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직도 2017년 10월 30일을 또렷히 기억한다. 무심코 집어든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보(誤報)에 비판적이지만, 그 소식만큼은 잘못된 것이길 바랐다. '김주혁 교통사고로 사망' 단 열 글자로 설명된 그의 죽음. 참으로 황망했다. 믿기지 않았다. 한 배우의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했다. 함께 고통을 나눴다. 그만큼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게다가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였다. 원인에 대한 여러 추측들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올해 1월 3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차량에 대한 감정 결과를 '결함 없음'으로 결론지었고, 강남경찰서는 이 결과를 인용했다. 의문은 풀리지 않았으나 우리는 받아들여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더 이상 김주혁이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죽은 후 가죽을 남기듯 배우는 작품을 남기는 것일까. 이제 남은 건 먹먹한 심정으로 그가 남긴 유작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요즘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 글을 봐도 얄팍하게 보였다면, 이제는 좀 더 깊이 보이는 것 같다."던 그는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해 이미 촬영을 마친 후였다. 김주혁이 어떤 연기를 남겼을지 한편으로는 기대가 됐다. 


먼저 개봉했던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여러가지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개연성 부족 등 영화의 만듦새에서 허술함을 드러내 관객들을 허탈하게 만들었고, 조현근 감독의 성희롱 사실이 미투 운동을 통해 밝혀지면서 영화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었다. 故 김주혁의 유작이라는 특별한 의미까지 퇴색시켰다. 결국 <흥부>는 총 관객 416,346명에 그치고 말았고, 김주혁의 연기에 대한 평가나 감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독전>뿐이었다. 중국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을 원작으로 한 <독전>은 ‘이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마약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피말리는 싸움을 그린 영화다. 잔혹성과 선정성은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가 탄탄하고, 이야기의 몰입도 역시 높다.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데드풀2>이 휩쓸고 있는 극장가에서 1위 자리를 탈환했고, 그 여세를 몰아 8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가 ‘짱짱’하게 뽑히자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받기 시작했다. 조진웅, 류준열, 김성령, 박해준, 차승원, 진서연 등 하나같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역량이 언론을 통해 조명받고 있다. 물론 앞서 이름을 거론한 배우들의 활약에 뛰어났지만, 역시 가장 돋보였던 건 특별출연한 故 김주혁이었다. 그는 아시아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을 연기했는데, 광기 어린 카리스마는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예측할 수 없는 진하림이란 캐릭터,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故김주혁의 연기에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그의 탁월한 연기는 어수선한 영화 초반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특히 아내 보령 역을 맡은 진서연과의 호흡은 경탄스러울 정도다. 더욱 놀라운 건 평소 예능에서 보여줬던 친근한 형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었다는 점이다. 그가 천상 배우였음을 또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제야 故 김주혁이 환하게 웃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안도감이 들었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서글퍼졌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배우로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남기고 간 혼이 담긴 연기가 이를 증명한다. “이제는 좀 더 깊이 보이는 것 같다”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빠른 이별이었다. 분명 그는 보여줄 게 훨씬 더 많이 남은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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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그를 예능인이라 부르기가 어색하지 않다. 8년이면 중견 예능인의 위치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에서 그가 보여주는 역할이나 분량을 놓고 보면, 이제 든든한 ‘에이스’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아시아 프린스’라는 오글거리는 별명도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미 수 차례 해외 로케를 통해 그의 인기가 증명됐기 때문이다. SBS <런닝맨>의 ‘기린’, ‘배신의 아이콘’ 이광수 이야기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묻는다면, ‘이광수를 좋아한다’고 말할 것이다. 8년 전부터 그랬다. 그는 예능계에서 유일무이한 캐릭터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겁을 상실한 채 김종국과 맞서고, 지석진과 연대와 배신을 반복하고, 예측불허의 언행으로 웃음을 연출한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게스트를 구분하지 않았다. 예능의 신이 강림했던 날계란 깨기는 지금도 즐겨보는 짤이다.

단지 예능에서 보여주고 있는 캐릭터 때문만은 아니다. 배우로서 그의 재능도 격하게 아낀다. 얼마 전 종영한 tvN <라이브>에서 이광수가 보여준 연기는 박수받아 마땅했다. 또, <탐정: 리턴즈> 개봉도 앞두고 있다. 이광수는 (예능을 부업으로 뛰고 있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예능의 이미지를 드라나마 작품으로 연결시켰고, 그래서 부담 없이 혹은 제약 없이 예능을 즐길 수 있었다. 할말 못할 말 다 하면서.


