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한 그루를 보기 위해 2시간 넘는 길을 떠난다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거리에 나가면 온통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은행나무의 수령(樹齡)이 600살이 넘었다면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무려 600년 된 은행나무가 원주의 한 시골 마을, 문막읍 반계리(磻溪里)에 있다.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조선이 건국(1392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그 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얘기다. 저 엄청난 세월 앞에 100년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은 할 말을 잃는다.
반계리 은행나무를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노란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압도적인 풍채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알록달록 붉게 물든 산천도 좋지만, 100% 노란색의 단풍 속에 몸을 담그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직접 눈에 담고 싶었다.
매일마다 '반계리 은행나무'를 검색해서 블로그 리뷰를 살폈다. 오늘은 얼마나 노랗게 물들었는지 확인했다. 지난 주에는 아직 초록빛이 많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주말을 기점으로 절정을 맞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번 주를 넘길 수는 없었다. 출발해야 했다.
11월 12일, 2시간을 넘게 도로를 달려 반계리에 당도했다. 지금이 아니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니까. 아직 거리가 제법 남았는데, 은행나무의 상부가 드러났다.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사진이나 영상으로 봤을 때와는 또 달랐다. 34.5m에 달하는 높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생각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주차가 문제였다. 평일 낮인데도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서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갓길에 세워진 차들도 많았는데, 좁디좁은 주차장까지 가는 건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인근 상가 옆 주차 공간에 차를 대고 걸어가기로 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기로 가도 은행나무가 나와요?"
공식 주차장이 아니라 동네길을 따라 걸으니 한적한 시골 느낌이 물씬 풍겨 그마저도 좋았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반계리 은행나무와 가까워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시야가 확 트였다. '와..' 아마도 한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커도 커도 너무 컸다. 높이 34.5m 둘레 16.9m의 압도적인 크기의, 말 그대로 샛노란 은행나무. 여기가 노란색 천국일까. 시야가 온통 노란색으로 채워졌다. 이토록 가득찬 노란색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영험한 나무라는 게 존재한다면 바로 반계리 은행나무를 말하는 것이리라.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온다. 왜 아니겠는가. 오늘 반계리 은행나무는 작정한 듯 노란 잎사귀를 떨어뜨린다. 꽃비를 내리며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극진히 맞이한다. 사람들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찬란히 빛나는 순간의 반계리 은행나무를 기억한다.
은행나무를 둘러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무리 천천히 봐도 30분이면 충분하다. 반계리는 시골 마을이라 다른 구경거리가 있지도 않지만, 저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로 이미 충분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단 2주의 시간뿐이다. 살면서 한 번쯤 600년 된 은행나무 앞에 서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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