부족이라 꼬집지 않을 수 없다.


윤진아와 서준희(정해인)가 조심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던 시기만 해도 <예쁜 누나>는 정말이지 예쁜 드라마였다. 비가 내리던 날 함께 술을 마시고, 빨간 우산 하나를 펼쳐들고 걸어가던 두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예뻤던가. 또,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테이블 아래로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마음을 확인하던 순간, 심장이 터질듯 뛰었던 건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시청자들도 함께 두근거렸다. 


회사에서 비밀스러운 연애를 이어가던 모습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했다. 저렇게 연애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었다. OST는 신의 한 수였다. 카를라 브루니(Carla Bruni)의 'Stand By Your Man'와 레이첼 야마가타(Rachael Yamagata)의 'Something In The Rain'은 두 사람의 사랑에 낭만을 더했다. 그런데 이젠 속에서 천불이 난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설레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두 사람의 사랑을 막아 선 사람들 때문일까? 스토커와 다름 없었던 전 남친 이규민(오륭)은 진아를 걸핏하면 찾아와 괴롭혔다. 집착은 더욱 심해져 성폭력을 저질렀고, 심지어 납치까지 했다. 명백한 범죄였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지면, 피해자인 진아가 준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목은 굉장히 불쾌한 장면이었다.) 드라마는 이규민의 존재를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기폭제로 삼았지만, 활용의 정도가 지나쳤다.


속물적인 엄마 김미연(길해연)는 시청자들의 뒷목을 수 차례 잡게 만들었다. 딸을 좋은 집안에 시집 보내는 게 최고의 목표였던 그에게 준희는 성에 차지 않았다. 서경선(장소연)과 서준희 남매를 가족처럼 대했다고 하지만, 정작 단 한번도 가족인 적은 없었다. 그저 불우한 이웃 정도였을까. 미연은 경선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무릎까지 꿇은 준희의 뺨을 때린다. 하기사 딸을 두고 바람까지 피운 이규민을 두둔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을 더할까. 


진아와 준희,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은 장애물은 생각보다 높고 버거웠다. 그러나 돌파하지 못할, 넘어서기 불가능한 벽은 아니었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윤진아다. 그는 이해하기 힘들만큼 최악의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스토커로 돌변한 전 남친을 우유부단한 태도로 대하면서 더 큰 위기를 자초했고, 속물적인 엄마에게 계속해서 휘둘리며 사랑의 주체로서의 자격마저 상실했다.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그 누구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진아가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준희 몰래 선을 보러 가는 장면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준희에게 "엄마 심부름"이라 거짓말을 하고 호텔로 향했던 진아는 아버지(김창완)를 만나러 온 경선과 마주치고, "승호가 벌써 얘기했어? 나 선본다고?"라고 자폭하기에 이른다. 두 사람을 지지했던 친구 경선까지 실망시켰다. 그 상황에서 경선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윤진아, 너 미친 거 아냐? 제정신이냐고. 우리 준희는 뭔데? 준희하고 정리해!"


애초부터 윤진아라는 캐릭터는 (집에서는) 의존적이고 (사회에서는) 우유부단했다. 기가 센 엄마에게 이리저리 휘둘렸다. 경제적 독립은 한 듯 보였지만, 여전히 엄마의 울타리에 갇힌 연약한 존재였다. 회사에서는 불합리한 처우와 부당한 대우에도 눈을 감았고, 거듭된 성희롱에도 꾹 참기만 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답답한 설정들은 진아가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극복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봤다.



실제로 진아는 준희와의 사랑을 통해 성장했다. 당당히 할 말을 하고, 스스로에게 좀더 솔직하게 됐다. 긍정적인 변화였다. <예쁜 누나>는 지금의 갈등마저도 사랑의 과정이라 설명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더 이상 시청자들은 윤진아를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여기지 않는다. 캐릭터는 완전히 망가졌다. 진아의 처지에 대한 공감보다는 짜증과 분노가 앞선다. 과도한 설정들이 캐릭터를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언젠가부터 <예쁜 누나>는 '밥 잘 사주는 잘생긴 동생'을 그려나가는 데 주력하는 듯 보인다. 넖고 깊은 마음으로 사리분별 못하는 누나를 살뜰히 살피고, 누나가 어려움에 빠지면 언제든지 나타나 지켜주는 최고의 남자친구 말이다. <예쁜 누나> 속에서 여전히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하다. 남자친구의 사랑과 보호가 없으면 안되는 연약한 존재 말이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