"너 꽃뱀이지?"
"혜정이는 불여우입니다!"

지난 27일 <런닝맨>은 AOA 설현과 혜정, 위너 송민호와 강승윤, 모모랜드 주이, 우주소녀 다영이 출연했고, ‘좀비 커플 레이스’라는 콘셉트로 방송이 진행됐다. 이광수는 커플이 된 혜정을 의심하며 ‘너 꽃뱀이지?’라고 몰아세웠다.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웃음을 위한 것이었다고 변명하지 말자. ‘꽃뱀’이라는 말이 ‘남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몸을 맡기고 금품을 우려내는 여자’로 사용된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

<스포츠 조선>의 김영록 기자는 ‘뜬금없는 막말 논란’이라며 이광수를 싸고 돌았지만, 그의 발언은 명백한 사실이며 그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판은 당연스러운 일이다. 막말을 하는 게 그의 캐릭터라는 어줍잖은 쉴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청자들은 ‘닥쳐’ 정도의 말을 했다는 걸 문제삼는 게 아니니까. 제작진은 문제가 될 거라 생각했는지 ‘너 사기꾼이지?’라는 자막을 달아 순화시키려 애썼지만, 이광수의 발언은 고스란히 방송을 탔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들을 ‘꽃뱀’이라 부르는 이른바 ‘미투 꽃뱀설’이 대두되고 있다. 성범죄와 관련한 무고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다.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성폭력 무고 비율이 전체 무고 사건의 40%’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데이터를 제시하며 음해까지 서슴지 않는다.

꽃뱀 등으로 현상화되는 가해자 위주의 관점은 겨우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피해자들을 옥죄는 굉장히 폭력적인 언어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런닝맨>의 경우 초등학생 시청자가 많다는 점에서 시청한다는 매우 부적절하다. 왜곡된 여성관을 심어줄 우려가 크다. 이광수의 말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초등학생들을 떠올려보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사실 이광수의 폭주는 하루이틀이 아니다. 남매 같은 사이 송지효를 때린 건 여러 차례이고, 배우 이다희에게 "너 배 한대 맞을래?"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의 폭력적 언어는 곧 행동으로 발현되기도 했는데, 배우 김지원의 울대를 때린 게 그 대표적인 예다. 워낙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김종국에 대항해 짓궂은 장난을 하거나 폭력을 쓰는 건 용납됐지만,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힘을 사용하는 모습은 불편함을 자아낸다.

예능인 이광수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거침없다’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발생하고,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는 법이다. 가속도가 붙는 건 당연한 일인데, 브레이크가 없다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혹은 브레이크를 밟는 법을 잊어버렸든지. 이광수에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광수의 선의를 믿기 때문에 직언이 통하리라 기대해 본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솔직히 '파리 여행기'를 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번 본 영화는 다시 보지 않고, 한번 읽은 책은 다시 읽지 않는 이상한 고집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번 갔던 여행지를 다시 들리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경제적 사정이나 일정 등 이런저런 조건이 갖춰지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떠날 수 있는 해외여행인지라 굳이 갔던 곳을 또 갈 여유가 없었다. 난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수두룩한 여행끈 짧은 여행자에 불과하니까. 


2016년 11월에 처음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으니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파리에 가게 됐다. 그 사이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한번에 묶어 다녀왔고, 뜨거운 햇볕이 작열하는 터키 이스탄불을 다녀왔다. 이번엔 내심 이탈리아 로마를 염두에 뒀지만, 최종적인 선택은 결국 파리였다. 물론 벨기에를 세트로 묶는 보험(?)도 들어뒀다. 일종의 절충이라고 할까. 



첫 번째 파리는 겨울이었다. 기온이 낮아 제법 쌀쌀했고, 체감온도 역시 낮았다. 아예 두꺼운 점퍼를 입었었다. 추위에 떨면서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비수기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보니 여행하는 사람들이 적었다. 관광지는 가는 곳마다 거의 텅 비어있다시피 했다. 줄을 서지 않아 반가웠지만,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없어 심심했다. 그래도 저 유명한 명소와 예술품들을 독점했으니 불만은 없었다. 


