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검사외전>, 황정민이 그린 밑그림에 강동원이 채색했다

너의길을가라 2016. 2. 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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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 강동원 주연의 <검사외전>은 <베테랑>이 불을 지피고, <내부자들>이 폭발시킨 사회 비판 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다. 부조리한 현실이 만들어낸 염증(厭症)을 영화로나마 씻어내고 싶은 관객들의 마음 탓일까? 앞선 두 영화가 각각 1,341만 명, 9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것처럼, <검사외전> 역시 첫날 관객 52만5739명을 기록하며 화끈한 출발을 시작했다. 



버디 무비(Buddy Movie) : 주로 동성인 사람 두 명이 패를 이루어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 장르를 말한다. 명칭은 친구라는 뜻의 영어 단어 버디(Buddy)에서 온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서로 어울리지 못하다가 사건을 경험하면서 화합해 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 주는 형식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발췌


물론 <베테랑>보다 강렬하지 않고, <내부자들>보다 치밀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묽은 느낌이다. 분명 <검사외전>은 그 중간 어디 쯤에 위치하는 버디 무비(Buddy Movie)지만, 관객들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확실하고도 야심찬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건 바로 물 오른 '코미디' 연기를 펼치는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존재다. 




<검사외전>은 '검사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다'는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강압 수사를 하고 피의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 공권력을 남용하는 다혈질 검사 변재욱(황정민)은 수사 중 피의자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5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물론 이면에는 정치와 검찰로 연결된 비릿한 음모가 자리잡고 있다. 


"검사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다? 이 자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식상한 이야기잖나. 액션 혹은 스릴러로 풀기 쉬운데, 난 캐릭터를 색다르게 잡으면 신선해보이겠다 싶었다. 거짓말쟁이 캐릭터를 만들어보자! 재욱 역시 거짓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그의 마음을 풀어줄 이 역시 거짓말쟁이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여기에 약간은 코믹하게 해학과 풍자를 담아 장르물로 만들고 싶었다." (이일형 감독)


만약 '누명을 쓴 검사가 복수를 하는' 정도를 이야기하는 데 그쳤다면, <검사외전>은 그저 그런 영화에 그쳤을지 모른다. 장르적 변주를 통해 극복하려는 발상도 힘에 부쳤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이일형 감독은 캐릭터를 추가하는 방식을 통해 이 식상함을 돌파해냈다. 자, 이제 새로운 그림이 그려졌다. 누명을 쓴 검사가 거짓말쟁이 사기꾼을 통해 복수를 한다!



"한치원은 이 영화의 키포인트다. 이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범죄물이 될 뻔한 <검사외전>이 오락영화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 코미디 연기에 갈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니 재미있었고, 내 캐릭터가 너무 웃겨서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동원)


이제 '강동원'을 이야기 할 차례다. 희대의 거짓말쟁이이자 허세를 남발하는 꽃미남 사기꾼 치원 역을 맡은 강동원은 숨겨왔던('조금씩 드러내왔던'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코미디 연기를 이번 영화를 통해 마음껏 선보였다.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말 중간에 엉터리 영어를 섞는 등 뻔뻔하고 능글맞은 연기를 이토록 사랑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군도:민란의 시대>, <두근두근 내 인생>, <검은 사제들>에 이어 <검사외전>까지 '얼굴'맞 맏고 CF에 전념하는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며 성실하게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강동원은 <검사외전>을 통해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올해도 '소처럼' 일하겠다"고 밝힌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동원이가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강동원이 한치원 역을 한다고 할 때 뭔가 궁금한 게 있잖아요. 관객들이 치원 캐릭터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는 100%의 자신감도 있었죠.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좋은 장점이에요. 뭘 해도 받아들일 수 있달까요. 이건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황정민)


<검사외전>을 한마디로 설명하라면, 황정민이 밑그림을 그리고, 강동원이 채색했다고 할 정도로 강동원의 비중과 역할이 크다. 이쯤되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천만 배우 황정민은 왜 스스로 돋보이기보다 강동원을 빛내는 역할에 만족한 것일까? 그에 대해 황정민은 "이야기가 중요하면 무조건 한다. 캐릭터가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히말리야>가 끝난 후 육체적 ·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그에게 <검사외전>은 "조금 재미있고 편안하게 낄낄대며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또, "치원 역을 누가 하게 될지 궁금했는데 동원이가 한다고 해 두팔 벌려 환영하고 박수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관객들이 어떤 영화를 원하는지 적확하게 꿰뚫어보는 선구안을 갖고 있는 황정민의 선택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일반적인 버디 무비가 두 명의 주인공이 '함께' 움직이는 특성을 갖고 있다면, <검사외전>은 감옥에 갇혀 있는 변재욱과 출소한 치원이 합을 이룬다는 점에서 다소 변형되어 있다. 이처럼 '물리적으로' 함께 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두 인물 사이에 괴리감이 들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무게감이 '닻'을 제대로 내려놨기 때문이다. 


치원의 활약이 반짝반짝 빛을 발할 수 있는 것도 변재욱이라는 뿌리가 단단히 자리를 잡은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난 느낌을 주면서도 그의 존재감이 묵직하게 다가오고, "역시 황정민"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다만, 매번 같은 뉘앙스의 연기를 한다는 지적은 그가 앞으로 넘어서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서두에 밝혔던 것처럼, <베테랑>보다 강렬하지 않고, <내부자들>보다 치밀하지 않다. 이야기의 허술함은 분명하지만, 이일형 감독이 <검사외전>을 통해 꺼내놓고자 했던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풍자와 해학은 또렷하게 전달된다. 또, (약점을 커버하는) 코미디와 사회 비판이 절묘히 조합되면서 설 명절을 맞아 가족들이 다 함께 봐도 좋을 영화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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