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철저한 고증을 강조했던<명량>, 배설에 대해선 영화로 봐달라?

너의길을가라 2014. 9. 5. 08:07
반응형



지난 3일, 영화 <명량>은 1,700만 명 관객을 돌파했다. '관객 수'와 관련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는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한 차례 폭풍처럼 몰아쳤었다. '명작'과 '졸작' 사이의 숱한 논쟁들이 있었지만, 제작사와 배급사를 비롯한 영화 관계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또, 이들에게 무엇보다중요했던 것은 '흥행'이었을 테니 말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로 인한 뜨거운 논쟁이 다소 사그라들자 이번에는 또 다른 후폭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바로 '역사 왜곡'에 대한 논란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실존 인물인 배설 장군이 자리잡고 있다. 경상우수사 배설의 후손들은 <명량>이 배설 장군을 왜곡한 탓에 사회생활을 하는 데 피해를 입는 등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 '명량' 상영중지를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대체 '영화 속' 배설과 '역사 속' 배설은 얼마나 다른 사람인 것일까? <명량>에서 배설(김원해)은 이순신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이순신에게 퇴각을 요구하면서 시비를 걸고 비아냥 거린다. 급기야 배설은 이순신을 암살하기 위해 잠입을 시도하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거북선에 불을 지르고 쪽배를 타고 도주한다. 하지만 도주는 성공하지 못하고, 거제현령 안위가 쏜 화살에 맞아 '인과응보'식 죽음을 맞이한다.


배우 김원해의 밉살스러운 연기가 더해져서 '배설'은 영화 속에서 가장 '얄미운' 인물로 그려진다. 심지어 왜군의 장수들보다 '밉상'인 캐릭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에 비해 류승룡이 연기한 쿠루지마는 얼마나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인가! 배설의 후손인 경주 배씨 성산공파들(그 수가 10만 명이라고 한다)은 졸지에 '역적'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명량>은 무려 1,700만 명이 본 최고 흥행작이 아닌가? 사실상 국민 역적 집안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문제는 '영화 속' 배설 장군이 '왜곡'됐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배설 장군과 관련한 기록이 남겨져 있는데, "배설이 제 종을 시켜 소장을 냈는데, 세가 몹시 중하여 몸조리를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몸조리를 하고 오라고 공문을 써 보냈더니 배설은 우수영에서 뭍으로 내렸다 (8월 30일)"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해 '역사적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투 직전에 겁이 나서 도망을 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낙향했다는 해석이다. 물론 배설 장군의 후손들은 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해석이 맞는지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따져볼 여지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배설 장군은 명량 해전이 벌어지기 보름 전에 낙향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고 했다거나 거북선에 불을 지르고 도망쳤다는 영화 속 내용은 '허구'인 셈이다.



단 8시간의 숨막히는 전투!

방대한 자료 조사, 철저한 고증과 상상력의 결합!

417년 전 전쟁 한복판, 그 생생한 현장을 재현하다!


영화 <명량>의 홍보 문구


<명량>의 제작사 빅스톤 픽쳐스 측 관계자는 '배설 장군'과 관련한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저희도 기사로 해당 사실을 접했다. 그 분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게 아예 없어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저희도 오늘쯤 내부적으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로 봐주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로 봐달라'는 제작사 측의 애매하고 소극적인 태도는 너무 아쉽기만 하다. 애초에 <명량>은 영화 홍보를 하면서 '철저한 고증'이라는 문구를 거듭해서 사용했다. 이는 영화 속에 표현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소위 '옥에 티'는 영화 속에 산재(散在)해 있었다.


영화의 끝 무렵, 치열한 전투 끝에 살아남은 대장선의 노꾼이 승리를 만끽하며 "후사들이 우리가 이런 일 한 거 알랑가? 고걸 모르면 호로자식이여!"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호로(胡虜)'라는 욕이 병자호란(1636년) 이후 포로로 잡혀 갔던 여인들이 돌아와 낳은 자식들을 일컫는 말인 것을 생각해보면, 1597년에 벌어진 명량대첩에서는 나올 수 없는, 존재하지 않는 욕인 셈이다.



이런 '자잘한' 옥에 티 말고도 <명량>에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이순신 장군 전문가인 박종평 작가는 "명량해전 당시에는 거북선이 없었"기 때문에 배설이 거북선을 불태우고 도망가는 것은 애초부터 성립 불가능한 허구라고 지적했다. 또, 이순신 장군이 탈영병의 목을 직접 베면서 "군율은 지엄한 것이다"라고 말했던 영화 속 내용에 대해서도 "탈영병을 군법에 따라 다스리기는 했지만 영화처럼 이순신 장군이 직접 목을 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군관 나대용이 도원수 권율을 찾아가 군사 지원을 요청하다가 옥에 갇힌 에피소드와 왜군이 대장선에 올라와 백병전을 벌였다는 내용은 『난중일기』에서 확인할 수 없는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한다. 물론 제작사 측의 해명처럼 <명량>은 영화이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아주 엄밀하게 역사와 영화를 비교하면서 고리타분하게 굴 생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존 인물에 대한 왜곡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 이순신 장군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가 필요했을 테고, 그 모든 책임은 배설 장군에게 전가됐다. 저지르지 않은 일을 뒤집어 쓴 배설 장군은 2014년 대한민국 최고의 '역적'으로 기억되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됐다. 배설 장군에 대한 고증이 완벽히 이뤄지지 못했다면, 차라리 가상의 인물을 내세웠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철저한 고증'이라는 홍보 문구를 강조했던 만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나 왜곡된 내용이 있다면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게다가 실존 인물의 후손들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고 있다면 영화 제작사 측에서는 마땅히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배설 장군과 관련한 논란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분명한 '사실'에 대한 문제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명량>을 두고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시점에서 '제작사가 연락이 안 된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논란이 확산되고 한참 후에야 나온 제작사 측의 입장이 '다큐가 아니라 영화로 봐달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라니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반응형