두 번째 파리, 그러니까 5월의 파리는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었고, 그 안에 있던 나도 덩달아 생기가 돌았다. 햇살은 밝고 따스했고, 하늘은 맑고 투명했다.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파리는 매 순간 빛났고, 스스로를 빛냈다. 마치 ‘이게 내 본연의 모습이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였고, 어느 곳이나 활기가 넘쳤다. 5월의 파리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두 번째는 또 다른 의미의 첫 번째였다. 가보지 못했던 곳을 들릴 여유가 생겼고, 한번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곳을 다시 챙길 꼼꼼함도 생겼다. 다시 들린 몽마르트르 언덕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크레쾨르 성당 주변 카페들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고, 그 앞은 거리의 화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맑은 날의 베르사유 궁전은 화사함의 차원이 달랐다. 정원은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웠다. 루브르와 오르세의 분위기는 몇 곱절 뜨거웠다. 



생각지도 않게 미완의 [버락킴의 파리 여행기]를 이어가게 됐다. 번호는 13이다. 결국 불완전하게 끝나겠지만, 그래도 몇 개의 글을 더 보탤 수 있게 돼 개인적인 아쉬움이 씻기는 기분이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 '지베르니(는 파리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지만, 파리에서 시작해 파리로 돌아와야 하고, 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와 '오랑주리 미술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지베르니(Giverny)와 오랑주리 미술관(Orangerie Museum)은 프랑스 인상파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라는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인상파라는 명칭이 그의 작품인 <인상, 해돋이>에서 비롯됐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을 했던 곳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모네의 걸작인 <수련(les Nymphéas)> 연작이 전시돼 있다.


지베르니에 가게 위해서는 손쉽게 현지 투어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몽생미셸에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현지 투어를 신청했다. 차로 달려서 4시간 30분~5시간에 달하는 거리가 부담스러웠고,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워낙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지베르니는 기차로 50분~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어 부담이 적었다. 이 정도는 혼자 힘으로 해결하고 싶은 도전정신이 샘솟았다. 



출발점은 생 라자르 역(Gare saint-lazare)이다. 지베르니까지 바로 가는 기차가 있으면 좋겠지만, 베르농(Vernon) 역까지 가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살짝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여정이다. 그 정도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될 만큼의 만족감을 느끼게 될 테니 섣부른 손익판단은 금물이다. 성수기 무렵에는 원하는 시간대에 기차표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끊어두는 센스가 필요하다. 


성수기 여행이 처음이었던 나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지만) 다음날 06:54 기차표를 예매해야 했다. 어떤 여행 책자에는 45분이면 된다는 설명도 있는데, 베르농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됐다. 돌아오는 기차는 50분 정도 걸렸으니, 완전히 틀린 설명은 아니다. 베르농 역에서 내려 정문으로 나가면 소박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50m쯤 가면 마을 버스 타는 곳이 있다. 표는 버스 기사에게 사면 되니 당황하지 말자.


새벽에 기차를 타고 떠나왔건만, 버스 시간이 한 시간 이상 남은 상황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여유는 배르농 아침 산책을 하는 걸로 채우기로 했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버스 기사가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다른 기사들과 수다를 떤다. 다음 열차의 손님들을 기다렸다가 출발하려는 심산일까. 예정 시간보다 30분이 더 지났을까. 드디어 출발하는 버스, 앞쪽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외친다. ‘thanks god!’



바깥 풍경을 구경하느라 15분이 훌쩍 지났다. 지베르니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면서 이미 벌어졌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곳의 초록은 농도부터 다르다. 전날 밤 일기예보를 보며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녹아버린 지 오래다. 햇살은 더할나위 없이 따스하고,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푸르르다. '이래서 지베르니, 지베르니 하는구나!' 감탄이 그치지 않는다. 지베르니에 오다니, 스스로 믿기지 않는 걸음을 떼고 있었다. 


지베르니는 굉장히 작은 시골 마을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넉넉히 10분이면 인상주의 미술관에 닿고, 거기에서 또 10분이면 모네 생가에 다다른다. 가는 길목마다 꽃과 나무로 이뤄진 천상의 풍경들이 펼쳐져 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다. 골목이 하나같이 예쁘고, 그 골목의 터잡은 집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이런 곳에서 살면 그 어떤 걱정도 없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인상주의 미술관은 굳이 들리지 않아도 좋다. 그때마다 특별전을 열어 전시를 하는 곳인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일본의 인상주의라는 주제로 전시가 한창이었다. 어차피 목적은 모네이기 때문에 가볍게 패스했다. 자, 드디어 모네의 생가다. 아침이라 줄이 그리 길지 않다. 앞쪽에 선 가족들의 수다가 귓가를 파고들지만, 상쾌한 기분에 이조차도 용납하기로 한다. 입장료는 9.5유로. 


