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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러' 류준열은 왜 일출과 일몰을 기다렸을까?

너의길을가라 2019. 3. 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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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내가 꼭 챙기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일출과 일몰이다. 쿠바에서도 최대한 뜨는 해를 맞이하고 지는 해를 배웅할 것이다.

쿠바의 아바나에서 맞은 네 번째 날, 웬일인지 류준열은 꼭두새벽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이른 시간에 일어난 걸까? 바로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늘은 아직 어두컴컴했지만, 아바나의 거리 곳곳에는 밤새 뜨거웠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류준열은 아바나의 새벽과 여유롭게 인사를 나누며 말레꼰을 향해 걸었다. 현재 시각 5시 35분, 해가 뜨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류준열은 해가 떠오르리라 예측되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다음에 묵을 숙소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게 웬일인가. 류준열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근데, 해가 저기서 올라오네." 말레꼰의 모로 요새가 아니라 엉뚱한 다른 쪽 건물 뒤편의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다. 아차, 위치를 잘못 잡은 것이다. 잠깐의 혼란이 이어졌지만, 류준열의 판단은 빠르고 정확했다. 그는 일출을 위해 뛰기로 결정했다.

광장을 향해 400미터 쯤 달렸을까. 드디어 제대로 된 위치를 잡았다. 류준열은 하늘을 응시하며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기다리던 해는 머리를 내밀지 않았다. 하늘을 뒤덮은 구름 때문일까. 이미 주변은 환하게 밝아진 상태였다. 왠지 망한 것 같은 분위기, 실망감과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때 류준열은 소리쳤다. "와아, 해 올라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동그란 해가 드디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 <트래블러>의 2회 시청률은 3.336%로 1회 3.137%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다른 예능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일출 보기'는 제작진의 미션이었을 테고, 일출에 관심조차 없는 출연자들은 "해 뜨는 거 봐서 뭐해! 그냥 더 자면 안돼?"라며 불평했을 것이다. 다음 날 새벽, 잠에서 겨우 깨 부스스한 모습의 출연자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카메라에 담길 테고, 억지로 길을 떠난 그들은 일출의 광경을 보며 감격스러워 하며 오버스러운 리액션을 했으리라. 거기에 작위적인 배경음악과 오글거리는 자막이 감동을 꾸며냈으리라.

이것이 기존 예능의 문법이었다. 그런데 JTBC <트래블러>는 그 틀을 완전히 깨버렸다. 제작진은 여행에 있어서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일정은 물론 숙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택과 결정을 오롯이 '여행자'에게 맡겼다. 물론 이러한 '이색적인 그림'이 나올 수 있었던 건, 그 여행자가 류준열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작진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 류준열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자발적으로 일출을 찾았다.

여행을 제법 떠나 본 사람들은 저마다의 '포인트'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 포인트가 류준열에게는 일출과 일몰인듯 했다. 동해 삼척에서도, 캐나다 벤쿠버에서도, 맥시코 해변에서도 그는 해가 뜨고 지는 걸 지켜봤다. 비냘레스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타임랩스로 그 장면들을 담았다. 숙소의 옥상에서 흔들의자에 몸을 눕히고, 노을을 기다렸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일출과 일몰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왜냐하면 일출이랑 일몰도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이랑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산이나 천천히 움직이는 노을 같은 것들이. 저 같은 경우에는 이런 걸 보고 있으면 멍 때리면서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문득문득 드는 생각들, 많은 깨우침과 깨달음을 주는 것 같아요. 이렇게 흔들의자에 앉아서 내가 살아온 걸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그런 자체가 다 여행인 것 같아요. 오늘 같은 시간들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여행 와서 오늘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비냘레스에서 하염없이 노을을 바라보며, 류준열은 자신이 일출과 일몰에 '집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건 '인간'으로서의 자각이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마주하며, '나'를 깨우치는 일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뜨고 지지만, 그 순간을 온전히 느낀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여행을 통해 온갖 잡념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자연의 압도적인 힘을 느끼는 순간은 그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듯했다.

<트래블러>는 '특별한' 여행 예능이다. 아무래도 '류준열'이라는 매개체 덕분인 것 같다. '세미(라는 말은 빼도 좋을 것 같다) 프로 여행가'라는 별명답게, 그의 여행은 매우 안정적이고 탄탄하다. 무엇보다 '배낭 여행'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하다. 불필요한 짐을 챙기지도 않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구석구석 부지런히 걷고, 이리저리 여유있게 살핀다. 끊임없이 '발견'하고, '경험'하고, '소통'한다.


그렇다고 위기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숙소를 구하느라 진땀을 빼고, 와이파이 카드를 사느라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또, 비냘레스로 가기 위해 예약했던 빨간색 올드카가 사라지는 등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류준열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예상밖의 상황이 주는 당황스러움마저 즐기는 듯 보였다. 이미 류준열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위기는 여행에서 늘상 있는 일'이라는 걸 말이다.

"여행을 좀 돌아본 사람은 무뎌지잖아요. 제훈이 형은 엄청난 걸 느끼면서 우리이게 새로운 갈 많이 주겠죠. 그 기대가 엄청나요.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 같아요."

2회까지 <트래블러>는 류준열 혼자만의 여행을 담았는데, 3회부턴 이제훈이 합류해 완전체를 이루게 된다. 류준열의 여행을 좀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는 여행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 여행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지 이미 상관없다는 것이다. 여행은 항상 옳으니까. 류준열과 이제훈, 두 사람이 보여줄 쿠바가 엄청나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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