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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연예

손호준 없는 '눈이 부시게'는 상상할 수 없다



그의 변신은 무죄다. 아니, 상을 줘야 할 판이다. 우리가 기억하던 그는 '순둥이'였다. tvN <삼시세끼>에서 순수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차승원과 유해진은 물론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랬던 그가 어느새 성숙해졌다. 금요일 저녁, tvN <커피 프렌즈>에서 기부를 실천하는 '사장님'이 돼 나타났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려주는데, 참 설레고 멋지다. 게다가 든든하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월요일과 화요일만 되면 완전히 돌변한다. 마치 '나에게 그런 멋짐이 있었던가?'라고 되묻는 듯하다. 작정하고 망가지며, 끝도 없이 웃긴다. 이 극명한 차이가 어색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이질감이 없다. 그만큼 연기를 잘한다.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 아직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니! 이쯤되면 다들 눈치챘을 텐데, 바로 손호준이다. 



'영수TV' 크리에이터는 무슨, 그냥 '방구석 백수' 김영수. JTBC <눈이 부시게>에서 손호준이 맡은 역할이다. '대세는 1인 콘텐츠'라고 부르짖으며, 방에 틀어박혀 먹방, 잠방 등 온갖 방송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고정 시청자는 고작 8명뿐이다. 그래도 별풍선을 벌기 위해서라면 온몸을 바친다. 뜨거운 라면 빨리 먹기, 자장면 10그릇 빨리 먹기, 공원에서 광란의 댄스 48시간 잠자기.. 물론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건 없다.


내친 김에 김영수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데, 가끔 외출을 할할 땐 트레이닝 복장에 꼭 한번씩 벗겨지곤 하는 낡은 슬리퍼를 끌고 다닌다. 한마디로 한심한 동네 오빠라고 할까? 엄마 몰래 방 안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려고 문에 테이핑을 했다가 연기에 질식돼 쓰러지고, 병원에 이송되는 순간에도 구급대원에게 '고기 안 타게 뒤집어 달라.'고 부탁하는 상상 초월의 캐릭터다. (1회)


그뿐인가. 동생인 혜자(김혜자/한지민)가 반려견인 '밥풀이'를 위해 사놓은 개밥을 먹다가 엄마(이정은)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기도 했다. "하다하다 이젠 개밥까지 쳐먹냐. 또 왜 질질 짜? 아파서 그래? 아닌데 왜 울어?", "자존심 상해서.", "뭐가?", "개밥이 너무 맛있어." (4회) 정말이지 예측불허다. 이쯤이면 김영수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됐지 싶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 게 오히려 정상일지 모르겠다.



솔직히 <눈이 부시게> 첫 회를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호준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값에 비해 영수라는 캐릭터는 보잘 것 없어 보였다. 비중과 분량이 너무 작았다. 손호준은 주연 배우로 출연해도 충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가 아닌가. 그런데 왜 '고작' 혜자의 오빠로 출연하는 걸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이 섣불렀음을 깨닫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눈이 부시게>에서 영수는 중심 인물이 아니다. 로맨스의 주인공은 혜자와 준하(남주혁)이다. 당연히 포커스도 그 둘에게 맞춰져 있다. 이렇듯 영수가 중심 인물은 아니지만, 극중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건 사실이다. 갑자기 늙어버린 혜자로 인해 벌어지는 '슬픈' 이야기들을 중화시키고,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환시키기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영수가 없는 <눈이 부시게>를 상상하기 어렵다.


손호준은 생동감 넘치는 현실 연기와 절정의 코믹 연기로 거침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순식간에 <눈이 부시게>의 신스틸러로 자리매김 했다. 재미있는 건, 그가 누구와도 절묘한 하모니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25살의 혜자 한지민은 물론, 70대의 혜자인 김혜자와도 완벽한 남매를 표현해냈다. 또, 엄마인 이정은과의 호흡은 웃음폭탄을 이끌어낸다. 동생의 친구이자 어릴 적 첫사랑인 현주(김가은)와의 로맨스도 흥미롭다. 



"어쩜 저렇게 재능이 있을까 싶다. 정말 매력 있는 배우다."


캐릭터 분석과 그에 맞는 설정, 그리고 온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을 펼치고 있는 손호준에게 선배 김혜자가 극찬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짧은 분량이지만, 등장할 때마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니 시청자들도 영수가 나오기만 학수고대하게 된다. 그래서 일까. 지난 26일 방송된 5회에서는 영수와 현주의 에피소드가 제법 많이 등장해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눈이 부시게>는 슬픈 드라마다. 70대 할머니가 된 혜자의 삶만 버거운 게 아니다. 극중의 캐릭터 가운데 누구 하나 평온한 사람이 없다. 모두 삶의 무게에 눌려 살아간다. 그러나 <눈이 부시게>는 슬픈 이야기를 슬프게 하지 않는다. 웃음과 감성의 비율을 적절히 조절한다. 그래서 그 슬픔이 더 진실되게 다가온다. 그 중심에 영수가 있다. 그리고 손호준이 아닌 영수는 상상하기 힘들다. 손호준은 그런 배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