계단을 내려가면 곧바로 기념품 샵이 나온다. 특이한 구조다. 밖으로 나가면 드디어 모네의 정원과 집이 나타난다. 그가 43세인 1883년 지베르니를 발견하고 가족들과 함께 정착해 여생을 보냈던 곳. 1926년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모네는 이곳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목조로 된 생가와 정원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연못으로 가는 길이 나타난다. 설렌 가슴이 또 한번 설레기 시작한다. 




연못은 또 다른 세계였다. 모네의 그림 속에 실제로 들어온 느낌이랄까. 마치 풍경의 일부가 된 듯 하다. '아,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 예술적 영감이 떠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좀더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면 좋았겠지만, 오후에 접어든 지베르니는 이미 관광객들로 가득 차 버렸다. 한걸음 내딛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어차피 미리 예매해둔 기차 시간이 다가와 더 이상 머무를 수도 없었다. 


만약 여행 기간이 넉넉하다면 하루를 온종일 지베르니에 할애하는 것을 추천한다. 좀더 느긋하게 모네의 공간을 거닐어 본다면, 마치 잠시나마 모네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파리로 돌아와서 곧바로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콩코르드(Concorde) 역에서 내렸다. 걸어서 5분이면 된다. 첫 번재 여행에서 이미 들렀던 곳이지만, 지베르니를 다녀온 그 감각을 살리고 싶었다.




두 눈에 가득 담았던 광경, 두 발로 직접 거닐었던 그 공간을 담은 그림을 빨리 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머물렀던 정원과 연못이 그림 속에 펼쳐져 있었다. 그 연속성이 작품에 대한 감동을 확장시켰다. 이곳에 있는 <수련> 연작 패널은 모네가 76세부터 백내장으로 작업이 어려워진 81세까지 그린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어떤 심정으로 그 풍경을 담았을까. 


어떤 소설가가 그랬다. 여행을 가면 그 곳과 관련된 책을 읽으라고. 역시 '스토리'가 중요하다. 파리를 가면 (책도 좋지만) '그림'을 봐야 하고, 그 그림을 더욱 잘 느끼려면 그 배경이 되는 장소에 가보는 게 좋다. 첫 번째 여행에서 그런 시도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곳이 파리라면 더욱 그렇다. 시내에만 해도 볼거리가 차고 넘치니까. 그래서 파리는 두 번 가면 더 좋은 곳이다. 아니, 어쩌면 가면 갈수록 좋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검찰의 성추행 문제를 세상에 알렸던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고백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던졌다. ‘미투 운동’을 전방위적으로 확산시키는 한편,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던 음습하고 저질스러운 문화를 밀어내는 데 큰힘이 됐다. 혼자 속앓이를 해야만 했던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건넸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살았던 수많은 가해자들에게 경각심을 불어 넣었다. 


서지현 검사가 증폭시킨 미투의 불씨는 사회 각계각층으로 삽시간에 번져 갔다. 물론 많은 피해자들의 고뇌와 결단, 생존의 두려움을 이겨낸 용단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런데 시끌벅적했던 검찰과는 달리 법원의 분위기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법원은 성폭력 및 성차별이라는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던 걸까. 오히려 미투 운동이 전개되지 않는 집단이 훨씬 더 부패한 조직이라는 이야기가 설득적이다.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강자의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고 징계하기는커녕 피해자를 음해하고 괴롭히면서 피해자에게 치욕과 공포를 안겨주어 스스로 입을 닫게 하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서지현 검사)


고발자는 생존을 위협받고, 조직으로부터 철저히 배척되며,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피해자에게 왜 말하지 않느냐고 몰아세우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게다가 이젠 실명을 대지 않으면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는 잔혹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던가. 게다가 무려 검사의 문제제기에도 검찰은 자정의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은폐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김영란 전 대법관은 "‘법원에 여성 수가 늘어나면 조직의 질이 떨어진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판사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 "재판부의 여자 배석판사가 재판장한테 성희롱 관련 문제를 제기했고, 재판장이 사직서를 쓴 일이 있었"는데, "인사이동 때마다 '저 판사가 그 판사지' 하는 식으로 낙인찍혔"던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법원은 피해자에 대한 가해가 심한 조직"이라는 말에서 법원 내 미투 운동이 잠잠한 까닭을 알 듯 하다. 


