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9시 등교를 반대하는 엄마아빠의 이기심, 학생들이 우선이다

너의길을가라 2014. 8. 14.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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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중심 교육이 교육개혁의 첫 출발점이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어려움을 풀면서 9시 등교를 이뤄냈으면 좋겠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를 놓고 난항(難航)을 겪고 있는 사이,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자신이 공약했던 '9시 등교'를 다음 달부터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세부적으로는 초등학교는 9월 1일부터 전면 시행, 중학교는 여건에 따라 9월 1일과 내년 3월 1일에 전면 시행, 고등학교는 학년별로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시행되면 조기 정착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써 9월 1일부터 경기 지역 초중고는 '9시 등교'가 전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8시까지 등교하느라 잠도 부족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가는 경우가 많다"

"일찍 등교하면 졸음 때문에 공부에 집중도 잘 안 된다"


현재 경기도 내 대다수 학교의 등교시간이 초등학교 8시 30분, 중학교 8시, 고등학교 7시 30분인 것을 감안하면 학생들로서는 '9시 등교'로 인해 한결 여유가 생긴 셈이다. 겨우 숨 쉴 틈이 생겼다고나 할까? 학생들은 대다수가 찬성하는 분위기다. 학교가 집 바로 옆에 있지 않은 이상, 정해진 등교 시간보다 1시간 정도는 일찍 출발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자면 매일 아침 시간은 전쟁통이나 마찬가지다.



식사를 제대로 하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후다닥 씻고 가방 챙겨서 나가야 지각하지 않는다. 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부족한 잠으로 인한 피로가 더욱 가중된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고2 자녀를 둔 학부모는 "애가 아침 6시30분에 나갑니다. 공부 좀 하다 자면 5시간도 채 못 잡니다. 졸려 머리가 띵해 수업시간에 집중이 안 된다네요. 참 힘드네요"라며 '9시 등교'를 적극 지지했다.


이재정 교육감은 "여러 학생들의 요구가 있었다"면서 "부모와 학생이 식사할 시간이 아침밖에 없다. 이거야말로 좋은 관계를 맺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9시 등교가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등교 시간을 9시로 늦추면 그만큼 여유 시간이 생기고, 아이들은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은 여유롭게 아침 식사도 챙겨먹을 수 있다. 게다가 가족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시간까지 생긴다. 이른바 '아침 있는 삶'이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이준원 고양 덕양중 교장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 시기를 대학입시를 위해 잠시 인간임을 포기하는 기간으로 생각해 아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강요했다"면서 청소년들의 건강한 삶과 행복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도 등교시간을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9시 등교에 대해 찬성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지난 13일 이재정 교육감은 수원시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에서 열린 '경기교육사랑학부모회 워크숍'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지열별 학부모회 대표 70여 명이 참석해 '9시 등교'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밝혔다. 이 중에는 당연히 반대 의견을 제시한 학부모도 있었다. 물론 그 이유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농촌지역 실정을 모르면서 시행하려 한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 8시 이전에 출근한다."

"직장맘을 둔 아이들은 부모가 나간 후 혼자 20~30분간 방치된 상태로 집에 있다가 등교해야 하나. 직장맘들을 아이들에게 죄인으로 만드는 조치"
"(아이가 혼자 일찍 등교해) 사고 나면 어쩌나"

"그나마 아침에 일찍이라도 등교해야 공부를 한 시간이라도 더 하는 것 아니냐"

"공부 잘하는 우수 학생들이 서울로 빠져나간다"



필자가 위와 같은 반대 의견들에 대해 '실망감'을 느낀 이유는 단 하나다. 그 고민의 중심에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직업적 특성 때문에 애초부터 '자녀와 아침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한 가정도 있다. 이런 가정에서는 부모의 출근 시간에 맞춰 어떻게든 자녀를 빨리 학교로 보내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사고가 나면 어쩌나'라는 걱정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사고(思考)에는 '부모의 입장'만 반영되어 있는 것 아닌가? 부모가 좀더 편하자고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에 눈 감겠다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생각'이다. '9시 등교'도 학생들이 원하느냐, 아니냐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국가든 교육청이든 지금까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었다"는 이재정 교육감의 말을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게 들린다.


시행 초기에는 맞벌이 부부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생길 것이다. 일정한 시행착오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또, 아이들의 입장에서 '9시 등교'의 필요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출근 시간에 맞춰 등교를 해야 하는 학생들은 학교 내의 도서관을 이용하거나 학교 차원의 프로그램을 통해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9시 등교'가 시행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악순환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진 못하더라도 다소 느슨하게 만들어 줄 순 있을 것이다. 마치 기계처럼 살아가야 했던 학생들이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해줄 것이다. '아침'을 잃어버린 학생들에게 '아침 있는 삶'을 지켜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거면 충분한 것 아닐까?


'9시 등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안하지만) 수준 낮은 논쟁을 보면서 필자는 어른들의 이기심을 목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여전히 어른들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급급하다. 아이들의 삶의 질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의 불편함이 우선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어른들의 고민은 '9시 등교'가 아니라 9시 등교 '너머'를 향해야 한다. 등교시간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대학입시제도를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그 효과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지긋지긋한 학벌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청산해야 마땅한 악습과 폐단을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있는 어른들이 무슨 낯으로 아이들에게 더 적게 자고 더 일찍 등교할 것을 요구한단 말인가?


부디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또 듣자. 아이들을 지옥의 톱니바퀴 속으로 밀어넣고, 들려오는 비명소리에는 귀를 닫은 채 단지 그 규칙적인 움직임에 안도하는 어른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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