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로 눈을 가린 백종원이 감각을 최대치로 활성화시킨다. 숟가락에는 정지선 셰프의 '시래기 바쓰 흑초 강정'이 올려져 있다. "(킁킁) 왜 탕후루 냄새가 나지?"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던 백종원은 의아함을 드러낸다. 드디어 입을 크게 벌려 시식에 나선다. "예? 이게 뭐예요, 이게? 뭐야, 이거." 실처럼 만든 바쓰의 촉감에 놀란 눈치다. 외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 화제의 장면이다.
이번에는 심사위원들의 미각이 돋보였던 상황을 살펴보자. 요리하는 돌아이의 '프렌치 장어 계란찜'을 한 입 맛본 백종원은 "소스 이거 많이 접해 본 소스인데. 양식 소스 중에 달걀로 만드는 거."라며 답답해 한다. 그러자 안성재 셰프가 "사바용."이라고 거든다. 백종원에게 자신의 의도를 간파당한 요리하는 돌아이는 깜짝 놀란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진가가 드러난 장면이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심사 방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흑백 요리사가 계급장을 떼고 1:1로 맞붙은 2라운드는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됐다. 백종원, 안성재 두 심사위원은 안대로 두 눈을 가린 채 오로지 음식의 맛에 집중했다. '누구 만든 음식이냐'에 좌지우지되지 않았다. 이로써 심사위원들은 셰프들의 이름값을 떠나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3라운드는 생존한 요리사들의 흑백 팀전(고기팀, 생선팀)으로 펼쳐졌다. 팀전이니만큼 리더의 역할, 팀원들 간의 호흡이 매우 중요했다. '이번에도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건가?'라고 생각할 즈음, (백종원, 안성재를 포함) 가면을 쓴 100명의 미스터리 심사단의 존재가 공개됐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에 셰프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100명의 심사단에게 각 팀의 조리 과정을 지켜보도록 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오픈 주방인 셈이다. 제작진은 그 의도를 명확히 짚지 않았고, 심사의 기준에 대해서도 뚜렷한 언질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맛으로만 평가해주세요.'라든지 '조리 과정도 평가에 반영해 주세요.'라는 식으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팀전인 만큼 핵심 키워드는 '리더십'과 '팀워크'였다. 첫 번째 대결에서는 백수저 팀이 흔들렸다. 각자 요리에 일가견이 있고, 개성도 강한 헤드 세프들은 의견이 서로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요리의 방향성이 계속 바뀌는 바람에 팀 전체가 우왕좌왕했다. 팀을 하나로 이끌어야 할 리더 조은주 셰프는 원활한 조율에 실패했다.
두 번째 대결에서는 흑수저 팀이 혼란을 겪었다. 상대팀의 리더 최현석 셰프가 재료를 선점하자 리더 불꽃 남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백수저 팀이 최현석을 필두로 똘똘 뭉치며 단결한 반면 흑수저 팀은 내부적으로 계속 부딪치며 길을 잃고 헤맸다. 리더와 팀원이 서로를 신뢰한 백수저 팀과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했던 흑수저 팀의 극명한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승리를 거둔 팀, 그러니까 100인의 미스터리 심사단의 입을 사로잡은 팀은 리더들의 리더십이 빛났던 팀이었다. 물론 심사에 있어 요리 과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백종원과 안성재의 경우에는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방송상으로는) 심사단도 요리 과정으로 해당 팀에 가산점을 주거나 감점을 주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요리 과정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 게 맞는 걸까.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하는 쪽이 좀더 공정하게 보일 수는 있다. 혹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제작진이 미스터리 심사단에게 셰프들의 요리 과정을 직관하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 앞선 2라운드처럼 100명의 심사단도 눈을 가리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키면 다 '공정'할 텐데 말이다.
제작진이 굳이 '직관 후 시식'이라는 심사 방식을 채택한 건, 요리하는 사람들끼리의 합도 평가 대상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개인전이 아니라 팀전이니 말이다. 백종원과 안성재는 이를 배제했지만, 나머지 심사단의 경우는 어땠을까. 같은 수준의 맛이라면 훌륭한 팀워크를 보여준 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혹은 호흡이 뛰어났던 팀의 음식이 좀더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결과 자체가 워낙 박빙인데다 대결이 2번밖에 없어서 명확한 인과관계를 도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차례의 대결에서 팀워크가 좋았던 팀이 승리하는 공식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제작진은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흑백요리사' 제작진이 영리하게 그림을 잘 그렸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과정도 중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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