최근 방영 중인 JTBC <미스 함무라비>는 '생 리얼 법정 드라마'를 자처한다. 현직 부장판사 문유석 씨가 자신의 동명소설을 각색해 극본을 썼다. 아무래도 ‘디테일’이 남다른데, 드라마는 법원 내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비중있게 다룬다. 또, 남성중심적인 구조에서 비롯된 뿌리깊은 성차별의 문제도 녹여내고 있다. 극의 분위기가 발랄한 터라 재치있는 대응이 주로 그려지고 있지만, 현직 판사의 간접적인 고백이라 의미가 깊다. 



"그리고 그 여학생도 문제야.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

"부장님, 짧은 치마를 입은 피해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상한 짓을 하는 추행범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말대꾸야. 여학생이면 여학생답게 조신하게 입고 다녀야지.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야. 여자로 만들어지는 거지. 노력을 해야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거야."


부장판사 한세상(성동일)과 초임 판사 박차오름(고아라)의 첫 만남. 한세상은 지하철의 성추행범을 잡는 기지를 발휘한 박차오름에게 한소리하면서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매우 위험한 관점을 노출한다. 박차오름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애써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도리어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노력을 해야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거'라는 심각한 성차별적 언어와 편견에 사로잡힌 말까지 듣게 된다. 


"판사로서 이런 옷차림이 가당키나 해? 화려하고 치마도 짧고!"

"법관 윤리강령에 치마길이 규정이 있나요?"


튈 바에야 화끈하게 한번 튀어보는 성격의 박차오름은 화려한 색깔에 짧은 치마를 입고 출근을 해 한세상을 기함하게 한다. 판사로서 이런 옷차림이 가당키나 하냐는 꾸짖음에 법관 윤리강령에 치마길이를 규정한 내용이 있냐며 되받아치는 배짱. 그리고 조신한 옷으로 갈아입겠다며 이슬람 여성의 전통의상(니카브)을 입고 나타나 부장판사를 기겁하게 만든다. 비현실적인 대응이지만, 속이 시원해지는 맛이 있다.



"임 판사는 결국 자는구만. 그렇게 잘난척을 하더니 (주량이) 여자만도 못해."

"어우, 부장님. 여자만도 못하다, 그런 말씀 들으니까 듣는 여자 기분이 상큼해지는데요?"

"어른이 개떡같이 얘기해도 아랫사람이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되는 거 아냐."

"처음부터 찰떡같이 말하면 될 걸, 굳이 개떡같이 말해놓고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니. 그게 뭔 개떡 같은 소리야."


성차별적 언어는 회식 자리에서도 이어진다. 술에 취해 쓰러진 남성 판사를 두고, '여자만도 못하다'는 말을 늘어놓는 한 부장판사.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은 박차오름이 아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재치있게 받아치며 잘못을 지적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엄연한 성차별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변명에 먼저 뻗었던 임바른(김명수)은 '처음부터 찰떡같이 말하라'고 어퍼컷을 날린다.


물론 <미스 함무라비>는 코믹스러운 분위기를 취하고 있고, 따라서 법원 내의 구성원들 간에 발생하고 있는 성차별적 언행도 다소 가볍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 상황들 속에서 나타나는 박차오름의 대응 역시 따라하기엔 너무 만화적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직 부장 판사가 간접적으로나마 고백하고 있는 법원 내의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미스 함무라비>는 제법 가치있는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의 옷차림에 돌리는 충격적인 발언이 여전히 법원 내에 잔존(이 아니라 만연일지도 모르겠다)하고 있고, 법원 내 여성의 옷차림을 지적하고, 치마 길이를 규정하는 5공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여자다운 여자'라는 성편견에 가득찬 생각들로 여성을 바라보는 시대착오적인 공간. 지금의 법원은 보수적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곳은 아닐까. 


현직 부장 판사가 쓴 드라마, 그조차도 모든 걸 다 드러낼 수 없었으리라. 조직에 큰 누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그조차도 재미를 가미해 각색한 결과물일 것이다. 그러나 저 약간의 고백만으로도 충분히 알 듯 하다. 그곳의 공기가 어떠할지 말이다. 서지현 검사의 사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하물며 검사도 저러한데..'라고 탄식했다. 하물며 판사라고 다르겠는가.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무협지를 연상시키는 제목, tvN <무법변호사>는 실제로도 굉장히 '무협스러웠다'. 마치 무협 만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고, 감정이입의 대상이 분명했다. 기승전결이 선명했고, 강약 조절이 명쾌했다. 위기가 있으되 무겁지 않고, 오히려 경쾌한 리듬이 느껴졌다. 그건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무법변호사>는 영리하게 '무협스러움'을 잘 이용하고 있다. 


