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까마득히 잊힌 송파 세 모녀의 죽음,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너의길을가라 2014. 8. 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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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이 지났고, 까마득히 잊혀졌다. 바로 '세 모녀 동반자살 사건' 말이다. 물론 그 사이에 대한민국에는 엄청난 사건들이 잇달아 터졌고, 누구 하나 맨정신으로 세상을 마주하지 못했다. 집단 트라우마 속에 갇혀 있었고, 지금도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도 그러하고, 이른바 '악마의 군대'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세 모녀 동반자살 사건'도 흘러가버린 강물처럼 여겨선 안 된다.



지난 2월 4일, 서울시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지하방에서 세 모녀가 동반 자살을 했다. 이유는 생활고였다. 그들은 집주인에게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자신의 목숨을 끊으면서까지도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표현조차 나이브하게 여겨질 만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이분들이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거나 관할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상황을 알았더라면 정부의 긴급 복지지원 제도를 통해 여러 지원을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틀 후,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상황 파악조차 하지 못한 듯한 발언으로 오히려 더 커다란 공분(公憤)을 불러 일으켰다. 왜 냐하면 세 모녀는 '추정소득'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했다고 하더라도 수급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사회복지사의 수가 현저히 적은 현실에서 관할 구청이나 주민센터가 그 상황을 알았을 가능성 또한 제로에 가깝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발언은 마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미 바닷속에 가라앉았음에도, 뒤늦게 나타나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는 생뚱맞은 질문을 한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왜 이렇게 뒤늦거나 생뚱맞거나 아는 게 없는 것일까?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송파 세 모녀법'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김한길 ·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이후 1호 법안으로 '송파 세 모녀법'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었다. 이들이 발의한 법안은 지난 4월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법안심사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발이 꽁꽁 묶여 버렸다.


국정을 운영해야 할 주체인 정부와 여당의 책임은 훨씬 더 무겁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군대 내에서 각종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적 관심을 비롯해서 정치적 이슈가 그쪽으로 쏠렸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무턱대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지금까지 '송파 세 모녀 법'을 다루지 못했던 것은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경제 활성화'를 거듭 외치고 있다. 이를 위해 19개의 법안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여기에는 복지 관련 법안은 철저히 배제됐다. 지난 7일, 새누리당의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연합의 박영선 원내대표는 13일 본회의를 개최해 주요 민생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복지 법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경제 활성화 논리에 밀려 복지 관련 법안이 언급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법안의 내용'을 언급하는 건 사치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겠다. 우선, 사각지대가 너무도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안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 수가 136만 명에서 176만 명으로 다소 늘어나지만, 약 400만 명에 달하는 복지 사각지대 빈곤층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보다 더욱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소득인정액 제도'이다. 가령 A씨의 경우 자신의 실제 소득은 '0원'임에도 기초생활보장제도 안에서 '126만 원 소득자'로 분류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추정소득과 함께 살지 않는 남편의 추정소득이 합산되어 계산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송파 세 모녀'가 주민센터에 가서 수급 신청을 해도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바로 '소득인정액 제도' 때문인 것이다. 


그 외에도 전세금 같은 재산이 있을 경우 이를 현금 소득으로 환산하는 '재산의 소득환산액'과 자녀(사위와 며느리도 포함)가 일정한 소득을 벌고 있으면 부모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간주부양소득' 등도 기초생활보장제가 갖고 있는 매우 심각한 맹점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를 비롯해서 여야는 이러한 맹점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금 내놓은 법안들도 사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그조차도 외면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누군가는 사회가 만들어낸 '빈곤의 늪'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다. '보호 장치'가 전무(全無)한 대한민국에선 누구라도 순식간에 바닥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현행 기초생활보장제가 안고 있는 맹점을 타파할 수 있는 법안을 논의하고 통과시켜야 한다.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은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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