굵직한 이야기의 힘이 느껴지고,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뚜렷하다. 주인공인 변호사 봉상필(이준기)의 스토리가 흥미롭게 펼쳐졌다. 시청자들은 봉상필의 상처와 복수에 공감하고 공분하게 됐다. 또, 그밖의 주조연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색깔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전체적인 짜임새가 좋다. 거기에 연기의 구멍이 없는 배우들의 열연은 몰입도를 높였다. 이쯤 되면 잘 될 수밖에 없다.


<무법변호사>는 가상의 도시 '기성'을 배경으로 한다. <배트맨>의 고담, JTBC <언터쳐블>의 북천을 떠올리게 한다. 고담이나 북천이 범죄의 소굴이자 적폐의 온상인 것처럼, 기성도 한걸음 들어가 보면 추악한 도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기성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1인의 절대적 통치 하에 있다. 그 지배는 매우 은밀하고 정교하게 이뤄지고 있다. 



놀랍게도 그 1인은 법조계를 비롯해 기성 시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차문숙 판사(이혜영)다. '기성의 마더 테레사'라는 별칭은 차문숙의 기만과 이중적 삶을 잘 보여준다. 대법원장 자리를 수차례 고사하며 고향인 기성에 남아 청렴함을 보여준 차병호 향판의 딸이라는 후광은 그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시민들은 그를 한 명의 판사로 존경하는 게 아니라 기성의 공주 혹은 여왕으로 따른다. 


봉상필은 차문숙 판사의 민낯을 알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인물이다. 차문숙이 기성의 각종 이권을 독식했고, 그의 굴절된 권력욕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봉상필 역시 차문숙의 탐욕으로 인한 피해자다. 그는 엄마 최진애(신은정)를 눈앞에서 잃었다. 지금은 오주 그룹의 회장이 된 조폭 안오주(최민수)의 손에 말이다. 안오주의 뒤에 차문숙이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변호사가 된 봉상필은 '비리의 화신' 차문숙을 응징하고, 엄마의 복수를 하기 위해 기성으로 돌아온다. 그 복수의 방식은 다름 아니라 '법(法)'이다. '내 재판은 신성불가침'이라 부를 정도로 (왜곡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차문숙에게 그 무엇도 아닌 법을 통해 복수를 한다는 봉상필의 의지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판결은 법관이 내리지만, 재판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를 정하는 건 변호사라는 그의 자신감이 흥미롭다.


그의 '무법'은 도리도 모르고 예의도 없다는 뜻의 '無法'이 아니라 법으로 싸운다는 뜻의 '武法'이다. 또한 기성에서 법과 동의어로 군림하고 있는 차문숙 판사와 싸우겠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을 것이다. 물론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차문숙 일당들과 싸우는 것, 다시 말해 기성에서 정의를 세우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그 싸움은 '연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개떡 같은 판결을 내린 판사를 때리고 업무정지를 받을 만큼 피가 끓는 변호사인 하재이(서예지)는 봉상필의 든든한 조력자가 될 전망이다. 두 사람은 엄마가 차문숙에 의해 희생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봉상필은 하재이의 엄마에게 생명을 빚지기도 했다. 문제는 하재이가 기성의 뭇 사람들이 그렇듯 차문숙을 '엄마'라 부르며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에 이르기까지 하재이가 겪게 될 혼란이 드라마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그런가 하면 봉상필과 법정에서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검사 강연희(차정원)의 변화도 예상된다. 존경하던 차문숙의 민낯과 그의 엄마 남순자(염혜란)가 차문숙에게 부역하고 있는 또 하나의 적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검사로서 법의 칼끝을 제대로 겨눌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승산은 봉상필에게로 기울어질 것이다.


차문숙, 안오주, 남순자 대 봉상필, 하재이, 강연희. 결국 이 거대한 싸움은 기득권으로 자리잡아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어른들과 그들의 견고한 동맹을 깨부수고 정의를 똑바로 세우려는 젊은이들의 대결로 귀결된다. 비록 비현실적인 장면과 비약이 섞인 전개가 거슬리지만, 그건 '무협스러움'이라는 장르적 성격으로 이해할 일이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재미가 있으니까 말이다. '비현실적인' 봉상필의 활약에 대리만족해야 하는 건 씁쓸한 일이지만 말이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대중이 배우에게 바라는 건 무엇일까. '치열함'이 아닐까. '아, 저 배우는 끊임없이 자기 발전에 힘쓰고 있구나.',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뜨거운 고민과 치열한 도전에 뛰어들고 있구나.'라는 느낌 말이다. 대면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중들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 대중만큼 훈련된 심사위원이 또 있을까. 단숨에 감각적으로 알아채는 법이다. 


매번 똑같은 배우에게 대중은 실망감을 느낀다. 변함없는 표정, 달라지지 않는 대사 톤, 뻔하디 뻔한 연기 습관. 이쯤되면 일관성은 칭찬이 아니다. 같은 얼굴과 같은 스타일, 심지어 같은 캐릭터로 일관한다면 대중들은 지루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드라마 제목만 바뀌었을 뿐,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다면 그건 배우로서의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황정음 이야기다. 



황정음식 연기의 뿌리는 MBC <지붕 뚫고 하이킥>(2009)이다. 발랄하고 엉뚱한 캐릭터, 망가지되 정감가는 캐릭터 말이다. 황정음은 그 작품을 통해 망가져도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망가져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SBS <자이언트>(2010), <돈의 화신>(2013), <끝없는 사랑>(2014)에서 정극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황정음이 가장 돋보이는 순간은 코믹 연기를 할 때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황정음의 진가는 MBC <킬미, 힐미>(2015), MBC <그녀는 예뻤다>(2015)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킬미 힐미>는 최고 시청률 11.5%로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하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녀는 예뻤다>는 최고 시청률 18%를 기록했다. 문제는 피로감이다. '연기가 비슷비슷하다'는 지적이 계속됐지만, 그는 변화를 꿰하기보다 안정을 선택했다. 


MBC <운빨 로맨스>(2016)은 10.3%로 스타트를 끊었지만, 6.4%까지 쪼그라들며 종영했다. 높은 성공율을 자랑했던 황정음 효과, 이른바 '황정음 신화'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것일까,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제대로 붙어보려던 것일까. 황정음의 차기작은 또 다시 코믹 연기였다. 고집일까, 아집일까. '코믹 로맨스'를 자처하는 SBS <훈남정음>은 작정하고 웃기려 든다. 그 중심에는 역시 황정음이 있다. 



한때 사랑을 꿈꿨던 연애포기자 유정음 역을 맡은 황정음은 망가지고 또 망가진다. 이별을 고지한 연인을 붙잡기 위해 수영복에 코트를 걸치고 공항에 찾아가선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 매달린다. 물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수상 육탄전을 벌이기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특유의 표정을 연달아 보여준다. 사랑을 거부하는 비연애주의자 강훈남(남궁민)과 코믹스러운 인공호흡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이 신선하다기보다 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냉정하게 말하면, 제목을 확인하지 않으면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가 <킬미, 힐미>인지 <그녀는 예뻤다>인지 <운빨 로맨스>인지 잘 모를 지경이다. 나태한 건 황정음일까, SBS <훈남정음> 일까. 포문은 황정음으로 열었지만, 드라마 역시 칭찬을 하기 힘든 수준이다. 이야기의 힘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려는 인상이 강하다.



연애포기자 유정음과 비연애주의자 강훈남이 우연적 만남을 통해 얽히고설키게 되고, 끝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익숙한 흐름으로 진행될 <훈남정음>은 이미 패를 다 보여준 상황이다. 첫 회만으로 이미 드라마를 다 본 것같은 기분이라 큰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결국 황정음과 남궁민, 두 배우의 역량(과 캐릭터의 매력)에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랄까.


2011년 MBC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남매로 함께 출연한 후 7년 만에 재회한 황정음과 남궁민. 각자 자신의 길을 걸으며 커리어를 쌓아올린 두 배우의 만남으로 더욱 기대를 모았던 <훈민정음>이기에 아쉬움이 더욱 진하게 남는다. 두 배우는 작품과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1회 5.3%, 2회 5.2%)은 그리 뜨겁지 않아 보인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대담한 주제의식을 가진 드라마는 많다. 따지고 보면 정의 · 진실 등 거창한 담론을 꺼내들지 않는 드라마가 없다. 시작은 창대하다. 그런데 중반이 채 지나기 전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고, 얼마 못 가서 결국 고꾸라진다. 차이는 '디테일'이다. 이야기의 힘을 끝까지 우직하게 끌고 나가는 힘은 그 세밀함에서 나온다. 세밀하다는 건 성실하다는 뜻이고, 그 정성스러움은 감동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JTBC <미스 함무라비>를 보면서 든 첫 번째 생각은 디테일이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법원이라고 하는 공간, 법관이라고 하는 직업, 판사라고 하는 사람을 이토록 정밀하게 다뤘다는 게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그 설명들이 듣기에 좋았다. 다시 말해 거슬리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이해가 됐다. '生리얼 초밀착 법정 드라마'라는 소개가 헛투루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를 확실히 그리고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의 설명에는 실체적 힘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섣불리 알면 설명에 기름이 낀다. 본질과는 자꾸 멀어진다. 겉멋만 생긴다. <미스 함무라비>는 기존의 법정 드라마와는 확연히 달랐다. 끈끈한 찰기가 있었다고 할까. 궁금증이 생겨 드라마 정보를 찾아봤더니, 극본을 쓴 작가가 문유석이다. 낯익은 이름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손석희 앵커의 추천으로 유명한 『개인주의자 선언』을 집필한 현직 판사였다. 남달랐던 섬세한 디테일의 까닭은 거기에 있었다. 현직 판사가 드라마의 작가라니. 벌써부터 산뜻하다. 제3자의 눈으로 접근해 취재를 통해 얻어낸 것과 자신의 오랜 경험에 의거해 끄집어낸 것 사이에는 디테일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대사들은 정밀했고, 생동감이 있어 '찰떡같이' 들렸다.



"재판은 정확도 중요하지만, 신속도 생명입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건에 매달리면 다른 사건 처리가 늦어질 수밖에 없어요. 정의도 한정된 자원이라고요."


"그래요, 임 판사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시시비비를 끝까지 밝혀내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죠. 그래서 임 판사님 말처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거고요. 근데요, 그 기준이 단지 피해 금액뿐일까요?"


<미스 함무라비>는 세 명의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다. 합의부를 구성하는 세 명의 법관이 그 주인공이다. '세상의 무게를 아는 현실주의 부장 판사' 한세상(성동일), '섣부른 선의보다 원리원칙이 최우선인 초엘리트 판사 임바른(김명수),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법원을 꿈꾸는 이상주의 열혈 초임 판사 박차오름(고아라). 너무도 다른 세 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드라마의 중심이다.


당연히 이들은 부딪친다. 사사건건 부딪친다. 문제의 시발점은 박차오름이다. 그는 초임 판사답게 열정을 갖고 모든 사건에 임한다. 자료와 기록에 파묻혀 살고, 야근은 기본이다. 하늘 같은 '우배석(재판을 할 때에 재판장의 오른쪽 자리에 함께 참석함. 또는 그 자리.)' 임바른은 '평생 판사할 거 아니냐', '판사일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평생 묵묵히 달리는 마라톤'이라며 다그친다. 



또, 박차오름은 특유의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에 나선다. 아픔에 공감하고, 상처에 같이 아파한다. '괜찮냐'고 묻기도 하고, 함께 눈물을 쏟기도 한다. 때로는 동점심이 넘쳐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계속된 업무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 '사람'이 아니라 '증거'만을 좇았던 동료 및 선배들에게 깨달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잊고 있었던 초심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손쉬운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당사자 본인 심문'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했던 박차오름의 고집을 통해 부장 판사 한세상은 초임 판사 시절 '잘 듣는 판사가 되라'는 선배의 조언을 떠올리게 된다. 임바른은 "법복을 입으면 사람의 표정은 지워야 하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지워선 안 되는 거였는데.. 보지 못했다. 마음으로 보면 볼 수 있는 것을.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봐준 사람도 있는데."라고 스스로를 반성한다.



분명 <미스 함무라비>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서 있다. 어쩌면 감동과 신파의 경계인지도 모르겠다. 살인, 강간과 같은 흉악 범죄와의 싸움을 기대했거나 재벌 혹은 권력과의 대결을 기대했다면 <미스 함무라비>가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의와 진실은 반드시 '거대한 것'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소소한 삶 속에서 발견되고 발현되는 것이다. 


"법관의 의무는 세상을 바꾼다고 큰소리 치는 자들로부터 그 세상을 지키"는 것이라 여기는 임바른과 "최소한 시궁창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과 땅 위에 선 사람이 싸우고 있다면, 먼저 시궁창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부터 꺼내보려고 발버둥이라도 쳐보"려는 박차오름이 어떤 이야기를 그려낼지 궁금하지 않은가. 첫회 3.739%(닐슨 코리아 기준)에서 2회 4.553%. 껑충 뛴 시청률은 그런 기대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사람의 얼굴을 한, 사람의 마음을 보는 판사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